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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모으다 우체국서 일합니다... 수집의 묘미 아시나요?

1980년대 인기 끌던 '우표수집' 문화, 시대의 가치 담은 취미

등록 2026.01.27 20:12수정 2026.01.2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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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우표수집에 꽂혀서 우체국과 우표상을 제집 드나들 듯하던 한 아이는 30여년 후 우정사업본부 공무원이 되었고 지금까지 14년째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이 글은 그 시절과 우표수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금은 관심 가진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80년대 우표수집은 오늘의 대중문화처럼 저변이 넓은 '대중취미'에 가까웠다. 나를 포함한 우리 식구들이 우표를 처음 수집하게 된 건 당시 기업의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하시던 아버지가 식구들에게 보내온 편지 때문이었다. 편지에 붙은 외국우표는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신문물'이었다. 편지봉투에 물을 묻혀가며 조심스럽게 떼어낸 우표를 보관하기 위한 'Stock Book'을 구입해 하나둘 모아가던 수집 대상이 국내우표로 넓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우표 사려고 모인 사람들

처음 수집한 외국우표들 우표수집의 계기가 되었던 외국우표
▲처음 수집한 외국우표들 우표수집의 계기가 되었던 외국우표 유상준

그 시절을 증언하는 신문이나 보도 사진집에는 새로 나오는 우표를 먼저 사기 위해 우체국 앞에 새벽부터 장사진을 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 모습이 종종 나오곤 한다.

1979년 국민(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이 '아이들' 속에 들어가기엔 조금은 어린 나이였다. 이듬해 '정의사회구현'을 모토로 등장한 새로운 대통령은 우표문화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사람들이 잘 아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는 대통령에 두 번 취임하고 그때마다 다른 기념우표를 다량으로(11대 700만매, 12대 1100만매) 발행하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그의 재임기간은 '빛나는 대통령우표의 시대'였다. 그가 다른 나라를 방문하거나 외국의 국가원수가 우리나라를 방문(방한)하는 경우 항상 이를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었다.

전두환 대통령 취임우표 제11대 12대 대통령 취임기념우표 각각 700만, 1100만장씩 발행
▲전두환 대통령 취임우표 제11대 12대 대통령 취임기념우표 각각 700만, 1100만장씩 발행 유상준

그런데 당시 우취인들과 학생들 사이에선 기념우표 중에 '대통령 우표'가 가장 가치 있다는 풍문이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우표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질까'이다. 우표도 하나의 수집품이기에 그 가치를 결정하는 제일 조건은 희소성이라고 보아야 한다. 내가 기억하기로 당시 기념우표도 아닌 보통우표 중 '금관총금관(액면가 100원)우표가 매우 비쌌던 이유도 발행량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역사적 의미(예로 올림픽우표 등), 그리고 '우표나 우체국 등 우정에 관한 우표(우정100주년 우표, 필라코리아 우표 등)와 가끔 발행되는 '특별우표(우표취미주간 우표, 육영수 여사 추모우표)'가 그 뒤를 이었다.

우정 100주년, 필라코리아 기념우표 우체국과 우표에 관한 우표들
▲우정 100주년, 필라코리아 기념우표 우체국과 우표에 관한 우표들 유상준

가장 '가치 있다는' 대통령우표를 수집하는 데는 한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연초에 그해의 <우표발행계획>을 공지하였는데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대통령우표'는 여기에 포함될 수 없었다. 국민학생이던 내가 이따금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건 어린아이가 벌써 사회에 관심이 있나 하는 주변의 생각과 달리 그 대통령의 동정을 파악하여 우표를 사러 가기 위해서였다.


'빛나는' 대통령 우표들 80년대 우체국키즈들을 바쁘게 했던 대통령우표들
▲'빛나는' 대통령 우표들 80년대 우체국키즈들을 바쁘게 했던 대통령우표들 유상준

학교에서는 아이들 사이에 우표 수집을 하는 또래 집단이 생기고 이들은 책가방에 자신의 '우취컬렉션'을 넣어서 다니면서 서로 자랑하기도 하고 자기에게 많은 우표는 다른 친구들과 바꾸기도 하였으며 새로운 우표가 나오는 날엔 우체국에 가서 경쟁적으로 우표를 사고 또 우표를 싸게 판다는 우표상에 관한 정보가 있으면 조금 멀리까지도 '원정'을 다니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 내 친한 친구들은 거의 우표를 연결고리로 하여 사귄 친구들이었다.

이렇게 우표 수집을 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교육효과도 있다. 한 장의 우표에는 그 사회와 시대의 가치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우표를 보면서 거기에 나온 동,식물이나 유무형의 문화유산에 대해 저절로 관심을 가지게 된다든지, 소양강댐이나 국회의사당이 언제 준공되었는지, 우리나라가 언제 100억 불 수출을 달성했는지 등 현대사 상식이 풍부해지고 7~80년대 보통 우표로 몇 차례 발행된 가족계획(산아제한) 우표를 보며 그 시대적 분위기를 파악하는 등.


가족계획 보통우표 '둘만 나아 잘 기르자' 시대를 증언하는 우표
▲가족계획 보통우표 '둘만 나아 잘 기르자' 시대를 증언하는 우표 유상준

이렇게 우표와 친해지며 수집에 몰입해 있을 때,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대통령 우표'가 최고던 시절 교황님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이 땅에 입을 맞춘 것이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지 200주년을 맞아 한국에 오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둥그둥글한 얼굴에 교황의 상징과도 같은 하얀 모자가 너무 잘 어울리며 후덕하고 인자한 모습의, 요즘 말로 성직자로서의 아우라가 넘치는 그런 분이었다.

천주교200주년, 교황요한바오로2세 방한 기념우표 당시 필자가 대통령우표보다 휠씬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우표
▲천주교200주년, 교황요한바오로2세 방한 기념우표 당시 필자가 대통령우표보다 휠씬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우표 유상준

당연히 기념우표가 발행될 것인데, 당시 나의 어린 마음에 대통령 우표가 그렇게 가치가 있다는데 세계 유일의 교황 우표는 얼마나 가치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아마도 백배 천배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이전까지 다른 우표는 학교를 마치고 학교 근처의 중곡동 우체국에 가도 스무 장짜리 전지나 두 장짜리 소형시트, 네 장짜리 우표에 '한국조폐공사 제조'라는 테두리 글씨가 붙은 명판을 구입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번엔 얘기가 달랐다. 전 세계에 단 한 분뿐인 교황님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신다고 하지 않나. 그날 등교하면서부터 내 마음은 조바심치기 시작했다. 그날 체육 시간에 몸이 아프다며 운동장 벤치에 쉬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진 건 절대 계획적인 게 아니고 우발적 충동에 따른 것이었다. 그 시간에 사라진 그 아이는 우체국에서 교황 시트를 돈 되는대로 열 몇 장 쯤 샀다. 그것은 나중에 친구들의 조금 더 가치 있는 우표와 교환돼 그의 컬렉션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표 수집을 시작한 이상 새로 나오는 우표에만 만족할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는 1884년 갑신정변(우정총국 개국)이래 수많은 우표를 발행해 왔고 옛날 우표를 구경하고 몇 장이라도 구입하려면 우표상을 찾아야 했다. 멀지 않은 곳에 단골 우표상이 생겼고 나는 그 시절 가외로 생기는 용돈의 상당 부분을 이곳에 가져다 바치게 된다.

언젠가 문단에서 식물애호가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윤후명 선생이 한 산문집에서 자신은 꽃나무를 사러 종로3가의 묘목시장에 하루에 두 번도 간 적이 있다고 쓴 걸 봤다. 이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을 한 건 나도 같은 우표상에 하루에 두 번 찾아간 적이 있어서다.

나의 단골 우표상이 공교롭게도 당시 부모님이 다니시던 교회에서 길 하나 건너면 되는 곳에 있었던 것은 어린 나를 교회로 이끈 동력이기도 했다. 당시 우표상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우표가 있었는데 하나는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우표로 액면가보다 조금 비싸거나 말만 잘하면 액면가에도 살 수 있는 우표와 다른 하나는 1970년대 이전 비교적 옛날 우표로 눈으로 구경만 할 뿐 선뜻 살 수 없었던 것들이다.

내가 한동안 부모님과 함께 교회의 장년부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한 건 우표를 한 장씩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교회를 마치고 엄마는 다른 신도들을 만나 친목을 다지거나 같이 식사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 손을 이끌고 길 건너의 우표상에 갔다. 그럴 때면 주인아저씨는 나한테 하는 것보다 더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값도 많이 깎아주곤 하셨다. 이렇게 아버지까지 안면을 트는 사이가 되자 아저씨는 어느 날 나에게 '한국우표앨범(1973~77년)'이라는 정식 수집 책자 한 권을 선물했다. 그건 5년 단위로 한국에서 발행된 모든 우표의 음영을 수록해서 그 위에 실물 우표를 붙이면서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공식' 수집책이었다.

필자의 한국우표앨범 속지 한국우표앨범은 전문 우취인들을 대상으로 우표상협회에서 제작하였다
▲필자의 한국우표앨범 속지 한국우표앨범은 전문 우취인들을 대상으로 우표상협회에서 제작하였다 유상준

나에게 더 많은 우표를 팔기 위한 아저씨의 계산이 작용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때 난 속았다거나 하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은 것이 그제야 비로소 나도 정식 수집가 같은 진지함으로 수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수집 대상 우표를 보고 오래 생각하며 그 우표의 정보 예를 들어 디자인이나 발행 부수 등의 정보도 차분히 챙겨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해당 우표를 구하면 우표에 지문이나 때가 묻지 않도록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잡아 햇빛에 비춰 이리저리 살펴보며 마운트라고 하는 우표보호용 비닐에 담고 양면테이프를 이용해 해당 우표의 음영에 붙이며 그 페이지 수집이 끝나면 보호필름으로 전체를 한 번 더 감싸서 보관하기에 이때만큼은 전문 수집가의 포스를 닮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나이 때에 다른 어떤 걸 그처럼 진지하게 해본 적이 있을까 싶다.

80년대 우표수집의 최고 정점은 당시 민족중흥의 역사적 계기가 될 것처럼 말해진 88 올림픽우표다. 올림픽우표는 1985년부터 88년도까지 태극 모양 올림픽 휘장과 마스코트인 호돌이를 시작으로 24개 경기종목을 형상화한 우표와 성화봉송과 주경기장 모습을 담은 우표까지 순차적으로 발행되었다. 올림픽 우표들은 당시 보통우표가인 70~80+30원이나 370~470+30원의 고액액면가 우표로 발행되기도 하여 내 주머니 사정을 좋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이 우표들을 우체국에서 사고 빠진 것들은 우표상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다.

88 서울올림픽우표 올림픽우표는 85년부터 88년까지 계속 발행되었다
▲88 서울올림픽우표 올림픽우표는 85년부터 88년까지 계속 발행되었다 유상준

우편 수집의 열의가 전만 같지 못했던 것은 중학교 입학과 함께 또래의 '우체국키즈'가 뿔뿔이 흩어졌던 것도 있고, 커가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약간 '삐딱'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표 수집을 딱 끊은 것은 아니고 이따금 우체국에 가면 마음에 드는 우표들을 한두 장씩이라도 구입해서 보관했고 이런 정도의 수집은 우체국에 근무하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세상이 점점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의 취미나 관심들도 세분화되고 우표 수집이라는 것도 예전만큼 인기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또 이메일이나 스마트폰 등 대체 통신수단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전통 통신수단인 손 편지가 사라져가면서 우표문화는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 우표발행 종수도 줄어들고 한때 몇백만 장에서 천 만장 단위까지 발행되었던 기념우표는 지금 몇십만 장 단위로 발행량이 축소되었다. 흔히 한 나라의 역사, 문화가 담긴 우표를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예술품'이라고 한다. 우정사업본부에서는 현재 '나만의 우표'나 한류 우표, 캐릭터 우표 등을 발행하여 우표문화를 진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 사회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속도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정성 들여 적은 손편지에 예쁜 우표 한 장을 붙여 우체통에 넣고 답장을 기대했던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을 상징하는 우표문화, 한때 나의 열망이었던 우표, 그 느림의 문화가 지속되기를 그리고 그와 더불어 사회는 더 여유롭고 인간적이기를 희망한다.
#우표 #수집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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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한국 중세사를 연구했었습니다. 또 저는 생태 환경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이 분야의 글도 가끔은 쓰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글을 많이 또 취재를 해가면 쓰는 사람은 아니고 가끔씩 저의 주장이나 생각을 논설형식으로 쓰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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