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기부 ON 키오스크
김주환
1월 25일, 추위 때문인지 유난히 길게 느껴진 퇴근길이었다. 집으로 향하던 중 참을 수 없는 허기에 이끌려 중간 기착지인 지행역 대신 양주역에서 잠시 발을 뗐다. 개찰구를 빠져나와 간식거리를 찾던 내 눈에 띈 것은 여느 역에서나 볼 수 있는 음료 자판기가 아니었다.
흰색 바탕에 '경기, 기부ON'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힌 키오스크, 바로 '기부 자판기'였다. 자판기 화면에는 '취약계층 지원'과 '지역사회 연계' 등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문득 20대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는 열정 하나로 동두천에 있는 보육원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적은 금액이나마 정기적으로 기부하며 나눔의 기쁨을 누리곤 했다. 하지만 어느덧 나이가 들고 현실에 치이다 보니, 기부라는 단어는 내 삶에서 먼 나라 이야기처럼 담을 쌓고 지낸 지 오래였다.
허기를 달래줄 콜라 한 캔과 빵 하나만 사도 3천 원이 훌쩍 넘는 시대다. 그에 비해 화면에 뜬 '1000원'이라는 기부 금액은 가볍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가벼운 금액이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망설임 없이 '기부하기' 버튼을 눌렀다.

▲ 키오스크 결재화면
김주환
결제기에 카드를 대자 '결제 완료, 영수증 출력을 하시겠습니까?'라는 메시지가 떴다. 영수증 한 장에 담긴 숫자는 단돈 1000원이었지만, 그 순간 느껴진 마음의 배부름은 편의점의 그 어떤 간식보다도 든든했다.
전철 타는 것을 좋아해서 여러 정류장을 다녀봤지만 다른 정류장에는 환전용, 금거래, 크리스피도넛 자판기들이 있는데 양주역에 있는 기부 자판기야말로 곳곳에 더 설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주역 개찰구 앞에 묵묵히 서 있는 이 기부 자판기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묻고 있는 듯했다. 당신이 잊고 지낸 것은 무엇이냐고. 거창한 금액이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그 작은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오늘 양주역에서 다시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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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퇴근길, 천 원으로 채운 마음의 배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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