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8일, CNN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에 출연한 버니 샌더슨 샌더스는 기술 발전으로 얻은 막대한 생산성 이익이 자본가에게 독점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임금 삭감 없는 노동 시간 단축과 의료 서비스의 기본권 보장을 강력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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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모든 일손이 필요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소득을 얻어 가족을 부양하고 집세를 낼 것인가?" 샌더스는 기술 발전으로 얻은 막대한 생산성 이익이 자본가에게 독점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임금 삭감 없는 노동 시간 단축과 의료 서비스의 기본권 보장을 강력히 촉구했다. 심지어 신규 AI 데이터센터 건설의 잠정 중단까지 제안하며, CEO들이 대중에게 적응만을 강요하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AI와 휴머노이드 사회, 우리가 그렸던 미래인가
이러한 반문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남긴다. 과연 이것이 인류가 기술 문명을 발전시켜 오며 그려왔던 미래의 모습이었던가. 기술은 인간의 고된 노동을 대신하고, 그로 인해 확보된 풍요 속에서 인간이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해방의 도구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 기술은 인간을 일터에서 축출하고 있으며, 풍요는 소수의 기술 권력에게만 집중되고 있다. 여기서 냉혹한 경제 논리조차 이 질주에 경고를 보낸다. 기술 기업들이 궁극적으로 수익을 올리려면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소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소비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주머니를 텅 비게 만든다면, 도대체 누가 그들의 혁신에 돈을 지불하겠는가. 자본주의의 선순환 고리 자체가 끊어지는 것이다. 인간을 향하지 않는 기술은 진보의 탈을 쓴 재앙일 뿐 아니라, 결국 자멸의 길이기도 하다.
혁신의 전도사이기 이전에 중재자로서 정부의 역할
이제 정부의 역할에 대해 엄중히 물어야 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현대차 아틀라스 사례를 두고 노동자들이 느끼는 실존적 공포를 직접 언급하며, 아이디어가 좋으면 창업 전 단계부터 지원하는 '창업 사회로의 대전환'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고용 창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시도임은 분명하나, 과연 이것이 당장의 격변에 직면한 이들에게 유효한 해법인지는 의문이다.
수십 년간 공장에서 숙련된 기술을 닦아온 노동자들에게 창업가가 되라는 권유는 그들의 삶의 궤적을 무시한 무책임한 제안이 될 수 있다. 더욱 근본적인 모순은 창업의 내용에 있다. 새로 탄생할 기업들 역시 AI와 자동화를 기반으로 고용 수요가 현저히 낮은 모델이 대세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를 구제하기 위해 일자리가 귀한 기업들을 양산하는 이 아이러니를 정부는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이제 정부는 단순히 AI 산업 활성화를 외치는 전도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술의 전진이 가져올 풍요만큼이나, 그 이면에서 숙련된 노동의 가치가 증발하며 겪게 될 인간의 실존적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는 자본의 속도에 적응하라는 공허한 주문 대신, 기술 혁신의 이익이 소수 올리가르히에게 독점되지 않도록 부의 흐름을 재설계하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능동적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기술의 진보가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게 할 국가의 마지막 책무이기 때문이다.
과도기라는 험난한 고비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이 거대한 전환의 과도기를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에 있다. 인류의 기술적 진보는 멈출 수 없으며, 멈춰서도 안 된다.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기술 유토피아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이 과도기는 너무나 험난하다. 만약 이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고 공동체의 신뢰가 무너진다면, 그 너머의 세상은 인류에게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도기의 비명을 외면한 채 던지는 장밋빛 대안은 기만일 뿐이다.
정부는 단순히 미래를 낙관하는 전도사가 아니라, 현재의 고통을 직시하고 관리하는 사회 안전망의 정밀한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정밀한 '데이터 시계(視界)'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직군이 어느 속도로 소멸하는지, 기술 도입으로 얻은 부가 어디로 쏠리는지 정확히 파악해야만 이 격변의 강을 건널 실효적인 구명보트를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없는 행정은 자본의 독주를 방관하는 직무유기이며,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가속페달을 밟는 위험한 도박과 다름없다.
인간을 향하지 않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인류가 사회적 공존의 교집합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아틀라스의 진격은 문명의 도약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의 삶을 짓밟는 행진이 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멈추는 용기가 아니라, 이 가혹한 과도기를 인류가 다 함께 건너갈 수 있도록 새로운 공존의 질서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인류 문명사에서 이러한 기술 진화로 인한 격변기가 처음이 아니었음을 상기하며, 과거의 역사에서 우리가 놓친 교훈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지혜를 빌려 오늘날의 위기를 돌파할 구체적인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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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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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의 진격, 우리는 진보의 자격을 갖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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