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한 사람들은 아침마다 출근할 곳이 있던 시절이 그립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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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들은 아직 모두 현직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털어놓은 불안과 무기력은, 이미 퇴직 이후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도 마음은 먼저 밀려나 있는 상태, 중년의 불안은 그렇게 퇴직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2024년 서울시 정신건강통계 기준 퇴직 후 1년 이내 우울 증상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40%에 달한다고 합니다. 50대 후반 및 60대 초반 남성의 해당 비율은 특히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는 중년기의 정서적 어려움이 개인의 나약함보다는, 삶의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임을 보여줍니다.
중년이 되면 회사에서는 감당해야 할 부담이 늘어나지만, 입지는 점점 줄어듭니다. 가정에서는 자녀 교육, 부모 부양, 경제 문제까지 동시에 떠안아야 하는 책임이 커지는 시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만두고 싶다'라는 친구들의 말은 실제 퇴사 의지라기보다,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표현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 또한 누구보다 '그만두고 싶다'를 외치지만, 이 말 속에는 '과연 내가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까'라는 진짜 속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임원이 된 선배의 '이제 계약직이니까'라는 말처럼 중년이 되면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직장에서 자신의 쓸모와 필요, 대체 가능성 등에 대해 고민합니다. 섣불리 대부분 겉으로 티 낼 수 없는 중년의 불안은 침묵에 가깝습니다. 친한 친구들 앞에서조차 '힘들고 괴로워서, 당장 그만두고 싶다'라는 말로 자신의 불안을 대신하는 게 아닐까요.
감사와 불안 사이에서
얼마 전 만난 한 중견기업 임원은 과거 직장을 다니며 6년 동안 틈틈이 사업을 준비했고, 결국 회사를 나와 외국에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3년 정도는 잘 풀렸지만, 코로나19로 사업이 무너지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약 1년 반 공백 기간을 가진 끝에 다시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사업을 접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경제적인 부담도 아닌, 매일 아침 일어났을 때,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없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하지 않고, 소속감이 없다는 사실이 불안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출근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감사하고, 이전보다 훨씬 열심히 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 나를 부르는 호칭이 있다는 것,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중년에게 이러한 사실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정체성과 소속감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아닐까요.
어쩌면 친구들과 저는 아직 모두 회사에 다니고 있기에 감사를 먼저 떠올려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감사보다 먼저 불안을 생각하고, 아직 오지 않은 은퇴를 앞당겨 상상하며 적지 않은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지방에 가서 살면 살만할 거 같던데?"
"우리 나이에는 제 발로 회사 그만둬도 주변에서는 다 잘린 줄 알걸? 아마 가족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거야."
"얼마 안 남았다. 그냥 다녀라. 혹시 운 좋으면 임원이라도 될 줄 누가 아냐?"
제가 회사를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을 때 친구들이 건넨 말입니다. 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중년인 우리는 언젠가 떠나야 할 시점이 온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떠나기 싫어도 떠나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알기에, 등 떠밀리기 직전에 스스로 걸어 나오고 싶다는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은,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넋두리였을 뿐입니다.
왜 중년이 되면 이렇게 우울해질까요. 명확한 답은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감정이 개인의 나약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많은 중년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말을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주변을 돌아보면, 회사를 그만둔 이후 더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퇴직 이후 상당수가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는 통계는, '그만두면 편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반드시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실제로 회사를 떠나봤던 한 임원은 출근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큰 안정과 행복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중년의 불행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미래를 앞당겨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더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은퇴를 걱정하며, 현재의 시간을 불안으로 소모하고 있는 셈이죠.
현재를 살아갈 용기
중년의 불안은 단순한 나약함이 아니라, 생애 전환기를 앞두고 스스로 보내는 '생존 신호'에 가깝습니다. 이 신호를 막연한 공포로 치부하거나 무시한 채 현재를 불안에 저당 잡혀서는 안 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사 안의 나'가 유효할 때, '회사 밖의 나'를 지탱할 정서적, 현실적 근육을 미리 키우는 일입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친구들의 무기력한 얼굴은 '든든했던 명함이 사라진 다음 날부터 누구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친구들 얼굴, 현실 속 저를 떠올리며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되었다'라는 넋두리에 머무르기보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존재할 때 그 너머를 냉정하게 응시할 용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울의 통계에 휩쓸리지 않고, 오롯이 나로서 은퇴를 맞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준비,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인생 공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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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불안, 우울한 통계 대신 붙들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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