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신충관 씨 재심 무죄 선고 직후 군산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피해자들과 변호인, 시민단체들
박민서
그렇게 수십년간의 억울한 세월을 보내던 중 지난해 5월, 같은 배를 탔던 동료 신명구 씨가 먼저 재심이라는 쇠사슬을 끊었다. 그는 재심을 통해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을 인정받아 무죄를 확정 지었다. 신명구의 무죄는 먼저 간 동료 신충관에게 보내는 신호탄이었다.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신명구 씨는 아직 재심을 시작하지 못한 친구들과 피해자들 그리고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신충관 씨 등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먼저 무죄 받았습니다. 나머지 피해자 분들도 곧 누명을 벗겨드릴게요."
오늘 신충관의 무죄는 신명구가 쏘아 올린 진실규명의 신호탄에 대한 1년 늦은 법원의 화답이었다. 재판부는 오늘 선고에서 '관련 확정된 재심 사건'(신명구 사건)에서 인정한 바와 같이 임의성 없는 자백으로서 증거 능력이 없다'고 명시했다. 살아남은 자의 투쟁이 죽은 자의 진실과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재심 무죄선고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국가의 비겁함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앞서 결심 공판에서 검사는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겉으로 보기엔 정의로운 모습이었으나 정작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신명구 씨가 무죄를 받고,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검찰은 지난 8개월 동안 신명구로 인해 반공법, 국가보안법위반 처벌을 받은 신충관 씨와 같은 피해자 28명에 대한 피해 구제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았다.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와 법무법인 원곡은 지난해 신명구 씨 재심 무죄 직후 남은 피해자들과 함께 '직권 재심'을 검찰에 요구하였다. 주범의 범죄사실이 사라진 이상 종범의 범죄 사실 역시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명구 씨의 무죄 선고 이후로도 '직권 재심'은 단 한 건도 청구되지 않았다.
같은 배를 탔고, 같은 고문을 당했고, 같은 조작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누구는 살아서 무죄를 받고, 누구는 죽어서야 무죄를 받는다. 또 누군가는 아직도 재심 개시조차 못한 채 법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28명 중 무죄를 받은 이는 이제 고작 두 명뿐이다.
법원은 오늘 "과거의 기록이 소실되어 없는 상황이지만... 수집된 자료들에 의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기록은 사라질 수 있어도, 국가 폭력의 기억은 피해자의 몸과 유족의 가슴에 문신처럼 남아있다.
신충관 씨는 생전 술만 마시면 "나는 간첩이 아니다"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 절규가 50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 전주지법 법정에 닿았다. 국가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잃어버린 50년의 삶과 파괴된 가정에 대해서는 누가 답할 것인가.
신명구 씨와 함께 재심신청을 했다가 재심 개시를 기다리던 중 사망한 고 김정구 씨의 아내는 기자회견에서 울부짖으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고문으로 다리를 절며 청력을 잃어야 했던 남편 김정구 씨의 재심을 하루 속히 열어달라는 절절한 울부짖음이었다.
정의가 지연된 시간만큼, 뒤늦은 사과는 진정성이 의심되고 비겁해진다. 오늘 법정에서 들린 "무죄"라는 두 글자가 개운치 않고 서글프게만 들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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