▲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로브리예낙 요새'에서 바라 본 올드타운
김봉석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스산함이 느껴졌다. 쇠창살로 덮인 깊고 어두운 우물과 그늘진 공간들, 텅 빈 요새 안에는 수세기 전 치열했던 전쟁의 잔상이 남아 있는 듯했다. 이유 없이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요새를 다 둘러보고 내려온 뒤, 아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주변을 조금 더 살폈다. 돌벽 사이 구멍마다 비둘기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고 그 수가 워낙 많아 퍼덕거리는 소리에 자꾸 놀라게 됐다. 나는 비둘기를 피하려고 기둥 옆으로 몸을 붙였다.
그 순간이었다. 바로 옆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너무 갑작스럽게 바로 옆에서 벌어진 일이라,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마대자루라도 떨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시선을 돌리자, 사람 몸집만 한 리트리버 한 마리가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내고 있었다. 두 번의 짧은 울음 뒤, 개는 얼굴을 바닥에 떨군 채 피를 토했다.
주변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관광객들이 "Oh my god"을 외쳤고, 한 남자가 달려와 개를 진정시키려 했다. 위에서 내려온 주인은 울면서 앰뷸런스를 불러 달라고 소리쳤다.
모든 일이 순식간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손과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내 표정을 본 아내는 오히려 나를 진정시키며 내 팔을 잡고 요새를 벗어났다.
불과 50cm였다. 비둘기를 피해 기둥 아래로 들어온 지 1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그 짧은 거리와 순간은 나의 미래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지금의 여행은 물론 이후의 삶도 중단됐을지 모른다.
왜 그 리트리버가 아래로 떨어졌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문득 스코틀랜드 오버툰 브리지에서 수십 마리의 개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뛰어내렸던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전문가들은 다리 아래 서식하던 밍크의 강한 소변 냄새가 개들의 감각을 자극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 리트리버도 무언가 강렬한 끌림에 반응했던 것일까. 그날 이후 로브리예낙 요새의 스산함은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삶도 그렇다. 유럽을 선택했고, 크로아티아를 선택했고, 두브로브니크를 선택했고, 요새 안에서 비둘기를 피해 기둥 옆으로 몸을 피한 것 또한 나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잘못이었는지는 늘 나중에야 알게 된다.
우리는 그 결과를 감수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여행이든, 인생이든.
앞으로의 선택도 그러하길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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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간의 안정된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부부가 함께 은퇴 후 시작한 새로운 여정. 안정된 삶 대신 꿈을 선택한 40대 파이어족의 좌충우돌 '은퇴 후 삶'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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