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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미 '기후위기'를 살고 있다

[주장] 환경문제에 무지하지 않은 아이들, 아직도 준비되지 않은 것은 교육이다

등록 2026.01.30 18:16수정 2026.01.3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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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이 다니는 학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필자는, '아이들이 다가와서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자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에게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누군가는 들어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아직 어린아이들이다.

"그래, 너희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구나"라는 말에 교실이 떠나갈세라 "네!!!" 하면서 조잘조잘 그동안 누구에게도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요즘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슨 생각을 주로 하는지, 어떤 고민을 가졌는지, 매일같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찰한다. 친구와 싸웠다는 이야기나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진로 고민, 공부하기 싫다는 투정, 요즘 하는 게임 같은 이야기들은 필자가 초등학생일 때에도 또래들이 하던 고민이었기에 익숙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중에 정확히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는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기후위기'다. 기후위기와 관련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어차피 지구온난화 심해지고 쓰레기 많고 그래서 지구 다 망하면 다 쓸모없는데, 왜 공부해야 해요?" 그래도 공부를 시켜야하는 게 학원 선생님인 필자의 입장이지만, "조용히 하고 공부나 하자"같은 말은 내뱉고 싶지 않다.

아이들의 사고를 받아주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면에서 이런 질문은 단시간에 반응하고 수업을 이어나가기에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더 나아가, 한 학생만이 이런 고민을 내비치는 게 아니라 학년을 불문하고 꽤 많은 학생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러한 고민의 본질을 생각해봐야 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아이들의 이러한 고민은 '기후 우울증' 혹은 '기후 불안증'이라고 불린다. 세계 보건기구 WHO는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과 실존에 대한 위협으로 인해 발생한 불안, 우울, 무력감 같은 심리적인 문제를 언급하며,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이와 같은 기후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의 수와 강도는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실제로 필자가 10대의 후반, 20대 초반에 느끼던 기후 우울과 비슷한 감정들을 오늘날의 아이들은 훨씬 일찍부터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에게 기후위기는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거리'중 하나가 된지 오래다.

기후 우울은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높을수록 발생하기 쉽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많이 알면 많이 느끼고 많이 아파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필자 역시 기후 우울증에 빠진 적이 있었다. 한참 기후위기와 생태계와 관련된 논의에 빠져 공부하던 시절, 한 개인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과 불투명한 미래, 이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인간종의 일부라는 사실이 그렇게 자괴감과 허무함을 불러일으켰다.


기후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친환경 행동을 공유하기, 관련된 오픈 채팅방에 가입해서 소식을 받기, 기후와 관련된 뉴스레터를 구독하기 등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세상이 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더 강하게 머리로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몇 년 전, 환경재단에서 진행하는 영그린리더 프로그램의 일부로 서울, 대구, 청주 등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환경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재단에서 준비해준 교재를 가지고 할당된 학급에 들어가 2교시 가량의 창의적체험활동 시간 동안 수업을 하는 일이었다.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용으로 따로 구분되어 있던 교재는, 둘 다 '미세먼지'가 주제였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많은 귀엽고 예쁜 아이들을 만났고, 그 자체로 매우 즐겁고 힘을 얻어가는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한 가지 근본적인 고민도 생겼다. '이게 효과가 있나?'라는 질문이었다.


수업의 내용은 미세먼지는 공장이나 자동차 배기가스 등에서 온다는 것, 미세먼지를 덜 마시기 위해서는 환기를 해야 하고 외출한 후에 옷을 털어야 한다는 것, 분리수거를 잘 하고 차를 덜 타고 배달음식을 덜 먹어야 한다는 것 같은 간단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스티커 붙이기나 빙고, 교구 조립 등 다양한 활동들이 있어서 학년을 막론하고 필자가 들어갔던 반의 모든 아이들이 활발하게 수업에 참여해주었지만, 이건 수박 겉핥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너무 쉽고 간단하잖아?'라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도 1, 2학년을 제외하고 3학년 이상부터는, 학년을 막론하고 모든 아이들이 '이미 아는 내용'이라는 반응이 더 강했다. 그래서 수업은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게임형으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라는 인상이 더 강하게 남았다. 한 번은 초등학교 3학년 반에서 수업을 하는데, 미세먼지가 공장에서 많이 나온다는, 교재에 충실했던 나의 발언을 듣고서는 한 아이가, "공장이 돌아가는데 화석연료가 필요한데, 그 화석연료가 석유나 석탄 같은 건데, 그게 지구에 얼마 안 남았잖아요"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활동에서 '고기를 적게 먹어요'라는 선택지가 있었는데, 그걸 읽더니 "근데 요즘은 콩고기 같은 것도 있어서 그런 건 먹어도 괜찮아요"라고 말을 한 친구도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은 기후위기를 더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 오늘 수업이 어땠는지 평가지를 받는데, 짧은 시간 만난 선생님이지만 나에게 수업이 재밌었다며 다음에 또 만나고 싶다고 긴 글을 써 준 친구들도 꽤 많았다. 그리고 그 중, 또 다른 3학년 아이가 작고 예쁜 글씨로 써 주었던 편지에 '혹시 선생님 <기후위기 인간> 아세요?? 환경을 좋아하는 선생님께 추천해요!!'라고 적혀있었던 게 몇 년이 지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이의 이야기를 읽고서 몇 주 후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보았다. 구희라는 작가가 쓴 이 만화책 형식의 글은 작가가 기후위기의 실상을 수치와 통계로 파악하며 그 거대한 시스템을 배우면서도 기후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우리가 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제 막 기후위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의 전형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초3친구의 글 초등학교 3학년 수업을 마치고 받은 후기 글
▲초3친구의 글 초등학교 3학년 수업을 마치고 받은 후기 글 박성연
 <기후위기 인간> 표지
<기후위기 인간> 표지 알에치이코리아 출판

이처럼 필자가 가르치러 갔으나, 대다수의 아이들은 이미 꽤나 깊이 있게 기후위기라는 사안을 이해하고,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회와 여론이 조금씩 느리지만 변화하고 있고, 아이들도 정보를 얻을 매체가 다양해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세대와 시대가 바뀌었지만 교육의 근본적인 내용과 구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환경교육은 여전히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받았던 교육과 다르지 않다. 북극곰과 분리수거, 전기코드 뽑기 같은 1차원적이고 근시안적인, 상징성이 강한 이야기와 논의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수박 겉핥기 식의 환경교육은 이미 기후위기를 현실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지적으로도 큰 도움이 안 될뿐더러, 오히려 허무감과 무력감만 강화시킬 수도 있다. 기후위기는 사실상 인류의 모든 활동과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구조적인 문제이지만 이를 축소시켜 간단히 가르치기 때문이다.

현재의 환경교육에는 산업구조나 소비 체계, 글로벌 공급망 같은 구조적인 원인을 다루는 내용이 부재하며, 적응과 완화 혹은 기술 개발이라는, 기후위기 대응 시나리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도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매연과 배기가스와 쓰레기같은 1차적인 원인들만 다루면서 결국 책임과 해결방안을 개인에게 돌려 문제를 축소시킬 뿐이다. 마치 개인들이 쓰레기를 덜 버리고, 다회용 컵을 사용하고, 대중교통을 조금 더 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학생들 개개인을 윤리와 책임의 주체로 설정해서 말하는 것은 교육을 받는 이들에 대한 기만이다.

이제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인류의 모든 활동이 연결된 시스템 차원에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이다. 연평균 기온이 얼마나 상승했고, 어느 나라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했는지 같은 단편적인 사실들은 개인이 뉴스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수없이 많은 사건들을 '기후위기'라는 렌즈를 끼고 하나로 묶어서 보는 시각은 스스로 터득하기 어렵다.

사안을 구조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른 다음에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적용 가능한 대응책을 교육현장에서 논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 세대나 동물들을 위해서가 아닌, 당장 우리 자신을 위해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교육의 프레임 역시 바꾸어야 한다. 학생들을 계몽시키겠다는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열어야 한다.

공교육 현장 또한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다. 2025년 10월 1일부터 '환경교육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환경과 기후위기를 다루는 내용은 중학교의 '환경', 고등학교의 '생태와 환경'이라는 교과로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공식 포함되어 있다.

2024년부터 점차 확대해 2027년에는 전 학년에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이 두 교과목은 환경과 인간, 환경 체계, 환경문제와 쟁점, 기후위기와 기후행동, 지속가능성과 시민 참여의 5개 영역에 각각 중학교 20개, 고등학교 21개의 성취 기준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 교과에서 환경오염, 사회 교과에서 세계문제, 도덕 교과에서 생명윤리 등 교과의 핵심 개념과 연결지어 작은 소단원 한 두 개를 할애해 환경교육을 실시하던 것과 비교하면 큰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고등학교 고교학점제 선택교과 목록
고등학교 고교학점제 선택교과 목록 부산시 교육청 고교학점제 지원센터
 고등학교 <생태와 환경> 교과서 표지
고등학교 <생태와 환경> 교과서 표지 천재 교과서

그러나 환경, 기후 교육이 교육과정에 공식적으로 편성되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환경교육이 공교육 체계 내에서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환경'은 중학교 선택교과, '생태와 환경'은 고교학점제 체계에서 교양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다. 어쨌거나 학교 자율에 따라 개설 여부가 결정되는데, 선택과목인데다가 입시와 직결되지 않는, '덜 학문적으로 보이는' 환경 교과가 과연 얼마나 많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선택을 받아 개설되고 학교 현장에서 가르쳐질지는 의문이다. 교육은 시험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학생들이 준비할 수 있는 과정이 되어야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교육이 입시에 종속되어 돌아간다. 그리고 이는 하루 이틀 몇 명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설령 교과가 개설되더라고 하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과학, 사회, 도덕 윤리 같은 대표적인 탐구 교과의 교사들이 이를 상치교과로 가르칠 확률이 높다. 그럴 경우 빈번한 상치 수업 진행이 항상 비판받아오듯, 수업의 전문성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환경재단에서 영그린리더로 활동하며 알게 된 한 분은 '환경교육과'에 재학 중이셨는데, 대한민국에서는 국립공주대학교, 국립목포대학교, 국립순천대학교, 그리고 한국교원대학교 네 군데에 환경교육과가 개설되어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학생 수 감소와 교원 수 감축, 애초에 적은 '환경교육과'출신 교사의 수와 환경 교과 교사에 대한 적은 수요 등이 맞물려, 환경교과는 학교 현장에서 독립 교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다른 교과들에 비해 낮은 위상을 유지하며 주변화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교육학 용어 중 하나인 '영 교육과정'에는 교육적 가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 교육과정 펴성에 포함되지 않은 교과지식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는 포함되었지만 여러 가지 원인들로 인해 실제 학생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지식들까지 포함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에서 환경교육은 영 교육과정에 속한다. 제도적인 존재가 실질적인 영향력과 직결되지는 않는 법이다.

주제가 무엇이든 아이들은 학습과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전제는 깨지고 있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더 이상 환경문제에 대해 무지하지 않다. 더 많이 알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교육, 지식을 삶에서 실천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현재의 청소년들은 이미 몇십 년 전 과거의 현시대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를 이야기할 때 끌어오던 '미래세대'다. 그리고 과거의 미래세대이던 이 청소년들은 이미 기후 불안 세대로 분류되는 당사자성을 겪고 있다. 이들은 지식을 자신의 손에 쥐고 활용할 줄 아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환경문제와 기후위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것만큼 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와 직결된 문제는 흔치 않다. 따라서 환경 교육이 역량 중심의 미래교육과 세계시민교육의 핵심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어쩌면 아이들은 준비가 되어있지만 아이들이 배울 교육을 결정하고 정하는 어른들이 기후위기와 환경문제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환경재단에서 영그린리더로 수업을 한 경험을 시작으로 하여 생각을 펼쳐나간 글입니다. 환경재단의 수업 자체를 비판하는 글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환경재단에서 영그린리더로서 여러 초등학교의 아이들을 만나며 놀이와 활동 중심의 창체수업을 진행했던 것은 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기후위기 #환경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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