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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야 받은 50년 만의 무죄 판결문

고 신충관 납북 어부 반공법 위반 재심 무죄 선고

등록 2026.01.29 16:50수정 2026.01.2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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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북 어부들은 간첩 조작의 단골 대상이었다. 사진은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인천항에 귀환한 어선 제37, 38 태양호 어부들. 1989.2.12
납북 어부들은 간첩 조작의 단골 대상이었다. 사진은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인천항에 귀환한 어선 제37, 38 태양호 어부들. 1989.2.12 연합뉴스

2026년 1월 29일 오후 1시 50분, 전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 법정은 평소보다 많은 기자들과 여수 등에서 방청을 위해 참석한 방청객들로 붐볐다. 앞선 구속 사건의 판결을 선고한 뒤 고 신충관 씨의 재심 선고 순서가 되자 재판장은 피고인의 이름을 불렀다.

"신충관 피고인."

대답은 없었다. 피고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1988년, '간첩'이라는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긴 채 지병으로 먼저 세상을 등졌다. 대신 그 자리를 지킨 건 머리가 희끗한 아내 등 유족과 변호인뿐이었다. 50년 전, 서해에서 조기를 잡던 청년 신충관은 죽어서야 법정에 다시 설 수 있었다.

"주문, 피고인은 무죄."

재판부의 목소리가 법정에 울렸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일부 재판 기록이 사라지고 피해자들과 증인들이 사망했다지만, 남아있는 기록과 증인만으로도 재판부는 명확하게 판시했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1972년 10월 3일경 영장 없이 연행된 후 불법 구금된 사실이 인정되므로... 계속 구금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은 점에 비추어 법정 진술 역시 임의성 없는 심리 상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합니다. 주문. 피고인은 무죄. 무죄 판결을 선고합니다."

짧은 주문(主文) 한 문장을 듣기 위해 유족들은 반세기를 기다렸다. 사건 당시 갓난 아기였던 자녀들이 중년의 성인이 된 긴 세월이었다. 법정 밖으로 나오는 유족들의 얼굴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사건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해안 조기잡이 배 '제5동림호' 선원들은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납북됐다가 귀환했다. 환영 인파 대신 그들을 맞이한 건 대공수사기관 조사실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었다. 수사관들은 그들을 불법으로 가두고, 때리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수사기관은 다시 이들을 연행해 갔다. 납북되었던 여수 적금리 신명구 씨가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고, 이런 말을 듣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대했던 신충관 씨 등이 연행된 것이다. 그리고 수사기관의 모진 고문과 가혹 행위로 결국 신충관 씨는 허위 자백을 해야만 했다.


 고 신충관 씨 재심 무죄 선고 직후 군산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피해자들과 변호인, 시민단체들
고 신충관 씨 재심 무죄 선고 직후 군산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피해자들과 변호인, 시민단체들 박민서

그렇게 수십년간의 억울한 세월을 보내던 중 지난해 5월, 같은 배를 탔던 동료 신명구 씨가 먼저 재심이라는 쇠사슬을 끊었다. 그는 재심을 통해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을 인정받아 무죄를 확정 지었다. 신명구의 무죄는 먼저 간 동료 신충관에게 보내는 신호탄이었다.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신명구 씨는 아직 재심을 시작하지 못한 친구들과 피해자들 그리고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신충관 씨 등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먼저 무죄 받았습니다. 나머지 피해자 분들도 곧 누명을 벗겨드릴게요."

오늘 신충관의 무죄는 신명구가 쏘아 올린 진실규명의 신호탄에 대한 1년 늦은 법원의 화답이었다. 재판부는 오늘 선고에서 '관련 확정된 재심 사건'(신명구 사건)에서 인정한 바와 같이 임의성 없는 자백으로서 증거 능력이 없다'고 명시했다. 살아남은 자의 투쟁이 죽은 자의 진실과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재심 무죄선고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국가의 비겁함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앞서 결심 공판에서 검사는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겉으로 보기엔 정의로운 모습이었으나 정작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신명구 씨가 무죄를 받고,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검찰은 지난 8개월 동안 신명구로 인해 반공법, 국가보안법위반 처벌을 받은 신충관 씨와 같은 피해자 28명에 대한 피해 구제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았다.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와 법무법인 원곡은 지난해 신명구 씨 재심 무죄 직후 남은 피해자들과 함께 '직권 재심'을 검찰에 요구하였다. 주범의 범죄사실이 사라진 이상 종범의 범죄 사실 역시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명구 씨의 무죄 선고 이후로도 '직권 재심'은 단 한 건도 청구되지 않았다.

같은 배를 탔고, 같은 고문을 당했고, 같은 조작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누구는 살아서 무죄를 받고, 누구는 죽어서야 무죄를 받는다. 또 누군가는 아직도 재심 개시조차 못한 채 법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28명 중 무죄를 받은 이는 이제 고작 두 명뿐이다.

법원은 오늘 "과거의 기록이 소실되어 없는 상황이지만... 수집된 자료들에 의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기록은 사라질 수 있어도, 국가 폭력의 기억은 피해자의 몸과 유족의 가슴에 문신처럼 남아있다.

신충관 씨는 생전 술만 마시면 "나는 간첩이 아니다"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 절규가 50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 전주지법 법정에 닿았다. 국가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잃어버린 50년의 삶과 파괴된 가정에 대해서는 누가 답할 것인가.

신명구 씨와 함께 재심신청을 했다가 재심 개시를 기다리던 중 사망한 고 김정구 씨의 아내는 기자회견에서 울부짖으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고문으로 다리를 절며 청력을 잃어야 했던 남편 김정구 씨의 재심을 하루 속히 열어달라는 절절한 울부짖음이었다.

정의가 지연된 시간만큼, 뒤늦은 사과는 진정성이 의심되고 비겁해진다. 오늘 법정에서 들린 "무죄"라는 두 글자가 개운치 않고 서글프게만 들리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 #재심 #국가폭력 #납북귀환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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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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