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묶인 삶] 실적이라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 거대한 손(구조적 압박)이 내려보낸 줄에 묶여, 자신의 의지가 아닌 '콜 수', '실적', '대기 시간' 등의 지표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는 상담사의 수동적인 현실을 묘사했습니다.
부산노동권익센터/AI 사용 제작
아웃바운드도 해보았고, 인바운드도 해보았다. 하지만 모두 지쳐 그만두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꽤나 힘들었다. '신혼부부'는 참 예쁘고 소중한 단어지만, 팍팍한 현실에선 살림을 익힐 새 없이 아르바이트라도하며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모순적이게도 이 팍팍한 시대자체가 계속 노동을 해야 하는 원동력이었다.
'이제 전화 받는 일은 다신 안 하리'라며 개인사업장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그곳에선 최저임금 미준수와 임금체불이 또 문제였다. 비용 걱정에 노무 상담을 받을 수도, 피해를 입은 게 맞는지 확신도 들지 않을 때 알게 된 곳이 부산노동권익센터다. 방문상담 때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여러 문의들에 친절하게 같이 확인해줘서, 혼자서도 용기 있게 사업주를 신고 하였고 사과와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이 글을 빌려 부산노동권익센터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지금도 나는 상담사입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나는 지금도 상담사이다. 비록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이지만,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한 공공기관 고객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주 5일에 임금191만 원(2022년 지원당시 최저임금 191만4440원)은 다시 도전 해보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주 5일이라니! 임금은 딱 그 정도 업무 강도겠지 가늘고 길게 가자'하는 또! 스스로 순진한 생각을 가졌다).
개인고객과 사업장은 대부분 '첫 연결된 상담사가' 모든 절차를 진행한다. 정확하게, 빠르게, 공공성을 지키면서도 원청에서 하청도급사에 내리는 지침, 고객의 요구, 시스템 오류까지 감당해야 한다. 와중에 하청업체는 2년마다 하는 입찰에서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고객편의나 상담사 처우개선이 아닌 오롯이 원청 바라기가 되어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내가 소속된 도급회사는 상담사에게 얘기한다. '콜수 올려라. 고객이 묻는 것만 말하고 빨리끊어라' , '고객이 원청 전화번호를 물어도 상담사가 우선해결해라', '고객이 원청을 연결 요청해도 바로 연결 하지마라. 원청 기준 몾맞추면 우리가 도급비를 100% 못 받는다' 등등. 이 기준들은 곧 상담사 실적으로도 직결되어 급여로 반영이 된다. 누구를 위한 공기관인가 의문이다.
여기서도 역시나 고객에게 상처받는 일은 일상이다. 월급에 고객이 언어폭력을 할 때마다 위로금이 책정 된다면 그나마 금융치료라는 걸로 나아질 텐데 아쉽다. 지금도 '제일 상처받은 일화가 뭡니까' 하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일이 있다. 어느 날 한 고객이 연결되자마자 내이름을 묻더니, 이렇게 말했다. "상담사님, 저는 재수없는 놈입니다. 오늘 상담사님도 하루 종일 재수 없으십시오."
어떻게 상담을 마쳤을까? 차라리 육두문자를 내뱉었으면 욕설하지 말라고 경고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정말 언어폭력의 형태가 교묘하게 진화 됐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주를 퍼붓는 게 정상인가?
저주를 퍼붓는 고객, 이중적인 원청과 하청이 있어도 내가 아직 상담사로 일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하다보면 '친절해줘서 고맙다', '상담사님 덕분에 잘 알고 간다 행복하시라' 등의 고객이 있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핑 돌정도로 마음가득 보람을 느낀다. 또 하나는 고객센터상담사 노동조합이 있단 사실이다.
노동조합을 모를 땐 관리자의 윽박이 당연했고, 고객에게 언어폭력을 당해도 쉴 수 없었으며, 원청과 도급업체의 횡포에 순응을 해야 했다면 지금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 처우개선과 고용안전을 위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과거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각오로 혼자 오롯이 버티어내다'였다면 지금은 '우리는 함께 싸울 수 있다. 내 옆엔 경쟁자가 아닌 동료다' 하는 믿음으로 일한다. 과거 개그 프로그램이나 영화에서 콜센터 상담사를 조롱하듯 희화화하던 시절들이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상담사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연결음처럼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고, 욕설 고객에게는 경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객들도 '수고하십니다'라는 첫 인사를 많이 해준다.
하지만 '나아졌다' 뿐,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감정을 갈아 넣으며 2년마다 업체가 바뀌는 고용불안에서 일하고 있다. 종종 감정이 바닥을 칠때 문득 내 가족이 떠오른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인데. 왜 이런 대우 받고 있지? 이 모습을 보면 내 가족이 얼마나 슬퍼할까." 그런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내 가족이 슬퍼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내 감정은 오롯이 내 것이기에 누구도 해치지 못하게 강해지자는 다짐도 같이 하다 보면 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이 글은 단지 내 이야기를 적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수많은 상담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소리 하나로 감정노동을 감당하며 일하고 있다는 것을, 감정을 지우며 일하는 사람은 없으며, 우리도 감정이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세상에 말하고 싶어서 적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터에 나간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의사와 벽돌공,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노동가치를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면서 나는 오늘도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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