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찮아, 괜찮아>
불광출판사
그것은 '모두와 잘 지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고 아프거나 다쳐도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할아버지의 말과 존재를 안전기지 삼아 '세상은 꽤 괜찮은 곳'이라고 받아들이며 위험과 고난을 넘어 성장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큰 만큼 나이가 들어 약해지신 할아버지에게 자신이 무수히 들었던 말과 사랑을 돌려드리고자, 할아버지에게 향한다.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는 책을 읽고 나니, 왠지 몸과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 시렸던 손과 발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아이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걸까. 나는 내 곁을 지키던 아이에에게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어?"라고 물어봤다. 아이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지"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돌아보니 나 역시 그랬다.
방황했던 20대 시절. 외롭고, 허전하고, 혼란스럽고, 아픈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 줄 몰라 홀로 끙끙 앓고 있었던 때에 읽었던 시인의 시에도 '괜찮다'는 말이 노래의 후렴구처럼 반복되었다.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라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
울고
웃고
수그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운명(運命)들이 모두 다 안기어 드는 소리, ……
- 서정주,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中
거센 눈발이 날리는 겨울 산속에 사는 어린 생명들도 보듬어 안아줄 것만 같은,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괜찮다'라는 말이 '새파라니 얼었던' 내 마음도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년 전 읽었던 한강의 '괜찮아'라는 시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시에서 밤마다 몇 시간씩 울음을 그치지 않는 어린 아기를 안고서 '왜 그래, 왜 그래' 하며 울던 엄마는 어느 날 아이에게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며칠 뒤 울음을 그친 아이를 보고선 시인은 말한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한강, '괜찮아' 中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실수를 하거나 잘못했을 때,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도대체, 왜 그래? 왜 그랬어?'라고 다그쳐 묻던 것은 내가 자라오며 들었던 말이었고, 습관이 된 행동이었다. 그런 깨달음 후에도 '괜찮다'라고 말을 건네는 것에는 꽤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몸과 입에 밴 익숙한 습관을 바꾸는 데에는 그만큼의 용기와 여유, 힘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친절한 말을 건네는 것이 그렇게 어색하고 쑥스러울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나에게 너그러워질수록, 남에게도 다정할 수 있다는 것을 갈수록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마흔이 넘은 뒤로는 예전처럼 거창한 새해 목표를 잡지 않는다. 그저 나와 남에게 좀더 친절하고, 다정한 매일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한해는 "괜찮다. 괜찮다"라는 말을 좀 더 자주 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싶다. 어쩌면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가장 필요한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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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예술가로 살아가며 교육, 예술, 심리에 관한 기사를 씁니다. @school_d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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