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back 홍보 이미지 (위), Proud2Bme 팟캐스트 중 한 에피소드의 썸네일. Proud2Bme는 섭식장애 경험자와 가족을 위한 네덜란드의 온라인 커뮤니티이자 디지털 돌봄 생태계다. 4명의 에디터와 약 30명의 자원활동가가 모든 게시글과 대화를 상시 중재하며, 자동화보다 인간의 판단을 우선한다. 온건한 중재를 원칙으로 하되, 당사자와 가족을 분리한 구조 속에서 신뢰와 책임을 유지한다. 공적 보조금으로 운영되며, 소셜미디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Proud2Bme
JLA 프로젝트를 떠받친 신뢰의 인프라: 당사자 커뮤니티 Proud2Bme
인터뷰 후반, 나는 디지털 헬스와 AI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캐나다와 호주에서는 같은 JLA 방식이 더 기술 중심적인 연구 의제를 도출했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은 신중했다.
"예측이라는 측면에서 AI가 지금 단계에서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AI는 우리가 측정한 것만 볼 수 있고, 측정하지 않은 것은 학습할 수 없다. 상관관계는 언제든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이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네덜란드에는 디지털 도구가 존재한다. 에릭 판 푸르트가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출신의 동료와 함께 2009년 구축한 플랫폼 Proud2Bme는 섭식장애 경험자와 가족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로, 수십 명의 중재자와 자원활동가가 모든 게시글과 대화를 상시 관리한다. 익명성은 보장하되 방임하지 않는 운영 원칙은, 이곳을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라 '관리되는 돌봄 인프라'로 만든다.
또한 Proud2Bme 생태계 안에서 개발된 '구조화된 자기 도움(guided self-help)' 프로그램 Featback은 본격적인 의료 개입 이전에 발생하는 '치료 공백'을 체계적으로 메운다. 이는 치료를 대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당사자가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조기에 다음 단계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수행한다.
참여를 연출하는 정책이 아니라, 구조를 시험하는 책임
인터뷰를 조율하며 메일을 주고받는 동안, 에릭 판 푸르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제 생각에 임상의가 하는 일의 약 80%는 자신이 속한 의료 시스템에 의해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섭식장애 치료와 연구가 제도, 재정, 거버넌스라는 구조적 틀에 얼마나 강력하게 예속되어 있는지를 짚어낸 진단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의 섭식장애 PSP가 보여준 것은 '더 나은 임상가'나 '더 진보적인 연구자'의 탄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질문이 생성되고, 걸러지고, 살아남고, 예산과 연결되는 경로 전체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구조적 실험이었다.
이 실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신뢰가 축적된 당사자 커뮤니티,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그리고 전문가의 독점적 발언권을 제한하는 엄격한 절차였다. 결국 임상의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그의 윤리 의식 이전에 시스템이 허용하는 경계 안에서 결정된다. 섭식장애의 돌봄과 연구를 둘러싼 정치는 의욕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이 어디에서 발생하고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결정하는 '인프라 설계'의 문제다. 네덜란드의 사례는 바로 그 인프라가 공고할 때에만 비로소 '환자의 언어'가 비로소 연구와 정책의 공용어로 번역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이 글은 약 1만 4천 자 분량의 원고를 축약한 버전입니다. 전체 글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블로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원문에 포함된 주요 논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제임스 린드 얼라이언스(JLA)
○ 네덜란드 섭식장애 연구 우선순위 설정 프로젝트 (2015-2016)
○ 보여주기식 참여를 거부하는 PSP의 엄격한 거버넌스
○ 네덜란드 섭식장애 PSP가 드러낸 질문들: 회복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 디지털 헬스와 AI: 가능성보다 한계가 먼저 드러나는 지점
○ Proud2Bme: '참여'를 가능하게 만든 전제 조건
○ 런던 국제 섭식장애 컨퍼런스와 ARFID
○ 네덜란드의 현재: 정신질환, 고통, 안락사의 문제
▶ 전체 글 보기: https://rabbitsubmarinecol.weebly.com/home/lt-7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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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로 구성된 비영리임의단체로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s Awareness Week)'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라는 이름은 '(섭식장애) 환자는 결핍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위기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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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 연구, 왜 환자의 질문은 늘 빠져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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