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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문화자치 실험들... 중요한 건 지속적 경험 축적

[굿모닝 퓨처] 문화분권과 문화자치의 차이, 실질적 문화자치 실현을 위한 조건

등록 2026.02.02 09:39수정 2026.02.0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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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ohtaeyeon on Unsplash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문화자치 논의

최근 다시 문화자치에 대한 논의들이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대략 이런 논의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년쯤 전부터입니다. 이는 2018년 무렵부터 시작된 문화 재정의 지방이양이 가시화된 것의 영향이 컸습니다. 오랫동안 중앙정부가 담당해왔던 문화·체육·관광 분야 사업의 예산과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겨 지역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문화 분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권한 이양이란 측면에서의 문화 분권은 실은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지방자치제도가 1990년대 중반 다시 시작되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앙의 정책·행정 기능을 단계적으로 지역으로 이양하는 과정이 진행되어왔고 문화 분야로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위로부터의 권한 이양으로서의 분권은 지속되어왔지만, 지역이 이를 감당할 자율적 문화정책의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꾸준히 제기되어왔습니다.

문화 분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데 지역의 문화정책은 여전히 중앙의 사업을 내려받아서 하는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013년 말에 만들어진 지역문화진흥법에서는 각 지역마다 문화적 계획을 5년 주기로 세우게 되어있는데, 그 방식에서도 여전히 중앙정부 종속적인 구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5년에 한 번씩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을 세우면 광역 지자체는 이걸 기본 지침으로 삼아서 시행계획을 세우는 방식이었습니다. 지역의 문화적 계획들이 상향식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의 계획이 하향식으로 지역에 내려가는 구조인 것입니다.

물론 최근에 수립 완료를 앞두고 있는 제3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2026~2030)에서는 그 방식을 바꿔서 광역 단위에서 스스로 기본계획을 세우도록하는, 지역의 자율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식이 제안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역의 문화자치는 이처럼 지역의 문화분권 구조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문화분권과 문화자치는, 긴밀하게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동일한 개념이 아니며, 어느 한쪽이 우선되거나 한쪽이 다른 한쪽을 포함시키는 개념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과거 지역문화정책 연구에서는 문화자치를 문화분권의 다음 단계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이 역시도 다소 기계적인 단계론에 가깝습니다.

문화분권이 지역 문화정책을 위한 자원을 지역에 나누어 돌려주고 자율적 권한과 책임을 함께 돌려주는, 일종의 권한 이양의 과정이라면 문화자치는 지역에서 문화의 의미와 방향을 누가 규정할지, 어떤 기준에 의해 우선할지를 결정하는 주체를 형성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형성된 다양한 문화 주체들이 개방적이고 민주적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문화적 시민권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입니다.


문화 분권이 다분히 행정의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문화자치는 효율성과 역할 분담 문제만이 아니라 대표성("누가 결정에 참여하는가?"), 정당성(과정의 정당성과 민주주의), 책임성("그 결과를 누가 책임지는가?")의 문제가 초점이 됩니다. 문화 분권이 행정 환경의 변화라면 문화 자치는 지역에서 문화라는 영역에 대한 미시적인 정치를 공식화 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정교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시간의 투자를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문화자치는 사람과 관계가 하는 것


행정 제도의 변화를 통해 구현되는 문화 분권과 달리 문화 자치는 어떤 제도 장치만으로 즉각적으로 가능해지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지역의 다양한 문화 주체를 형성시키고 그들이 공식화된 지역의 문화 정치를 할 수 있는 개방적 공론장이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지역에서 문화 자치를 누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당장 이런 질문을 던지면 답하기 어려운 지역들이 대부분입니다. 지자체장이? 지방의원들이? 문화재단이나 문화원의 대표가? 지역예술단체의 수장이? 물론 거론된 이들이 모두 문화 자치와 연관된 존재들이기는 하지만 전부라고 할 수 없으며 특히 문화 자치가 문화에 관련된 민주적 시민권을 실질적으로 회복해나가는 것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극히 지엽적인 이해관계자들에 가깝습니다. 문화자치를 실현해나갈 주체들은 더욱 다양하고 넓은 지역의 복잡한 문화생태계에서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을 위해서는 일련의 정책적 선결과제가 있습니다. 최근 인천에서 열린 <문화자치, 개념에서 정책으로> 토론회에서 손동혁 인문도시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문화자치의 핵심적 과제를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결정권의 자율성입니다. 지역이 스스로 문화적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재정구조의 개선입니다. 대부분의 지역문화정책은 중앙의 공모사업과 국고보조금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고 장기적인 정책 추진이 어렵습니다. 단년도 정산과 매칭 방식의 재정구조는 지역의 자율적 선택을 제약하고 단기적인 성과 중심의 사업을 반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지역의 문화적 니즈에 중장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 구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포괄보조금 확대, 다년도 지원, 지역문화기금 조성 등 재정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정치적 독립성입니다. 문화정책은 장기적 관계 형성과 축적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정치 일정이나 단체장 교체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정치적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거버넌스의 실질적 성장인데 시민 참여가 자문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갖는 공동 결정 구조로 확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보공개, 숙의 절차, 대표성 확보 장치가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각각의 과제들이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주체를 호명하거나 형성하는 과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문화자치를 위한 경과적 과정이나 시도가 체계적으로 준비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경험과 자원을 축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실질적 문화자치의 시작은 경험의 축적

문화 자치의 실질화를 위해서는 시민의 자율성과 문화정책 참여 경험을 체계적으로 축적해 가야 합니다. 그동안에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만들어졌던 문화도시 사업의 경우, 후반으로 갈수록 성과 중심의 가시적 사업에 치우쳤지만 사업의 시행 초창기에는 주민 주도성과 자발성을 중심으로 문화 의제 설정과 실행에 대한 실험이 꽤 많이 진행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문화생태계와 풀뿌리 시민 문화거버넌스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과거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가 추진했던 'N개의 서울' 사업은 25개 자치구가 각자의 문화적 특성과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도록 지원하였습니다. 성동구의 '성동별곡'처럼 골목길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해석하거나,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생활문화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 자율성과 자발성을 실질적으로 강화한 사례로 평가받았습니다. 지역의 소규모 공간과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의 실험을 지원했던 '마을예술창작소' 사업의 경우도 다분히 문화자치를 지향하는 시범적 사업이었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문화자치에 대한 실험적 시범사업들은 2010년대 이후 꾸준히 시도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업을 통해 형성된 다양한 주체나 활동, 경험을 지역에 축적하고 확산시키는 데는 늘 한계가 있었고, 사업이 끝나면 흩어져 버리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문화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도, 재정, 거버넌스, 평가 등의 영역을 동시에 재설계해야 하며, 시민의 자율성과 참여 경험을 제도화하며 축적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경험의 지속적인 축적이 중요합니다.

문화도시 사업이나 'N개의 서울' 사례에서 시민 주도의 문화정책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뚜렷했던 것은 그런 경험들을 지속해서 축적해나갈 정책적 플랫폼을 성장시키지 못했고, 성과와 경험이 소수의 개인들에게만 남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지역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지역문화를 특성화라는 이름으로 한두 가지 기호로 표상해버리는 것은 매우 성급하고 위험한 발상입니다. 지역이 갖는 문화적 복잡계(複雜系, complexity system)의 성격을 인정하고 지역의 문화적 맥락과 필요, 무엇보다 시민의 삶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자치 역량이 고민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문화적 경험을 축적해나갈 수 있는 탄탄한 '그릇'을 함께 만드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굿모닝 충청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입니다.
#문화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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