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이것은 진술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40년 만에 벗은 간첩의 멍에

문영석 씨재심 사건, 법원 '무죄' 선고... 검찰의 사과는 없었다

등록 2026.01.22 17:32수정 2026.01.23 09:16
2
원고료로 응원
지난여름, 일본 도쿄의 한 카페에서 만난 문영석씨. 일본에서 법원 통역사 일을 한다는 그는 법정에서 피고인들의 말을 옮길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고 했다. 한국인 피고인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믿어달라"고 절규할 때, 문씨는 통역사가 아닌 40년 전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던 '스물다섯 청년 문영석'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남의 억울함을 통역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마치 40년 전의 저를 보는 것 같아서요."

타인의 진실을 세상에 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진실은 40년 동안 '간첩'이라는 주홍글씨 속에 가둬둬야 했던 그의 진실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주문, 피고인은 무죄."

22일 오후 2시, 광주고등법원 제1형사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심을 청구한 문영석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86년 2월, 징역 7년이라는 유죄 판결을 받은 지 딱 40년 만의 일이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문씨가 재판으로 인해 여러 차례 한국에 오가는 부담을 덜기 위해 앞서 두 차례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대부분의 법리적 다툼, 기록과 증거에 대한 확인을 마쳤다. 그리고 결심재판(1월 22일 오전 11시)과 선고(1월 22일 오후 2시)를 같은 날로 지정해 문씨의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노력했다.

'증거 없으니 판사가 알아서'... 비겁한 국가의 '백지 구형'


 광주고법 재심 선고 직후 기자들과 무죄 소감 인터뷰 중인 문영석 씨.
광주고법 재심 선고 직후 기자들과 무죄 소감 인터뷰 중인 문영석 씨. 변상철

이날 선고에 앞서 오전 11시에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최근 과거사 사건에 반성적인 태도를 보이는 태도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통상적으로 재심 사건에서 명백한 조작이 드러나면 검찰이 "무죄를 구형한다"며 사과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날 검찰은 끝까지 '기계적 중립' 뒤에 숨었다.

이날 공판검사로 출석한 엄희준 검사는 결심 공판에서 "관련 증거가 다 폐기돼서 검찰로서도 정확히 사실관계는 확인할 수 없다"라면서도 "피고인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고 (재판장이) 판단되시면 무죄를 선고해 달라"며 구형을 주문했다. 이른바 '백지 구형'이다.


이날 함께 법정에 참석했던 문 씨는 이날 검찰의 구형을 들으며, 수사 과정의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가 이미 재심 개시 결정문 등을 통해 확인되었음에도, 검찰은 "우리가 틀렸다"는 고백 대신 "증거가 없어 처벌을 못 하겠다"는 식의 회피를 택한 것이라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은 진술이 아닌 '진실'입니다"

 최후변론을 위해 미리 준비해온 문영석씨의 최후변론서
최후변론을 위해 미리 준비해온 문영석씨의 최후변론서 변상철

검찰의 아쉬운 구형이 끝난 뒤에, 문영석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상기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문씨는 40년간 참아온 자신의 변론을 시작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 최후 진술이 '최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실에는 법률적 진실과 인간적 진실이 있습니다."

그는 법전을 넘어서는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했다.

"이 재판은 법률적 진실을 가리는 엄중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저는 법률적 진실뿐만 아니라 인간적 진실에서도 무죄라고, 제가 이제 최후 진실을 선언하고 싶습니다."

그가 말한 '인간적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40년 전 그를 불법 체포해 9일간 가두고 고문했던 수사관들, 그리고 그 조작된 조서를 눈감아주며 기소했던 검사들의 진심 어린 반성이었을 것이다.
문 씨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원심 담당 검사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본인이 아닌 참여 계장이 한 일이라며 거짓말을 하고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는 이어 "피해자인 저는 아직 살아 있으며 오늘 그날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라며 "이제 저는 이 진실과 저의 양심의 힘을 토대로 희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깨어져야 함을 밝히고 싶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들을 살리려다 간첩이 된 아버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씨가 오늘 법정에서 흘린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감옥 같은 과거 속에 갇혀 있는 아버지, 고(故) 문철태씨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이었다.

1985년 당시 안기부는 일본 유학 중이던 문영석씨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까지 잡아들였다. 문 씨는 최후진술에서 "안기부 수사관은 아직 재판 중임에도 교도소까지 찾아와 제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고 했습니다"라고 폭로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거짓 자백을 강요받았고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아들은 오늘 무죄선고를 통해 지난 40년의 멍에를 벗었지만, 아버지의 사건은 아직 재심 개시조차 되지 않았고 있다.

문 씨는 최후진술의 마지막을 아버지를 위한 호소로 채웠다.

"지금 현재 저뿐만 아니고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고초를 당하여 현재 재심 개시 신청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저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이 나서 진실이 밝혀지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통역석으로... 이제는 '진실'을 말한다

 무죄 선고 직후 박민서 변호사(맨 오른쪽)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문영석씨(가운데)
무죄 선고 직후 박민서 변호사(맨 오른쪽)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문영석씨(가운데) 변상철

무죄 판결 직후 만난 문영석 씨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간감이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법정 통역사로서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가 법정에서 삼켜야 했던 수많은 말들은, 오늘을 위한 연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법원은 그에게 '법률적 무죄'를 주었지만, '인간적 진실'을 완성하는 것은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다.
국가가 망가뜨린 한 가족의 삶, 그 절반의 회복을 지켜보며 문영석씨가 남긴 마지막 말은 법정을 나서는 사람들의 귓가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누구나 다 아는 우리말에 '죄 짓고는 못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 40여 년 동안 잡힐까 불안했고, (없는) 죄가 탄로날까 두려워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저는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음에 두려움 없이 살아왔다는 그의 고백. 그것은 통역이 필요 없는, 가장 명확한 진실의 언어였다. 검찰을 비롯한 국가기관은 진실앞에 비겁했고, 그로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것을 방조했다. 지금이라도 법률적 진실 뿐이 아닌 역사의 진실, 인간적 진실규명을 위해 파괴된 존엄 앞에 무릎꿇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 #재심 #국가폭력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2년 전 800만 원이 지금 2천... 시집갈 때까지 기다릴 걸 2년 전 800만 원이 지금 2천... 시집갈 때까지 기다릴 걸
  2. 2 미국에서 온 건축가가 주차장서 벌인 일, 성수동이 뒤집어졌다 미국에서 온 건축가가 주차장서 벌인 일, 성수동이 뒤집어졌다
  3. 3 "아파트 단지 통행불가? 법으로 막자" 어느 건축가의 이색 제안 "아파트 단지 통행불가? 법으로 막자" 어느 건축가의 이색 제안
  4. 4 삼남매가 결혼할 때 엄마에게 해드린 진상품, 승자는? 삼남매가 결혼할 때 엄마에게 해드린 진상품, 승자는?
  5. 5 태어나보니 백기완 손주였다 태어나보니 백기완 손주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