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건조로 수분을 잃은 산지 토양의 모습 겨울철 한파 이후, 토양 표면에서 관찰된 얼음기둥(동상, frost heaving)과 동결 탈수 흔적. 땅속의 수분이 모세관 현상으로 위로 이동해 얼음으로 형성된 뒤, 녹거나 증발하며 사라지면서 토양은 급격히 건조해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산은 바짝 마르게 된다.
한무영
토양 표면의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땅속에 있던 물이 모세관 현상에 의해 위로 끌려 올라와 얼음으로 변한다. 이 얼음은 낮 동안 녹거나, 다시 대기 중으로 증발하며 사라진다. 토양 속 수분이 빠르게 고갈되는 이유다. 산은 이렇게,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마른다.
이 현상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한파가 전국을 덮은 만큼, 전국의 산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동시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고도가 높고 깊은 산일수록, 그리고 산불 이후 나무를 치워 토양이 노출된 지역일수록 이 건조 과정은 더 빠르고 강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우리가 산을 더 말리고 있지는 않은가
산불 예방을 위해 낙엽을 불쏘시개라며 치우고, 산불 이후 위험하다며 나무를 베어낸다. 그러나 그렇게 노출된 땅은 햇볕과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더 빨리 마른다. 산불을 막기 위한 조치가, 다음 산불의 조건을 만드는 셈이다.
반대로 쓰러진 나무를 뒤집어 보면 전혀 다른 장면이 보인다. 그 아래에는 물기가 남아 있고 벌레가 살며, 새들의 먹이가 된다. 쓰러진 나무는 쓰레기가 아니라 수분을 붙잡는 구조물이다. 이 나무를 활용해 물모이를 만들면, 그 주변의 토양 함수율은 눈에 띄게 높아진다. 아무리 건조한 기단이 내려와도 그곳은 촉촉함을 유지한다.
산불 경보, 이제는 토양 함수율을 봐야 한다
현재의 산불 경보 체계는 바람, 습도, 기단 이동 같은 기상 조건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 지표들은 산이 실제로 얼마나 말라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지 못한다. 불은 이미 마른 곳에서만 커진다.
이제는 산지 표면의 토양 함수율을 기준으로 한 산불 경보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언제, 어느 시점에, 어느 지역의 산이 실제로 마르기 시작하는지를 수치로 감지할 수 있다면, 산불은 갑작스러운 재난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위험이 된다.
경보는 경보로 끝나서는 안 된다. 토양 함수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는, 그 하락을 늦추는 사전 예방 조치가 동시에 시행되어야 한다. 물을 머물게 할 구조를 만들고, 토양 표면의 급속한 건조를 늦추는 조치가 필요하다. 물모이는 바로 이런 예방 조치의 대표적인 예다.
지금의 산불 대응은 마치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잠그는 대신, 문은 그대로 열어둔 채 도적이 들어온 뒤 얼마나 적게 훔쳐가게 할지만 고민하는 것과 같다. 헬기와 진화 장비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산불을 줄일 수 없다.
결론: 산불은 피할 수 없는 재난인가, 관리 가능한 위험인가
산불은 갑자기 시작되는 재난이 아니다. 불씨는 언제든 생길 수 있지만, 그 불씨가 걷잡을 수 없는 산불로 번질지는 산의 상태에 달려 있다. 겨울과 봄 사이, 산이 얼었다 녹으며 수분을 잃는 과정이 반복되면, 작은 불씨도 쉽게 확산된다. 이는 감각이나 추정이 아니라, 토양 함수율과 온도 관측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산불의 원인을 바람과 기단에서만 찾고 있다. 그러나 같은 기단 아래에서도 물이 머무는 곳은 마르지 않고, 불도 커지지 않는다. 산불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불씨의 유무보다 산이 얼마나 말라 있었는가다.
불씨를 완전히 없애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산이 마르지 않게 만드는 것은 관리할 수 있다. 이제는 바람을 탓하기보다, 산의 함수율을 살피고 물을 붙잡는 예방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
산불 예방의 열쇠는 진화 속도가 아니라, 산이 마르기 전에 시작되는 관리에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