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선을 강조해 벽과 의자가 하나로 이어지도록 만들었고, 그 모호함이 오히려 편안한 착석감으로 돌아왔다.
박배민
중심 전시관을 둘러보며 와닿은 건, 해설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대신 공간은 유난히 정돈되어 있었다. 먹색 톤으로 가라앉은 전시실은 직선을 피하고 곡선을 강조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과 의자는 분명 다른 요소임에도, 그 경계가 모호했다. 곡선을 따라 이어진 벽은 자연스럽게 의자가 되고, 의자는 다시 벽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조명은 유물을 또렷이 드러내기보다는, 새벽 어스름같이 모호하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한 듯했다. 이 모호함이 오히려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 전시관이 유물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했다.
'언어는 줄이고, 공간을 믿는다.'
음악과 향 그러나 과하지 않게
향로 전시관 곳곳에서 음악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음악이었지만, 멜로디와 리듬은 선명하지 않았고, 소리도 아주 작았다. 멀리서 읊조리는 불경처럼, 공간의 바닥에 낮게 깔려 관람의 호흡을 조율해주었다.

▲ 벽에 기대어 대향로를 감상 중인 관람객
박배민
여기에 더해 공간 전체에 은은한 향이 퍼져 있다. 개성이 분명하지만 과하지 않고, 마음과 몸을 동시에 느슨하게 만드는 향이다. 전시관 조성과 함께 의도적으로 설계된 향이라고 한다. 어떤 향인지 궁금해 현장 직원에게 물었지만, 공간 구성 업체의 비법이라 자세한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보도자료에 적힌 '고대 향료를 현대적으로 조향한 향기'라는 문장이 이 감각을 비교적 적절하게 설명한다.
다가감이 아니라 물러섬
향로 전시실은 상당히 넓다. 백 명쯤은 충분히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공간 한가운데에 백제금동대향로가 놓여 있다. 향로를 보호하고 있는 유리는 사방이 트여 있어, 코 앞에서 유물을 하나하나 뜯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시실의 의도는 '다가감'이 아니었다. 차라리 '물러섬'에 가까웠다.

▲ 세밀한 표현에 감탄하게 되는 백제금동대향로
박배민
향로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마음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무언가 잘못된 자리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호의를 받고 있으면서도 그 친절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마음 한편이 어색해지는 감각과 비슷했다. 분명 전시관인데, 그 지점에서는 전시관이 아닌 다른 장소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전시실은 백제금동대향로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도리어 멀리 떨어진 벽 앞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을 전제로 설계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좌석의 위치와 시선의 각도는 그런 관람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 측면에서 바라본 향로 전시실
박배민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설명을 읽지도, 사진을 찍지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놀라울 만큼 그 상태가 어색하지 않았다. 유물 앞에서 멍해져도 괜찮다는 허용,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유물에서 멀어질수록 공간이 건네는 메시지는 분명해졌다.
새로운 전시관이 남긴 하나의 기준
백제금동대향로의 중요성과 기술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끝이 없다. 이 향로가 아니었다면 백제가 얼마나 섬세한 감각을 지닌 사회였는지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 나아가 백제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전시관은 그런 해석을 내세우지 않는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중요성을 말로 풀기보다는, 그 자리에 머물게 함으로써 이야기를 각자 발견하게 만든다. 설명을 줄이고, 머무는 시간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 중심 전시실에 들어서면 동선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유물로 향하고, 다른 하나는 숲길을 걷는 듯한 영상을 마주하는 길이다. 관람객이 유물 앞에 서기 전, 잠시 숨 쉴 틈을 만든 구성이다.
박배민
새로 개장한 전시관으로 향하며, 나는 으레 유물의 위대함을 예찬하는 글을 쓰고자 했다. 금동대향로의 중요성과 기술성, 백제 문화의 수준을 정리하는 방식 말이다. 막상 전시관을 보고 난 뒤에는 생각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부여박물관은 유물을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었고, 이해시키기보다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본 탐방기도 그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 국립부여박물관 정문
박배민
신설된 전시관을 나선 후에 나는 '백제금동대향로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보다, '문화유산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 하나를 얻었다. 설명을 줄이고, 공간을 믿는 태도. 백제금동대향로는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이 전시관은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말하고 있다.
| 탐방 정보 |
§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대향로관 §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 국가유산: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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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남긴 흔적을 찾아 다닙니다.
행정학과 관광학을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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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멍' 제대로 할 수 있는 곳, 서울에서 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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