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듣기
  • 허리 통증 싹 가신 순간, 할머니가 시작한 일

    사랑 듬뿍 담아 기록한 이야기... 손자 덕분에 참 행복합니다

    등록 2026.01.28 11:06수정 2026.01.28 11:06
    1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소중한 우리 아가, 너를 향한 할머니의 마음을 이곳에 적어보려 한다."

    첫 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지난 여름, 나의 계절은 지독한 겨울이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오는 통증 탓에 우울함은 어느새 발끝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도망치듯 집을 나섰던 어느 날, 느릿하고 힘겨운 발걸음을 멈춰 세운 건 쇼윈도 너머 선명한 색감의 아기 옷이었다.


    '아, 우리 손주 옷.'

    태어날 아이를 떠올리자 마법처럼 눈에 빛이 돌았다. 홀린 듯 들어간 매장에서 아기 옷 두 벌을 샀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묵직하게 짓누르던 허리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약도, 물리치료도 해내지 못한 일을 아기 옷 두 벌이 해낸 것이다.

    손자를 만나다

     지난 여름부터 쓰기 시작한 태교일기
    ▲ 지난 여름부터 쓰기 시작한 태교일기 최혜정

    집에 돌아와 앙증맞은 옷을 펼쳐 놓고, 이 몽글몽글한 감정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펜을 들었다. 그렇게 나만의 '할머니 태교 일기'가 시작되었다. 매일 밤, 아직 보지 못한 아이의 얼굴을 상상하며 일기장에 마음을 쏟아냈다. 아이와 함께할 미래를 꿈꾸는 동안 나는 더 이상 우울한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출산 소식이 전해진 날, 우리 부부는 갑자기 작아졌다. 어른이라는 이름은 잠시 내려놓고, 그저 수선스럽고 초조한 두 사람만 남았다. 온 집안을 서성일 때마다 거실의 시계추도 함께 덜컹거렸다. 이윽고, 아들의 들뜬 목소리와 함께 영상이 도착했다. 강보에 싸인 작은 얼굴. 그 안에서 아들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다.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내가 진짜 할머니가 되었음을.


    짧은 면회 시간, 빳빳한 신권과 정성 어린 편지를 챙기는 내 모습은 첫 데이트를 앞둔 소녀처럼 들떠 있었다. 비록 규정 때문에 꽃다발은 전하지 못했지만, 마음 만은 이미 만개한 꽃밭이었다. 아직 붓기가 남은 며느리를 안으며 "고생했다" 말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생후 5일 된 우리 손자.

    "아휴, 정말 주먹만 하네."


    작고 여린 생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했다. 이문재 시인은 시 <농담>에서 말한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손자와 지독한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하다. 무엇을 보든 마음의 끝은 늘 손자에게로 향하니 말이다. 손자가 태어나면 새로운 삶이 열린다더니, 과연 그 말이 맞았다. 아들이 보내주는 사진이나 영상은 수시로 나의 일상의 축을 뒤흔들며 세상을 환하게 만들어준다.

    거울 속에는 생기 넘치는, 충만한 표정의 내가 자주 서 있다. 나는 이 사랑에 기꺼이 빠져볼 생각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아무런 대가 없이 오로지 줄 수 있는 기쁨만으로도, 나에게 이미 완벽한 보상이 되어주었으니.

    다시 성장 일기로

     우리 손자의 손
    ▲ 우리 손자의 손 최혜정

    손자를 기다리며 써왔던 태교 일기는 이제 기분 좋은 마침표를 찍고, 손자의 성장을 기록할 새로운 장을 연다. 나날이 자라는 모습, 함께 하고 싶은 일, 함께 보고 싶은 풍경, 그리고 때로는 나의 소소한 고민까지 쏟아내려 한다. 이 기록들이 쌓여가는 만큼, 서로의 마음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특별한 친구가 되길 꿈꾼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우리 손자의 작은 손을 가만히 만져본다. 먼 훗날. 할머니의 진심이 담긴 이 기록들을 마주할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너와 함께한 모든 날, 실은 네가 아니라 내가 행복하다.'

    이 고백을 가슴에 품은 채, 오늘도 우리만의 페이지를 가만히 펼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할머니 #사랑 #태교일기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60대 퇴직 교사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신입 환경미화원 월급 580만 원...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신입 환경미화원 월급 580만 원...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2. 2 '유해진 북한상'이 표현의 자유라면 1923년 '조센징상'은? '유해진 북한상'이 표현의 자유라면 1923년 '조센징상'은?
    3. 3 한국 아파트가 무너지기 쉬운 이유... 충격적인 국토부 문서 한국 아파트가 무너지기 쉬운 이유... 충격적인 국토부 문서
    4. 4 이 대통령님, '대국민 사기극'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대통령님, '대국민 사기극'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5. 5 금메달 들고 웃으며 "군대 안 간다"는 선수들 욕하기 전에 금메달 들고 웃으며 "군대 안 간다"는 선수들 욕하기 전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