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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나 대단한 축제면... 길바닥을 닦는 사람들

    [두브로브니크 한달살기] 올드타운 산책, 성 블라호에서 포라트 항구까지

    등록 2026.01.29 16:58수정 2026.02.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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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5월 40대 부부가 동반 퇴사했습니다. 안정된 삶 대신 꿈을 선택한 은퇴 부부의 좌충우돌(左衝右突) 여정을 기록합니다.[기자말]
    축제의 공기가 스며든 도시

    올드타운의 필레 문(Pile Gate)을 통과하는 순간, 두브로브니크의 공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다. 거리마다 나부끼는 깃발, 상점 앞 분주한 손길들. 도시는 곧 다가올 2월의 주인공, '성 블라호 축제(Festa Svetog Vlaha)'를 준비하고 있었다.


    972년, 베네치아의 기습 공격을 미리 알려 도시를 구했다는 수호성인 성 블라호. 그를 기리는 이 축제는 1000년 넘게 이어져 온 두브로브니크의 심장박동이자, 2009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인류의 보물이다. 메인 거리인 스타라둔(Stradun)을 따라 걷는 동안, 축제는 화려한 무대가 아닌 '생활의 언어'로 다가왔다. 깃발의 각도를 바로잡고 돌바닥을 매만지는 시민들의 움직임은 거대한 공연의 정성스러운 리허설처럼 보였다.

    스트라둔에 스며든 활기(1) 성 블라호 축제를 앞둔 두브로브니크의 메인 스트리트 스트라둔(Stradun) 전경. 깃발을 걸고 거리 곳곳을 정비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스트라둔에 스며든 활기(1) 성 블라호 축제를 앞둔 두브로브니크의 메인 스트리트 스트라둔(Stradun) 전경. 깃발을 걸고 거리 곳곳을 정비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김봉석
    천년의 축제를 준비하는 거리. 성 블라호 성당 옆, 축제의 설렘으로 북적이는 카페를 지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천년의 축제를 준비하는 거리. 성 블라호 성당 옆, 축제의 설렘으로 북적이는 카페를 지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김봉석

    성 블라호 성당, 잃어버린 시간을 쥔 손

    스타라둔 끝자락, 도시의 정점에 선 성 블라호 성당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성벽 곳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그의 조각상은 단순한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 '도시를 지키겠다'는 오래된 약속처럼 느껴졌다.

    현재의 성당은 18세기 초 완공된 바로크 양식이다. 1706년 화재로 소실된 뒤 재건된 것인데, 주목할 점은 이 건축이 1667년 대지진 이후 '도시 재건'의 흐름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곳의 바로크는 화려한 과시가 아니라 '다시는 무너지지 않겠다'는 절박한 생존의 미학을 담고 있다.

    성당 안 제단 위 은빛 성 블라호 상은 이 도시의 가장 귀한 기록자다. 조각상 손 위에는 지진으로 사라지기 전 구시가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려 있다. 관광객에게는 신비로운 유물이겠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을 기억하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다짐의 상징이다.


    천년의 수호성인 앞에 서다, 성 블라호 성당. 두브로브니크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수호성인 성 블라호가 내려다보는 성당 정문 앞.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석조 문틀 사이에 서 있는 아내의 옆모습에서 여행자의 설렘보다 이 도시가 주는 평온한 안식의 공기가 더 짙게 느껴진다.
    ▲천년의 수호성인 앞에 서다, 성 블라호 성당. 두브로브니크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수호성인 성 블라호가 내려다보는 성당 정문 앞.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석조 문틀 사이에 서 있는 아내의 옆모습에서 여행자의 설렘보다 이 도시가 주는 평온한 안식의 공기가 더 짙게 느껴진다. 김봉석
    은빛 성인이 품은 도시, 잃어버린 시간을 마주하다. 성당 뒤편에서 바라본 제단의 전경. 중앙에 자리한 은빛 성 블라호 상은 1667년 대지진 이전의 구시가지를 손에 들고 있다. 관광객에게는 신비로운 성물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재난 이전의 평화를 기억하게 하고 무너진 뒤에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일깨우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은빛 성인이 품은 도시, 잃어버린 시간을 마주하다. 성당 뒤편에서 바라본 제단의 전경. 중앙에 자리한 은빛 성 블라호 상은 1667년 대지진 이전의 구시가지를 손에 들고 있다. 관광객에게는 신비로운 성물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재난 이전의 평화를 기억하게 하고 무너진 뒤에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일깨우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김봉석

    수치의 계단에서 마주한 고요, 성 이그나티우스

    예수회 계단(Jesuit Stairs)을 올려다 본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세르세이 라니스터가 겪은 '수치의 행진(Walk of Shame)'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수많은 이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극 중 장면을 회상하지만, 계단 끝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Church of St. Ignatius)의 문을 여는 순간 세속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멎는다.


    1667년 대지진은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으나,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은 절망 대신 건축가 안드레아 포초를 불러 로마의 장엄함을 이식했다. 그러나 이 교회는 로마보다 훨씬 절제되어 있다. 천장을 수놓은 프레스코화는 신의 위대함을 뽐내기보다, 흔들리면서도 끝내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시간을 조용한 필치로 보여준다. 이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여전히 숨 쉬는 위로의 장소였다.

    왕좌의 게임 '수치의 계단' 끝에서 마주한 의지. 드라마 속 ‘수치의 행진’으로 알려진 예수회 계단 아래 서서 웅장한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를 올려다본다.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에서 극 중 장면을 떠올리지만,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이 시선은 사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다시 일어섰던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의 끈질긴 회복력을 상징하는 것 같다.
    ▲왕좌의 게임 '수치의 계단' 끝에서 마주한 의지. 드라마 속 ‘수치의 행진’으로 알려진 예수회 계단 아래 서서 웅장한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를 올려다본다.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에서 극 중 장면을 떠올리지만,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이 시선은 사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다시 일어섰던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의 끈질긴 회복력을 상징하는 것 같다. 김봉석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의 입구.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의 정문을 향해 걷는 아내의 뒷모습. 1667년 대지진의 폐허 위에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포초의 설계로 세워진 이 문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선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의 단단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의 입구.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의 정문을 향해 걷는 아내의 뒷모습. 1667년 대지진의 폐허 위에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포초의 설계로 세워진 이 문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선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의 단단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김봉석
    대지진의 폐허 위에 핀 바로크의 꽃, 제단을 향한 시선. 교회 뒤편에서 바라본 성 이그나티우스 내부 전경. 장엄한 프레스코화와 제단으로 이어지는 대칭적 구조는,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웠던 사람들의 절제된 성정과 신앙의 위대함을 조용히 대변하는 것 같았다.
    ▲대지진의 폐허 위에 핀 바로크의 꽃, 제단을 향한 시선. 교회 뒤편에서 바라본 성 이그나티우스 내부 전경. 장엄한 프레스코화와 제단으로 이어지는 대칭적 구조는,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웠던 사람들의 절제된 성정과 신앙의 위대함을 조용히 대변하는 것 같았다. 김봉석
    어둠 속에서 피어난 한 줄기 빛, 루르드 성모 동굴(Lourdes Grotto).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 한쪽, 거친 암벽의 질감을 살려 조성된 동굴 성소 위로 정오의 햇살이 비춘다. 대지진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이들에게 이 빛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어떤 시련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신성한 위로이자 응답처럼 다가올 듯 하다.
    ▲어둠 속에서 피어난 한 줄기 빛, 루르드 성모 동굴(Lourdes Grotto).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 한쪽, 거친 암벽의 질감을 살려 조성된 동굴 성소 위로 정오의 햇살이 비춘다. 대지진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이들에게 이 빛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어떤 시련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신성한 위로이자 응답처럼 다가올 듯 하다. 김봉석

    포라트 항구, 닫힌 요새를 여는 다정한 경계

    성벽 아래 숨어 있는 포라트(Porat) 항구로 향했다. 대형 크루즈가 닿는 화려한 터미널은 아니지만, 이곳은 두브로브니크의 하루가 가장 먼저 깨어나는 생활의 터전이다. 어부들이 별다른 인사 없이 그날의 바다를 부려놓고, 식재료와 물자들이 성벽 안으로 스며드는 통로다.

    포라트에서 바라본 성벽은 위협적인 요새가 아니라 사람 쪽으로 나지막하게 기울어진 다정한 울타리다. 바다는 성벽을 공격하지 않고, 성벽은 바다를 배척하지 않는다. 덕분에 이 도시는 역사 속에서 '닫힌 요새'가 아닌 '열린 항구'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여행자의 설렘과 현지인의 무심함이 교차하는 이 묘한 공기야말로 포라트의 진짜 매력이다.

    성벽을 적시는 아드리아해, 포라트 항구(1). 포라트 항구에 정박한 작은 배들 너머로 두브로브니크의 견고한 성벽이 펼쳐진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의 위압감은 사라지고, 바다와 나란히 눈을 맞춘 성벽은 오히려 사람을 품어주는 낮은 울타리처럼 다가온다. 외적을 막아내던 요새가 아닌, 수많은 배와 물자를 받아들였던 '열린 도시'의 민낯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성벽을 적시는 아드리아해, 포라트 항구(1). 포라트 항구에 정박한 작은 배들 너머로 두브로브니크의 견고한 성벽이 펼쳐진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의 위압감은 사라지고, 바다와 나란히 눈을 맞춘 성벽은 오히려 사람을 품어주는 낮은 울타리처럼 다가온다. 외적을 막아내던 요새가 아닌, 수많은 배와 물자를 받아들였던 '열린 도시'의 민낯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김봉석
    포라트 항구에서 바라본 마을의 모습. 작은 어선들이 옹기종기 모인 항구 뒤로 스르지 산자락을 따라 들어선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관광객의 발길이 닿는 올드타운과 현지인의 일상이 머무는 산동네가 포라트의 물길로 연결되어 있다.
    ▲포라트 항구에서 바라본 마을의 모습. 작은 어선들이 옹기종기 모인 항구 뒤로 스르지 산자락을 따라 들어선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관광객의 발길이 닿는 올드타운과 현지인의 일상이 머무는 산동네가 포라트의 물길로 연결되어 있다. 김봉석

    산책을 마치며, 다시 길 위에 서다

    성 블라호 성당에서 포라트 항구까지의 산책은 명소를 잇는 동선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의 상처와 극복의 역사를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축제를 준비하며 묵묵히 제 자리를 가꾸는 사람들을 보며 깨닫는다. 천년의 축제는 화려한 불꽃이 아니라, 매일의 돌바닥을 닦는 성실함에서 온다는 것을. 2월의 축제를 기다리며, 나 역시 이 단단한 길 위를 조금 더 깊게 걸어볼 작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성블라호 #성이그나티우스 #포라트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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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0년간의 안정된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부부가 함께 은퇴 후 시작한 새로운 여정. 안정된 삶 대신 꿈을 선택한 40대 파이어족의 좌충우돌 '은퇴 후 삶'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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