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 독립전쟁 사진 전시실. 1991~1992년 두브로브니크가 겪은 독립전쟁을 기록한 사진전 안내 포스터. 렉터 궁전은 중세 정치 공간을 넘어 현대사의 상처까지 기록한다.
김봉석
화려한 회랑과 귀족의 생활 공간을 지나 도달한 이곳은, 시간적으로 가장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가장 무거운 장소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언했고, 그 여파는 아드리아 해의 평화로운 항구 도시 두브로브니크에도 닿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는 군사적 요충지가 아니었음에도 포격을 받았고, 수세기 동안 보존돼 온 성벽과 지붕, 교회가 무너졌다. 이 전쟁은 중세의 침략사가 아닌, 불과 30여 년 전 유럽에서 벌어진 현실이었다.
전시된 사진들은 폭격 장면보다 그 이후를 담는다. 무너진 지붕, 검게 그을린 돌벽, 그리고 폐허가 된 거리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은 설명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침묵에 가깝다. 렉터 궁전의 지하 공간을 활용한 이 전시는 의도적으로 낮은 천장과 거친 석벽을 그대로 드러낸다.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인 채 사진과 마주하게 된다.
라구사 공화국이 외교와 절제로 생존했던 도시가, 20세기 말 다시 폭력 앞에 놓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두브로브니크는 다시 무너진 돌을 하나씩 쌓아 올렸다. 중세의 지진 이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렉터 궁전이 이 전시를 품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곳은 과거의 이상만을 기념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이상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경고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렉터 궁전을 나서며 입구의 그 문장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사사로운 정은 잊고 공공의 일을 돌보라."
이 문장은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한 달짜리 권력이라는 극단적인 실험을 통해 라구사 공화국이 증명한 것은 자명하다. 권력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짧게 맡고 무겁게 책임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브로브니크의 돌벽이 오늘날까지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단단한 석회암 때문만이 아니다. 그 안에 새겨진 정치 철학이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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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간의 안정된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부부가 함께 은퇴 후 시작한 새로운 여정. 안정된 삶 대신 꿈을 선택한 40대 파이어족의 좌충우돌 '은퇴 후 삶'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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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짜리 고독한 권력... 궁전 벽에 적힌 글귀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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