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식 (Han S. Park) 교수 조지아대학교(UGA) 박한식 교수 웹페이지 https://spia.uga.edu/faculty-member/han-s-park/
웹페이지갈무리
1939년 만주에서 3남 3년 중 셋째로 태어난 박 교수는 해방과 분단, 전쟁의 격랑을 몸으로 겪으며 성장했다. 해방 후 가족과 함께 평양을 거쳐 대구에 정착했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6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아메리칸대에서 정치학 석사, 미네소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70년부터 2015년까지 조지아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의 학문은 언제나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1981년 이후 50여 차례 북한을 직접 방문하며 사회·정치 구조를 연구했고, 이 경험은 박 교수를 세계적 '북한 전문가'로 만들었다. ABC, CNN, BBC, 알자지라 등 주요 국제 언론이 그의 분석을 인용했고, 그는 학자의 언어로 적대의 장벽을 낮추는 데 힘썼다.
북미 관계의 물꼬를 튼 중재자
박한식 교수의 이름이 역사에 각인된 순간은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였다. 그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중재해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성사시켰고, 이는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로 이어졌다. 핵 동결과 상응 조치라는 '단계적 합의'의 틀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외교적 교훈으로 남아 있다.
2009년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해 억류된 미국 기자 2명의 석방을 이끌어냈다. 박 교수는 위기 국면마다 트랙Ⅱ(비공식) 외교의 핵심 연결고리로 활동하며, 대화가 완전히 끊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막는 '완충지대' 역할을 했다.
'안보 패러다임'을 넘어 '평화 패러다임'으로
박 교수의 사상적 핵심은 명확했다. 그는 분단 체제를 유지해 온 '안보 패러다임(적대, 악마화, 제로섬 사고)'에서 벗어나 공존과 상호 인정의 '평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평화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상태"라는 그의 정의는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에서 바꾸려는 시도였다.
그는 변증법적 통일론을 통해 남과 북의 이질성을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조화의 자원'으로 보았다. '한 민족, 두 국가, 세 정부' 구상은 급진적 흡수통일이 아닌, 점진적 공존과 협력을 통한 통일의 경로를 제시했다.
교육과 연대,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어진 실천
조지아대학교에 국제문제연구소(GLOBIS)를 설립한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 국제 평화 감수성을 심어주었고, 퇴임 후에도 저술과 강연, 미디어 기고를 통해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온라인 '사랑방' 모임을 열어 세계 각지의 참가자들과 매달 평화 철학을 나누며 위로와 연대를 이어갔다.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에서 그는 "남과 북 모두 안보 논리의 포로가 되어 분단체제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생전에 평화의 초석이라도 놓고 싶다는 소망을 남겼다.
영문 저서로 Human Needs and Political Development (1984), China and North Korea (co-authored, 1990), North Korea : Ideology, Politics, Economy (edited, 1996), North Korea: The Politics of Unconventional Wisdom (2002), and North Korea Demystified (2012), Globalization: Blessings or Curse? (2018, 2022 증보판), Quest for Peace: A Memoir (co-authored, 2023), 한글 저서로 선을 넘어 생각한다 (2018), 평화에 미치다 (2021), 안보에서 평화로 (2022), 인권과 통일 (2024) 등이 있다.

▲박한식 사랑방 통일이야기 1 & 2 매달 한번씩 열렸던 박한식 사랑방 (https://hsparksarangbang.com/) 강연 내용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의 영문판 Quest for Peace: A Memoir (2023)는 아마존에서 구매 가능하다.
전희경
남은 사람들의 과제
박한식 교수의 별세는 한반도 평화 담론에 큰 공백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유산은 과제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첫째, 평화 패러다임의 회복이다. 군사적 억지에만 의존하는 접근을 넘어, 트랙Ⅱ 외교와 민간 교류를 재가동해야 한다.
둘째, 남북의 관계 정상화다. 과거 합의의 교훈을 살려 신뢰를 축적하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세대 간 계승이다. 박한식 평화연구소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세대가 평화를 추상적 이상이 아닌 실천 과제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평화의 씨앗은 남아 있다
박한식 교수의 삶은 완결되지 않은 과제와 함께 끝났지만, 그의 사상과 실천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평화는 서로 다 살자는 논리"라는 그의 말처럼, 한반도의 미래는 배제와 승리가 아니라 공존과 지속 가능성에 달려 있다.
한 사람의 중재자가 떠났지만, 그가 뿌린 평화의 씨앗은 남아 있다. 이제 그것을 키우는 일은 남은 이들의 몫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이코노미스트, 통계학자로 살고 있습니다
공유하기
'카터 방북 중재' 평화실천가 박한식 교수 별세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