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모태 출자펀드 신규 투자 기업 지역별 분포 (단위: %) 모태 출자펀드 결성/투자/회수 현황
한국벤처투자
투자는 회수를 전제로 한다.
투자금을 떼이지 않으려면 경쟁력을 갖춘 똘똘한 친구를 찾아야 한다. 투자처를 선별하는 기준은 '어느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가?'다. 주식시장도 벤처투자시장도, 모태펀드도 원리는 같다. '탁월한' 기업은 투자자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배척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를 추구하는 '훌륭한' 기업은 투자를 받을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진 않다. 사회·환경적으로 유의미한 임팩트(impact)를 창출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자(子)기금을 두드리면 된다. 2011년에 만들어진 사회적기업펀드(고용노동부), 2018년에 결성된 소셜임팩트펀드(중기벤처부)가 그렇다. 임팩트투자에 식견과 경험을 갖춘 투자회사가 이 기금을 운용한다.
임팩트투자란 가치와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가치를 창출하면서 돈도 버는 투자 방식이다. 외국은 2000년 초반에, 우리나라는 2010년을 전후해 흐름이 형성됐고 정부 정책자금이 투입되면서 시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모태펀드가 임팩트투자 시장을 이끄는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한 것이다. 약 15년이 흐른 지금, 임팩트투자 생태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외형은 커졌지만, 정책자금 의존도가 강하고 민간 투자자의 참여도는 낮은 수준이다. 임팩트투자시장이 활성화하려면 공공기금, 금융회사, 일반기업, 개인 등 다양한 집단이 공급자로 참여해야 하는데 정부와 지자체, 일부 대기업 외에 이 영역에 관심을 두는 곳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기금을 조성해도 운용사(GP)들이 투자자(LP)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벤처투자시장의 침체다. 팬데믹 이후 국내외 경기 불황의 여파로 투자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 벤처캐피털이 늘고 있다. 투자 효율 측면에서 보면, 임팩트투자는 벤처투자보다 수익률이나 회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벤처투자도 꺼리는 상황에서 임팩트투자 시장이 위축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른 하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 기업 경영의 핵심 가치로 추앙받던 이에스지(ESG)의 표류(漂流)다. 팬데믹 시기,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던 이 새로운 표준(new normal)은 미국발 반-이에스지(anti ESG) 흐름이 형성되면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 기후 위기(E) 극복과 불평등(S) 해소를 위한 노력은 반드시 실행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자본을 통한 자본주의의 혁신'이 얼마나 허약한 구호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팬데믹은 사회·환경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위기가 사라지자 기업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다. 기업의 목적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며, 가치는 돈이 되지 않는다. 자본은 다만 이익을 쫓을 뿐, 가치는 관심사가 아니다.
시장 투자자는 수익이 우선(profit first)이고 따라서 금전적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탁월한' 기업을 원한다. 임팩트 투자자는 사회·환경적 가치를 창출하는(mission first) 기업에 투자하며 따라서 사명감을 가진 '훌륭한' 기업가를 찾는다. 가치와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지만, 수익이 가치 앞에 놓이는 게 아니라 '가치 먼저, 수익 나중!'이다.
그러므로 임팩트투자 생태계가 만들어지려면 이 원리를 따르는 '착한' 투자자들이 늘어나야 한다. 착한 투자자는 누구인가. 정부, 공공기관, 금융회사, 연기금, 공익법인, 자선투자자, 깨어 있는 시민이다. 정부의 역할은 공익적 가치를 따르는 투자자 집단이 임택트투자에 동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접근법은 다양하다. 손실기금(loss fund)을 통해 투자위험을 줄여줄 수도, 세제 혜택(tax benefit)을 제공할 수도 있다. 시민투자(crowd-funding) 플랫폼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있고, 사회가치거래소(social stock market)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핵심은, 훌륭한 기업가가 금전적 어려움 때문에 좌절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임팩트투자를 운용하는 모습은 자본시장의 원리와 방법론을 따를 뿐, 투자자의 참여를 촉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진 않다. 정부가 출연하는 기금 일부를 할당했으므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임팩트투자도 벤처투자의 문법을 적용하면 된다고 믿는 것일까. 이는 필요조건일 순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혁신기업을 돕는 길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조건 없이 주어도 되고(후원), 수익을 바라지 않고 투자하는 방식(자선투자)도 있다. 임팩트투자는 회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자선투자(philanthropy)와 구별된다. 자선투자는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으므로 투자 범위가 넓지만, 임팩트투자는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업은 투자하지 않으므로 제약이 따른다.
자선투자는 가치 창출 확산에 기여도가 크지만, 투자자가 많지 않고 지속가능성의 한계를 갖는다. 임팩트투자는 회수한 자금을 재투자할 수 있지만, 투자 범위가 좁고 유사 사례(washing)가 창궐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벤처투자와 임팩트투자가 다른 것처럼, 자선투자와 임팩트투자도 같지 않다. 누구를 어떻게 돕는가에 따라 고유의 목적과 쓰임새가 존재한다.
정부가 침체한 벤처투자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큰 규모의 자금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혁신적인 기술과 성장 잠재력을 갖춘 '탁월한' 친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회와 환경을 위해 일하는 '훌륭한' 친구를 돕는 지원 체계를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자연 생태계가 유지되려면 여러 종(種)이 섞여야 하는 것처럼, 다양성을 잃은 사회는 쉽게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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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친구에게 투자하는 금융 생태계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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