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왕언니 한 분의 아름다운 은퇴

오랜 세월 함께 운동한 가족 같은 왕언니들... 아쉽고 섭섭한 마음입니다

등록 2026.01.26 09:55수정 2026.01.2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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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중순의 일이다. "A언니 송별 회식이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많은 참석 바랍니다"라는 수영장 총무의 공지가 떴다. 우리 라인은 두 달에 한 번 단체 회식이 있는데 A언니가 그만둔다고 하니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 1월 회식이 있다고 단체 대화방에 뜬 것이다.

A언니가 그만두기 한 달 전 쯤부터 그런 이야기가 가끔 나왔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그만둘 줄은 몰랐다. 수영 강사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언니는 무릎 두 군데 모두 퇴행성 관절염이 찾아와 수술도 했고 허리도 아팠다. 수영장 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란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우리 라인 중 누구라도 보면 언니에게 도움을 주곤 했다. 그럼 언니는 "고마워요" 하며 고마운 마음을 꼭 전했다.


 왕언니들의 수영을 보며 늘 했던 생각.
왕언니들의 수영을 보며 늘 했던 생각. thomascpark on Unsplash

우리 라인은 91세, 89세, 86세의 세 분의 왕언니들과 운동을 해왔다. 이 세 분은 수영이 끝나면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헤어지신다. 우리는 그런 언니들을 보면서 "난 저 나이까지 수영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가 없어" "난 아침에 나오기 싫으면 저 세 분 생각하고 온다니깐" 했다.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감기 몸살로 며칠 동안 못 나온 B도 나왔다. 개인 사정으로 쉬고 있었던 C도 나왔다. 우리 라인 12명이 모두 나온 것이다. 한 언니가 "와 우리 라인의 단결력과 의리 하나는 끝내준다. 최고야 최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A언니는 모두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2차는 자신이 살 테니 커피 마시러 가자고 했다. 이런저런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헤어져야 할 시간. A언니에게 건강하게 잘 지내시라고 인사를 하면서도 쉽사리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일 큰 왕언니께서 당신(A언니)이 먼저 가"하신다. "그래야겠지" 하면서 A언니가 아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한동안 멀어져 가는 A언니를 지켜보았다.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다. 그리고 한 주가 흘렀다.

"여기 이 자리가 A언니가 앉아서 발장구 차던 자리인데. 빈자리가 너무 크다. 언니 그렇죠?"
"그럼, 나하고는 33년인가 34년을 함께 수영했는데."

15년을 함께한 나도 무척 섭섭한데 왕언니의 섭섭한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제일 큰 왕언니하고는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3번은 꼭 만났으니깐. 우리 라인 모두 잠시 그 언니를 생각하는 듯했다. A언니는 25m 길이의 수영장을 완주는 못했다. 속도가 느리고 힘이 들어서이다. 중간까지 와선 쉬었다가 다시 오곤 했었다. 그러면 "언니 힘드시죠? 쉬엄쉬엄하세요" 하며 그 언니를 응원하곤 했다.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떠난 언니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은퇴 전후의 6070 시니어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봅니다.
#89세언니,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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