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원인, 냉동실의 떡에서 답을 찾다

봄철 산이 건조해지는 과학적 메커니즘과 예방의 열쇠

등록 2026.01.28 09:42수정 2026.01.28 09:42
1
원고료로 응원
냉동실에 떡이나 생선을 오래 넣어두면, 비닐봉지 안에는 얼음이 맺히고 정작 떡과 생선은 푸석해진다. 얼음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안에 있던 물이 빠져나와 생긴 것이다. 매년 봄, 산이 바짝 마르는 현상도 이와 닮아 있다. 산불은 불씨로 시작되지만, 그 불씨가 대형 산불로 번질지는 겨울과 봄 사이 산이 얼마나 말라 있었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몇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산불의 원인이 외부에서 내려오는 건조한 기단 때문이라면, 왜 같은 영향권에 있는 일본과 중국에서는 같은 시기에 대형 산불이 반복되지 않는가. 같은 바람과 같은 공기를 맞고도 결과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또 같은 산 안에서도 물가나 저수지 주변은 왜 촉촉함을 유지하는가. 외부 기단의 영향은 동일한데, 물이 있는 곳은 마르지 않는다. 실제로 물모이를 만들어 빗물이 고인 곳 주변에서는 토양 함수율이 유지된다. 바람이 덜 불어서가 아니라, 물이 머물 수 있는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시기도 설명이 필요하다. 왜 산불은 늦가을이나 초겨울보다, 한겨울이나 이른 봄에 더 많이 발생하는가. 단순히 비가 적어서라면 가을에도 위험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관측 결과는 다르다.

실제 관측: 1월 23일, 산이 마르기 시작했다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측정 결과는 분명했다. 기자는 경기도 광주 야산에서 4년째 토양 함수율과 온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 야산에서 토양 함수율을 측정하는 빗물박사 경기도 광주 야산에서 토양 함수율과 온도를 측정하고 있는 빗물박사. 기자는 이곳에서 4년째 산지 토양의 수분 변화를 장기 모니터링하며, 겨울과 봄 사이 산이 급격히 건조해지는 과정을 관측해왔다.
▲경기도 광주 야산에서 토양 함수율을 측정하는 빗물박사 경기도 광주 야산에서 토양 함수율과 온도를 측정하고 있는 빗물박사. 기자는 이곳에서 4년째 산지 토양의 수분 변화를 장기 모니터링하며, 겨울과 봄 사이 산이 급격히 건조해지는 과정을 관측해왔다. 한무영

관측 자료에 따르면, 2026년 1월 23일, 땅 표면의 온도가 처음으로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하자 토양 함수율이 급격히 감소했다. 마침 이 시기는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던 때와 정확히 겹친다. 기온이 낮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토양 표면이 영하로 전환되는 임계 시점에 도달했을 때 수분 손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2023년 1월 23일-2월 13일 사이에도 관찰되었다.


한파 이후 산지 토양 함수율 급감과 표면 온도 하강의 동시 관측 결과 2026년 1월 21일부터 27일까지 경기도 광주 야산에서 측정한 토양 함수율(위)과 토양 온도(아래) 변화 그래프. 1월 23일을 기점으로 토양 표면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서, 여러 깊이에서 토양 함수율이 동시에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 관측됐다. 이는 땅속 수분이 얼었다가 모세관 현상으로 이동한 뒤 증발하며 사라지는 동결 탈수(동결건조) 과정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점은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한파 이후 산지 토양 함수율 급감과 표면 온도 하강의 동시 관측 결과 2026년 1월 21일부터 27일까지 경기도 광주 야산에서 측정한 토양 함수율(위)과 토양 온도(아래) 변화 그래프. 1월 23일을 기점으로 토양 표면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서, 여러 깊이에서 토양 함수율이 동시에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 관측됐다. 이는 땅속 수분이 얼었다가 모세관 현상으로 이동한 뒤 증발하며 사라지는 동결 탈수(동결건조) 과정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점은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한무영

이 과정은 토목공학과 식품공학에서 말하는 '동결건조(freeze-drying)' 또는 '동결 탈수' 현상과 유사하다. 낮은 온도에서 물이 얼면서도 동시에 이동·증발해 내부 수분이 빠져나가는 과정이다. 봄철 산이 마르는 현상 역시, 토양에서 이와 같은 동결건조 과정이 반복되며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때 땅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동결건조로 수분을 잃은 산지 토양의 모습 겨울철 한파 이후, 토양 표면에서 관찰된 얼음기둥(동상, frost heaving)과 동결 탈수 흔적. 땅속의 수분이 모세관 현상으로 위로 이동해 얼음으로 형성된 뒤, 녹거나 증발하며 사라지면서 토양은 급격히 건조해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산은 바짝 마르게 된다.
▲동결건조로 수분을 잃은 산지 토양의 모습 겨울철 한파 이후, 토양 표면에서 관찰된 얼음기둥(동상, frost heaving)과 동결 탈수 흔적. 땅속의 수분이 모세관 현상으로 위로 이동해 얼음으로 형성된 뒤, 녹거나 증발하며 사라지면서 토양은 급격히 건조해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산은 바짝 마르게 된다. 한무영

토양 표면의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땅속에 있던 물이 모세관 현상에 의해 위로 끌려 올라와 얼음으로 변한다. 이 얼음은 낮 동안 녹거나, 다시 대기 중으로 증발하며 사라진다. 토양 속 수분이 빠르게 고갈되는 이유다. 산은 이렇게,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마른다.

이 현상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한파가 전국을 덮은 만큼, 전국의 산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동시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고도가 높고 깊은 산일수록, 그리고 산불 이후 나무를 치워 토양이 노출된 지역일수록 이 건조 과정은 더 빠르고 강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우리가 산을 더 말리고 있지는 않은가

산불 예방을 위해 낙엽을 불쏘시개라며 치우고, 산불 이후 위험하다며 나무를 베어낸다. 그러나 그렇게 노출된 땅은 햇볕과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더 빨리 마른다. 산불을 막기 위한 조치가, 다음 산불의 조건을 만드는 셈이다.

반대로 쓰러진 나무를 뒤집어 보면 전혀 다른 장면이 보인다. 그 아래에는 물기가 남아 있고 벌레가 살며, 새들의 먹이가 된다. 쓰러진 나무는 쓰레기가 아니라 수분을 붙잡는 구조물이다. 이 나무를 활용해 물모이를 만들면, 그 주변의 토양 함수율은 눈에 띄게 높아진다. 아무리 건조한 기단이 내려와도 그곳은 촉촉함을 유지한다.

산불 경보, 이제는 토양 함수율을 봐야 한다

현재의 산불 경보 체계는 바람, 습도, 기단 이동 같은 기상 조건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 지표들은 산이 실제로 얼마나 말라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지 못한다. 불은 이미 마른 곳에서만 커진다.

이제는 산지 표면의 토양 함수율을 기준으로 한 산불 경보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언제, 어느 시점에, 어느 지역의 산이 실제로 마르기 시작하는지를 수치로 감지할 수 있다면, 산불은 갑작스러운 재난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위험이 된다.

경보는 경보로 끝나서는 안 된다. 토양 함수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는, 그 하락을 늦추는 사전 예방 조치가 동시에 시행되어야 한다. 물을 머물게 할 구조를 만들고, 토양 표면의 급속한 건조를 늦추는 조치가 필요하다. 물모이는 바로 이런 예방 조치의 대표적인 예다.

지금의 산불 대응은 마치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잠그는 대신, 문은 그대로 열어둔 채 도적이 들어온 뒤 얼마나 적게 훔쳐가게 할지만 고민하는 것과 같다. 헬기와 진화 장비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산불을 줄일 수 없다.

결론: 산불은 피할 수 없는 재난인가, 관리 가능한 위험인가

산불은 갑자기 시작되는 재난이 아니다. 불씨는 언제든 생길 수 있지만, 그 불씨가 걷잡을 수 없는 산불로 번질지는 산의 상태에 달려 있다. 겨울과 봄 사이, 산이 얼었다 녹으며 수분을 잃는 과정이 반복되면, 작은 불씨도 쉽게 확산된다. 이는 감각이나 추정이 아니라, 토양 함수율과 온도 관측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산불의 원인을 바람과 기단에서만 찾고 있다. 그러나 같은 기단 아래에서도 물이 머무는 곳은 마르지 않고, 불도 커지지 않는다. 산불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불씨의 유무보다 산이 얼마나 말라 있었는가다.

불씨를 완전히 없애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산이 마르지 않게 만드는 것은 관리할 수 있다. 이제는 바람을 탓하기보다, 산의 함수율을 살피고 물을 붙잡는 예방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
산불 예방의 열쇠는 진화 속도가 아니라, 산이 마르기 전에 시작되는 관리에 있다.
덧붙이는 글 산불의 원인을 알아야 예방이 가능하다. 원인을 모른 채 아무 약이나 먹는다고 병이 낫지 않듯, 봄철 산이 왜 바짝 마르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산불 진화 장비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같은 재난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기자는 경기도 광주 야산에서 토양 함수율과 온도를 장기간 측정하며, 겨울과 봄 사이 산이 마르는 과정이 우연이나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관측 가능한 물리적 현상임을 확인해왔다.

그 결과, 봄철 산의 건조는 단순한 ‘비 부족’이나 ‘기단 탓’이 아니라, 토양 표면이 영하로 떨어질 때 발생하는 동결 탈수 과정과 깊이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산불이 나기 훨씬 이전부터 위험이 축적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현재의 산불 예방 정책은 여전히 불이 난 뒤 얼마나 빨리 끄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약 지금까지의 산불 예방 대책이 충분했다면, 왜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피해가 반복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백약이 무효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볼 때가 아닐까. 산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붙잡는 실험, 토양 함수율을 기준으로 한 경보 체계, 사전 예방형 물 관리에 대한 공공 실험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내가 국회의원이라면, 이러한 관측 결과와 실험 제안이 왜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지 국정감사에서 묻고 싶다. 산불은 불씨로만 나지 않는다. 물이 사라진 땅에서 불은 시작된다. 이 단순한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산불 예방의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산불의원인 #동결건조 #물모이 #산불예방 #토양함수율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감자 들고 학교 간 아이, 교사가 거절하며 건넨 씁쓸한 말 감자 들고 학교 간 아이, 교사가 거절하며 건넨 씁쓸한 말
  2. 2 학교 정문에 걸린 현수막, 34년 교직 중 이런 문구 처음 학교 정문에 걸린 현수막, 34년 교직 중 이런 문구 처음
  3. 3 마당 데크를 걷어내자 나온 것, 십수 년을 모르고 살았네 마당 데크를 걷어내자 나온 것, 십수 년을 모르고 살았네
  4. 4 "입에 침 좀 바르세요"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 재판에서 싸운 두 사람 "입에 침 좀 바르세요"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 재판에서 싸운 두 사람
  5. 5 법원이 가린 내란 재판 판결문, 실명 공개합니다 법원이 가린 내란 재판 판결문, 실명 공개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