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후변론을 위해 미리 준비해온 문영석씨의 최후변론서
변상철
검찰의 아쉬운 구형이 끝난 뒤에, 문영석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상기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문씨는 40년간 참아온 자신의 변론을 시작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 최후 진술이 '최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실에는 법률적 진실과 인간적 진실이 있습니다."
그는 법전을 넘어서는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했다.
"이 재판은 법률적 진실을 가리는 엄중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저는 법률적 진실뿐만 아니라 인간적 진실에서도 무죄라고, 제가 이제 최후 진실을 선언하고 싶습니다."
그가 말한 '인간적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40년 전 그를 불법 체포해 9일간 가두고 고문했던 수사관들, 그리고 그 조작된 조서를 눈감아주며 기소했던 검사들의 진심 어린 반성이었을 것이다.
문 씨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원심 담당 검사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본인이 아닌 참여 계장이 한 일이라며 거짓말을 하고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는 이어 "피해자인 저는 아직 살아 있으며 오늘 그날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라며 "이제 저는 이 진실과 저의 양심의 힘을 토대로 희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깨어져야 함을 밝히고 싶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들을 살리려다 간첩이 된 아버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씨가 오늘 법정에서 흘린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감옥 같은 과거 속에 갇혀 있는 아버지, 고(故) 문철태씨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이었다.
1985년 당시 안기부는 일본 유학 중이던 문영석씨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까지 잡아들였다. 문 씨는 최후진술에서 "안기부 수사관은 아직 재판 중임에도 교도소까지 찾아와 제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고 했습니다"라고 폭로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거짓 자백을 강요받았고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아들은 오늘 무죄선고를 통해 지난 40년의 멍에를 벗었지만, 아버지의 사건은 아직 재심 개시조차 되지 않았고 있다.
문 씨는 최후진술의 마지막을 아버지를 위한 호소로 채웠다.
"지금 현재 저뿐만 아니고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고초를 당하여 현재 재심 개시 신청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저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이 나서 진실이 밝혀지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통역석으로... 이제는 '진실'을 말한다

▲ 무죄 선고 직후 박민서 변호사(맨 오른쪽)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문영석씨(가운데)
변상철
무죄 판결 직후 만난 문영석 씨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간감이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법정 통역사로서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가 법정에서 삼켜야 했던 수많은 말들은, 오늘을 위한 연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법원은 그에게 '법률적 무죄'를 주었지만, '인간적 진실'을 완성하는 것은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다.
국가가 망가뜨린 한 가족의 삶, 그 절반의 회복을 지켜보며 문영석씨가 남긴 마지막 말은 법정을 나서는 사람들의 귓가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누구나 다 아는 우리말에 '죄 짓고는 못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 40여 년 동안 잡힐까 불안했고, (없는) 죄가 탄로날까 두려워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저는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음에 두려움 없이 살아왔다는 그의 고백. 그것은 통역이 필요 없는, 가장 명확한 진실의 언어였다. 검찰을 비롯한 국가기관은 진실앞에 비겁했고, 그로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것을 방조했다. 지금이라도 법률적 진실 뿐이 아닌 역사의 진실, 인간적 진실규명을 위해 파괴된 존엄 앞에 무릎꿇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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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진술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40년 만에 벗은 간첩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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