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1.29 11:12수정 2026.01.29 11:12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간의 속도가 한 해 한 해 다르다. 2026년의 첫 해가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벌써 1월도 끝을 향해 질주하고 있으니 말이다. 몇 년 째 지켜온 소백산 일출 산행을 올해 역시 다녀왔다. 비로봉 정상에서 맞는 새해 첫 일출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매년 고민없이 일출 산행을 결정하고 준비했던 때와는 달리, 올해는 '갈까?, 말까?'를 수없이 생각하고 결정을 번복하고 또다시 고민하기를 되풀이 했다. 그러던 중, 2025년 12월 31일 등산 동호회 회원분의 가족 부고 소식에 왕복 5시간 정도 소요되는 타 지역으로 조문을 가게 되었다.
오고 가는 길에 자연스레 다음 날 계획된 일출 산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동호회원분들의 부추김에 산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이 "만약"이라는 조항을 달았다.
"일찍 일어나게 되면 준비하고 약속장소로 가겠습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고 이른 새벽 겨울산 준비를 했다. 매년 쓰는 물건인데 왜이렇게 질서없이 여기 저기에 보관하고 있었는지. 방한용품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늘 산행구간은 천동 다리안 관광지에서 비로봉까지 대략 7km 정도이다. 비로봉을 오르는 구간 중 가장 긴 구간으로, 소백산 비로봉을 오르는 전체 구간 중 경사가 심하지 않고 무난한 편이다.

▲ 어두운 산 속 길잡이가 되어주는 불빛
박서진
유난히 추위를 타기에 겹겹이 껴입은 옷으로 몸이 둔하다. 천동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해 화장실을 다녀온 후 옷을 정비하고 본격적인 겨울산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여러 번 준비물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랜턴을 챙기지 못했다. 앞서는 사람, 뒤에서 오는 사람, 옆으로 스쳐 가는 사람의 랜턴 불빛이 보름달이 되어 어둠을 비춰 주었다.
까만 하늘 위로 "헉헉" 목이 따끔거릴 정도로 아픈 가뿐 숨소리가 울려 퍼진다. 랜턴 빛 속으로 날아오르는 입김이 투박한 발장구소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콧물이 얼어붙어 입으로만 숨을 뱉어내니 갈수록 목은 더욱 따끔하고, 안전을 위해 신은 아이젠은 발등을 죄어온다. '이렇게 눈이 없는 소백산은 처음이다!' 눈이 없으니 아이젠이 더욱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한다. 그렇다고 길 곳곳에 숨어있는 빙판을 피해갈 수 없으니 아이젠은 선택이 아니다.

▲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새해 해맞이
박서진
새해 첫 일출을 찾아 일찍 산을 찾은 낯선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에게 응원을 보낸다. 천동쉼터에 도착했다. 구겨 넣은 경량패딩을 꺼내 입고 따뜻한 물 한 잔으로 몸도 녹였다. 에너지바, 초콜릿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 깊게 숨을 들여마셨다 뱉어내며 '할 수 있다!' 천천히 힘주어 말한다.
매년 눈 속에 묻혀 있던 울퉁불퉁 돌길이 본연의 모습으로 맞아주었다. 평소 겨울왕국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던 주목 군락지 근처에도 눈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뒤덮힌 상고대와 칼날처럼 쌓여 있던 눈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일출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알게 되었다.
서두르는 일행들 틈에서 나는 내 보폭을 유지하며 일출이 아닌 안전한 산행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소백의 바람이 거세다. 강한 바람이 능선을 흔든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거센 바람이 겨울 소백의 진짜 맛을 보여 준다. 매서운 소백의 바람이 골 속으로 스며들어 찌릿 전기에 감전된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눈물을 쏙 뺐다. 붉은 하늘바다가 눈 앞에 있다. 붉은 해가 두 눈에 담겨 활활 타오른다.

▲ 2026년 1월1일 소백 비로봉 일출
박서진
해발 1,438.5m 비로봉 정상석으로 줄 서서 기다리는사람들이 모두 제자리 걸음으로 추위를 견디고 있다. 주머니 깊숙이 넣은 손을 꺼내 인증샷을 남기고 하산을 서둘렀다. '소백이 하얀 옷을 입으면 다시 오리라~'
요사이 눈이 여러번 내렸다. 출근길 신호 대기시 정면으로 펼쳐지는 눈덮힌 소백산은 경이롭다. 눈오면 꼭 다시 다녀오겠다는 다짐은어디 가고, 그림의 떡이어도 먼발치 눈 덮힌 소백산을 볼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
새해를 맞이하며 굳게 각오했던 다짐들이 흐르는 시간과 달리 제자리 걸음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편한 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생기기 때문이다. 1월을 보내며 첫 만남을 다시 되새겨 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전형적인 ISFP 입니다.
게으른 내가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꾸준히 써 보려합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