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큰 물을 좋아한다. 세계 최대의 댐, 초대형 정수장, 거대한 하수처리장, 그리고 대심도 지하배수터널까지, '크다'는 것은 곧 성과이자 자랑이 되어 왔다. 도시의 물 문제는 크게 만들어야 해결된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시대, 이 믿음은 물공급과 침수라는 두 지점에서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하나만 멈춰도 모두가 흔들리는 구조
수도권의 상수도 공급은 광역상수도 체계로 운영된다.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와 도수관로를 지나 정수장에서 처리한 뒤, 배수지를 거쳐 각 가정으로 들어오는 구조다. 이 시스템은 평상시에는 안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수원지, 도수관로, 정수장, 배수지 중 어느 한 곳만 문제가 생겨도 그 피해는 수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전파된다. 한두 군데의 문제라면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뭄, 폭염, 정전, 시설 노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 이 시스템은 사실상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기후위기는 바로 이런 '동시에 여러 곳이 흔들리는 상황'을 일상으로 만들고 있다.
멀리 보낼수록 커지는 탄소 부담
광역상수도는 에너지를 많이 먹는다. 물을 멀리 끌어올수록 더 많은 펌프와 전력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면서 물을 더 멀리 보내기 위해 에너지를 더 쓰는 것은 결국 탄소를 먹는 하마를 키우는 셈이다. 물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 탄소중립이라는 또 다른 목표와 충돌하고 있다.
홍수 대책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홍수 대응 역시 구조는 다르지 않다. 하류에 커다란 시설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물을 한꺼번에 처리하려 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두 가지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설계치보다 더 큰 비가 오면 실패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거대한 시설은 놀게 된다. 게다가 빗물은 더럽다는 인식 때문에 활용의 대상에서 아예 배제되어 왔다. 넘치면 버리고, 부족하면 다시 멀리서 끌어오는 구조다.
물공급과 침수, 해법은 하나다
그러나 물공급과 침수 문제는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다목적 빗물관리는 이 두 문제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 이미 서울의 스타시티에는 그 사례가 있다. 빗물을 모아 저장하고, 필요할 때 사용하고, 한꺼번에 흘려보내지 않는 구조다.
강남역 침수, 재개발이 해답이 될 수 있다
강남역 일대는 상습 침수 지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깊은 배수터널과 더 큰 펌프를 떠올린다. 하지만 만약 강남역 인근에서 재개발되는 아파트 단지들이 자기 단지에 떨어지는 빗물을 스스로 감당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광역상수도에서 공급받는 물의 양을 줄일 수 있고 저장된 빗물은 비상시 소방용수로 활용할 수 있으며 한꺼번에 하류로 쏟아지던 물이 줄어 강남역 침수 위험도 함께 낮아진다 하나의 선택이 물공급 안정성, 침수 대응, 안전성까지 동시에 건드린다.
도시계획에서 빠져 있는 '빗물'
문제는 이런 접근이 도시계획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도시계획은 여전히 도로, 건물, 용적률, 교통, 그리고 '큰 시설' 중심으로 짜여 있다. 빗물은 늘 주변부다. 흘려보낼 대상이지, 관리하고 활용할 자원으로는 취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의 시대에는 도시의 관리와 계획 자체가 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큰 것만 보는 도시에서, 버티는 도시로
이제 물 문제는 시설을 하나 더 짓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구조의 도시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큰 시설 하나에 의존하는 도시가 아니라, 작은 시스템들이 촘촘히 연결된 도시. 기후위기의 위험 앞에서 한 번에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도시. 그 출발점은 빗물을 다시 보는 것이다.
물의 크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크기를 바꿀 때
큰물을 더 키우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작은물을 늘려 도시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이야기하면서 도시계획에서 빗물을 빼놓는다면 그 말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도시는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계속 큰 것만 키울 것인가, 아니면 위기에 버틸 수 있는 구조로 바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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