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130.0 x 162.2 한지+수간채색) / 1977년 (故) 김성규 화백 作. 언제나 우리 뒤에서 든든한 생울이 되어주셨던 부모님. 그 사랑 덕분에 우리는 세상의 거친 바람을 견딜 수 있었다.
김봉석
어른이 된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그 생울이 더 이상 부모님만의 역할이 아님을 말이다. 기댔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 스스로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낯설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것은 삶의 가장 자연스러운 순환이다.
누군가의 뒤를 지켜주고, 서툰 걸음을 받아주고,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을 하다 보면 뭉클한 깨달음이 찾아온다.
"아, 이건 내가 어릴 때 받았던 그 마음이구나."
생울은 그렇게 세대를 건너 이어진다. 한 세대가 온몸으로 막아낸 바람은 다음 세대를 감싸는 온기가 되고, 지난 시절의 낡은 울타리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지켜주는 넉넉한 그늘이 된다.
울타리는 경계가 아니라 다정한 '이음'이다
울타리는 단절의 경계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다정한 방식이다. 우리는 그 생울 속에서 자라 다시 누군가의 생울이 되어가는 존재들이다. 이 이어짐이야말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단단한 사랑의 형태일 것이다.
머나먼 타국 땅, 노트북 화면 속에 평생 화가이자 미술 선생님으로 사셨던 아버지가 남기신 그림 한 점이 보였다. 그림 속에는 서툰 듯하면서도 강인한 필치로 그려진 물고기, '익투스'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아버지가 평생 삶의 지표로 삼고 소중히 여겼던 준주성범(15세기 라틴어로 저술된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신심에 관한 천주교서)의 구절이 담겨 있다.
"사랑은 깨어 있고 혼수상태로 잠들지 아니한다. 어려워도 피로를 느끼지 않고 기운이 소진해도 쓰러지지 않으며 공포를 느껴도 요동하지 아니한다." - <준주성범> 제3권 5장

▲(故) 김성규 화백 作, 아버지가 남긴 사랑의 정의. 익투스(물고기) 그림 아래 정갈하게 적힌 문구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평생 흔들림 없는 '생울'이 되어주셨던 아버지의 삶 그 자체다.
김봉석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누군가의 울타리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곁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어떤 거센 풍랑 속에서도 눈을 뜨고 깨어 자식을 지켜내는 일임을. 기운이 소진되어도 차마 쓰러질 수 없고, 공포 앞에서도 결코 요동해서는 안 되는 숭고한 소명임을 말이다.
이제 나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이 '사랑의 선언'을 가슴에 품고 다시 길을 나선다. 척박한 땅에 뿌리 내리고 거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우리를 지켜준 아버지라는 이름의 거대한 '생울'. 그 단단한 사랑 안에서 자란 아이는 이제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새로운 울타리가 되어간다.
이것은 끝이 없는 사랑의 대물림이자,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한 사랑의 형태다. 나의 생울은 그렇게, 아버지의 기도와 나의 다짐을 먹고 오늘도 쉼 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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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간의 안정된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부부가 함께 은퇴 후 시작한 새로운 여정. 안정된 삶 대신 꿈을 선택한 40대 파이어족의 좌충우돌 '은퇴 후 삶'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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