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2.02 09:12수정 2026.02.0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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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1일 새벽 5시 58분,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본 산만디기 마을. 밤과 아침 사이, 언덕 위 주거지의 불빛들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정남준
지난 1월 31일 새벽 5시 58분,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산복도로의 골목은 아직 밤과 아침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하늘은 짙은 남색이었고, 산비탈을 따라 켜진 집집마다의 불빛은 별자리처럼 흩어져 있었다. 산만디기 마을은 그렇게 하루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동네 중 하나다.
산복도로 마을은 부산 근현대사의 그림자이자 기록이다.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언덕 위로 밀려 올라오며 형성된 이 마을들은, 도시가 평지를 차지하는 동안 경사진 땅에 삶을 눌러 담았다. 지금도 이곳의 골목은 자동차보다 사람의 발걸음이 먼저 다니는 길이다. 좁고 가파른 계단, 오래 벗겨진 벽, 낮은 창문은 이 동네가 가진 시간의 층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른 새벽 불이 켜진 집들은 출근을 준비하는 노동자의 방일 수도 있고, 새벽 장사를 나설 준비를 하는 자영업자의 주방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병원 보호자로 밤을 지새웠고, 누군가는 폐지를 줍기 위해 더 일찍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이 불빛들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도시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신호로 보인다.
도시는 늘 화려한 중심가로 기억되지만, 사실 도시를 움직이는 시간은 이런 언덕 위에서 먼저 흐르기 시작한다. 가장 낮은 소득, 가장 가파른 경사, 가장 오래된 집들이 모인 곳에서 하루의 노동이 가장 먼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산복도로는 부산의 변두리가 아니라, 부산의 새벽이다.
산만디기 마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야경이 아니라 동시대 일상 속 '거울'이다. 관광 엽서에 담기지 않는 풍경이지만, 이 도시의 체온은 오히려 이런 곳에서 더 또렷하다. 새벽 공기 속에서 켜진 작은 불빛들은 조용히 도시를 작동 시키고 있었다.

▲ 1월 31일 새벽 5시 58분,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본 산만디기 마을. 밤과 아침 사이, 언덕 위 주거지의 불빛들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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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드러나지 않은 삶과 소외된 이들의 희망을 세상에 전하고자 합니다. 사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그 긴 여정에 함께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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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산마디기 골목에서 마주한 새벽 불빛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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