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 청국장 백반 상차림
박도
작가는 쓰는 기쁨에 글을 쓴다
사실 나는 이 겨울 아주 독한 마음을 먹고 언젠가 죽기 전에 꼭 쓰고 싶었던 고향 선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진면목을 그린 산문집 <박정희를 스케치하다>(가제)를 막 탈고했다. 이 작품은 본격적인 소설 <인간 박정희의 삶과 죽음, 또는 '토사구팽'>(가제)을 쓰기 전의 작품으로,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이야기로 들은 걸 모아 한 권의 산문집으로 썼다. 아직 출판 여부는 미정이나 일단 탈고했다는 데 어떤 뿌듯함이 있다. 사실 작가는 이 기쁨 때문에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평소 알고 지내는 정희성 시인은 발표하지 않은 시 세 편을 지니고 있으면 부자 부럽지 않다고 했다.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지난날 같으면 이미 선인세를 받고 출판사로 넘겼을 원고를 나는 기필한 지 석 달을 넘겼는데도 여태 끼고 있다.
언제 출판될지도 모르지만 일단 탈고했으니 그래도 기분이 좋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자, 한 전직 언론인은 내 생전에 발표치 못하면 사후에라도 당신이 대신 출판해 주겠다고 언약을 하니 고맙지 아니한가.
차창 밖 썰렁한 겨울 경치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하는 새, 열차는 풍기 역에 닿았다. 풍기 역을 나서면서 청국장 집과 풍기면옥 두 단골 집 가운데 어느 곳을 갈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왠지 역에서 가까운 청국장 집 냄새가 나를 부쩍 유혹, 그 집 문을 열게 했다.
그 집은 늘 손님으로 만원이라 대기자 명부에 이름을 쓰고 밖에서 기다렸는데 이날은 추운 날씨 탓인지 빈자리가 많았다. 잠시 후 주문한 청국장 백반이 나왔다. 내가 10차례 정도 이 집 청국장 백반을 들었다. 늘 깔끔한 상차림과 그윽한 청국장 맛에 매번 감탄사를 연발하기 마련이다.
중소 도시 역전 청국장 집인 데도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까닭을 알 만하다.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는데도 청국장 뚝배기에는 찌개가 반 이상 남아 있었다. 내가 남기면 10중 8, 9는 곧장 쓰레기통으로 갈 것이다. 점원에게 그런 얘기를 하자 그는 남은 걸 포장해 주겠단다. 내 평생 장 맛이 좋다고 포장해 달라고 부탁하기는 처음이다.
경북 '풍기'하면 '인삼'을 연상케 하는 건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바다. 그래서 나는 풍기에 갈 때마다 인삼을 사다가 구룡사 들머리 내 단골 밥집에 무료 심부름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하기에 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풍기 지방의 또 하나 특산물은 소백산 꿀이다. 마침 내 집 주방에 꿀이 떨어졌기에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은 인삼 가게에 들렸다. 그러자 오랜 단골을 알아보는 사장님의 표정과 말씨가 춘향모 월매가 이몽룡 도령 대하듯 한다.

▲풍기 온천 소백산 풍기 온천장
박도
지상 극락이 여긴가 하노라
그곳을 나온 뒤 곧장 풍기 온천 행 25번 버스에 오르자 곧 소백산 밑 온천장에 내려준다. 샤워를 한 뒤 온천탕에 몸을 담그자 '지상 극락이 여긴가 하노라'다. 이곳 노천 온천탕의 일품은 노천탕에 비스듬히 누워 멀리 소백산 정상을 지긋이 바라보는 건데, 혹한기 탓인지 노천탕은 폐쇄됐다.
대신 온탕, 열탕, 건식 사우나, 습식 사우나 실을 번갈아 가며 즐긴 뒤, 버스정류장으로 나오자 죽령 산마루에서 내려온 버스가 나그네를 반겨 맞았다. 풍기 역에서 열차에 승차하여 제천 역에서 환승, 집에 도착하니 오후 7시가 조금 넘었다. 마침 전기밥솥에 밥 한 공기가 남아 있기에 청국장 싸온 걸 데워 먹으니 꿀맛이다.
잠들기 전, 이날 쓴 돈을 계산해 보다. 열차 왕복 8800(경로 우대)원, 시내버스 4회 8000원, 청국장 1만6000원, 목욕비 9000 원, 꿀 한 통 2만5000원 모두 66800원이다. 이 가운데 꿀 값을 제외하자 겨울 나그네 여행비는 총 4만1800원이다. 이만하면 겨울 나그네 작가의 행복한 하루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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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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