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입문 좌절기, 군대 개혁 꿈꾸던 장군의 고백과 당부

정치하겠다는 분들께... 정치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시라

등록 2026.02.05 11:12수정 2026.02.0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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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문제야. 정치만 제대로 잘하면, 우리나라가 무궁무진하게 발전해 선진국이 될 수 있을 텐데..."

정치인들을 향한 아쉬움과 원망 그리고 불신의 목소리를,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게 모든 분야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희망찬 나라로 변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이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장차 있을 모든 선거에서, 빛의 혁명을 이룩한 위대한 국민의 역량으로 알곡과 쭉정이를 명명백백 판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로서 구시대적 협잡이나 조작적 속임수가 통할 수 없는 'K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세계 정치사에 길이 빛날 모범적 민주국가로 대도약해야 한다.

필자도 한 때 정치에 몸담으려 나선 적이 있었다. 정치 지망생 여러분에게 참고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때의 부끄러운 경험담을 소개하고자 한다.

군대문화 개혁에 바친 일생

필자의 일생은 '군대문화 개혁' 이 한 가지 일에 미치다시피 도전 해온 삶이었다는 생각이다. 부하병사들의 인격과 인권, 생명을 중시하는 '인간존엄의 민주군대', 의병전쟁과 독립전쟁의 빛나는 정신을 이어온 '자랑스러운 민족의 군대'라는 민족사적 역사의식에 충만한 군대문화를 정착시키고자 끊임없이 고민 연구 주장하며 어떤 제도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 하는 등 발버둥쳐 온 세월이었다.

방송토론회에 나가 열렬히 주장도 하고 여기저기 신문에 수도 없이 게재하고 책을 써서 호소하는 등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하여 노력해 왔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 '평화재향군인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시민운동으로 뜻을 관철하려고도 애썼지만 모두 허사였다.


냉전 수구 정권과 반민족적 족벌 언론 그리고 권위주의에 찌든 예비역 고위간부 등 기득권층의 영향력이 너무나 강고했다. 개혁을 주도해야할 국방부부터 문제의식 없어 나 몰라라 했다. 국군통수권자가 확고한 철학과 신념 그리고 강단의 실천의지를 가지고서 추진해야 이룰 수 있는 내용들인데, 당시엔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이에 필자가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 관련 제도를 개혁케 함으로서 뜻을 이루고자 했다.

때마침 김대중 대통령 후보 쪽의 유력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국회의원 공천을 100% 보장 할 테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의 고향에서는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 당선이 확실시 되던 그런 실태였지만, 나는 일언지하 단호히 거절했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고자하는 목적은 순전히 군대 개혁을 하기 위함인데 야당 국회의원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니 아무 의미가 없다. 때문에 여당으로 나가고자한다고 설명해주었다. 군사독재나 다름없던 당시는 야당 국회의원의 주장이나 제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이었다.

민자당 공천예정자로 발표되다

 육군본부 정훈감을 지낸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전 상임대표
육군본부 정훈감을 지낸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전 상임대표 김도균

그러던 차에, 1992년 3월의 14대 총선을 앞두고 우리 지역 민자당 지구당 위원장으로부터 공천 받도록 조치해줄 테니 의향 있으면 출마하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주저 없이 응하여 급하게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신발이 달도록 열심히 뛰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좋아했다. 나를 유머 감각이 있고 정의감이 매우 강한 특출한 사람이라며 이번에는 어떤 당이냐에 관계없이 완도사람을 무조건 국회로 보내야한다는 명분의 여론으로 '완도인'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믿고 있었던 바는 첫째 완도가 강진지역보다 인구가 많다는 점이고, 둘째 완도는 일찍이 '신간회'의 본산이라 할 정도로 독립 운동가들을 많이 배출한 진보적 성향이 매우 강한 지역이라는 점이었다. 대통령선거에서 조봉암씨 표가 이승만 표보다 많이 나올 정도로 정치수준이 높은 고장이다.

특히 소안면은 항일독립운동으로 이름난 고장으로서 6.25전쟁 기간 중에는 친일경찰에 의해 1개 마을 남자들이 전원 학살당한 슬픈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고금면도 독립 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실재 소안면과 금일면 고금면을 중심으로 몰표가 나올 것이 확실한 분위기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열열이 격려해 주었다.

공천발표 하루 전날, 모든 신문과 TV 응 매체에서 완도강진 민자당 지역구 공천예정자로 표명렬 장군이 결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청천벽력, 아침 뉴스에 그 전의 지구당 위원장이 공천 받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정치란 이렇게 손톱만큼의 양심도 의리도 없는 불의막급 비정한 것인가? 완전히 야바위꾼들의 놀음판에 속았다는 실망과 환멸이 들었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나는 너무 억울해 무소속이라도 좋으니 꼭 출마하겠다 버티고 있었다.

국민당중앙정치연수원 상근 부원장 역임

그러던 중 정주영 국민당 안보위원장으로 있는 이건영 장군(안기부장, 3군사령관역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입당하지 않아도 좋으니 한번 만나자는 부탁이었다. 나는 당사에 들려 정주영 대표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읽은 뒤 놀랐다. 이 분이 대통령되면 군대개혁은 물론 나라를 완전히 바꿀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어 입당했다.

신생 정당이니 당원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중앙정치 연수원' 원장직을 맡으라 했다. 후에, 원장은 현역 국회의원으로 바뀌고 나는 '상근 부원장'직을 맡았지만 사실상 당원교육에 대한 전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서 온 정열을 다 쏟아 부었다.

나는 거의 매일 그곳에 기거하며 열과 성을 다해 당원교육을 진행했다. 교육과정은 내가 직접 경험했던 '새마을 지도자반 교육'과 국군정신전력학교를 창설하여 설치했던 '고급간부 반', 그리고 대만에서의 '정치심리전 지도자반'의 내용을 참고했다.

각 지구당 위원장들이 회장님에게"당원들이 중앙당 연수원만 다녀오면 완전 열성 당원으로 돌변해 옵니다"라 보고하며 교육인원을 늘려 달라고들 아우성들이었다. 나는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주영 회장께서 당선되리라 확신을 가지고 열심을 다했으나 결과는 참패였다.

그 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민주당 중앙당 안보위원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입당하였고 노무현 정부 때는 열린 우리당 안보위원에 임명되었다. 하루는 김근태 '열린 민주당' 당의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제가 선배님이 쓰신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라는 책을 읽고서 너무나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뿐만이 아니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장군 중에도 이런 분이 계신 줄을 모르고 그동안 장군출신들에 대해 욕을 많이 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 했다.

열린 우리당전국구 의원 낙천

그 후 김근태 의원께서 전국구 국회의원에 출마해보지 않겠느냐? 권유해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공천심사 과정에서 낙천했다. 심사 위원 중 한사람이었던 김희선 의원께서 만나자고 했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국군의 날 변경', '국군의 정통성·정체성 회복', '국군의 연원을 독립군과 광복군에 두어야한다'는 주장을 담은 나의 오마이뉴스와 한겨레 경향신문 등에 기고글을 보았고, 방송 토론에 나갔을 때 내가 한 발언들에 큰 호감을 느끼고 있던 분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내가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던 목적과 이유, 그리고 '민자당' 공천에서 떨어지고 '국민당'에서 활약 했던 일 등 일련의 과정들을 쭉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며 "그런 깊은 뜻이 있어 정치를 하려고 했던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진즉 알았었다면 충분히 설명을 했을 텐데~ 이 당 저 당, 당적을 하도 많이 옮겨 다닌 기록 때문에, 권력에 기웃거리는 기회주의자처럼 오해되어 공천에서 낙천 되었습니다"라 말해주었다.

듣고 보니, 그럴 법도하다. 기록상으로만 보면, 어이없게도 내가 마치 국회의원 금배지가 탐나서 정치 철새처럼 이 당 저 당 쫓아다닌 것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아마도 운명의 신이 내가 정치에 물들지 않도록 만들어주어, 지금까지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준 듯하다. 난 그것에 감사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표명렬 전 정훈감(예비역 준장), 평화재향군인회 창설 회장 역임
#정치하려는목적 #봉사적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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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 인격존중의 ‘민주군대’, 민족사적 역사의식이 투철한 자부심 넘치는 '민족의 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 왔음. 육군사관학교 졸업(18기).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졸업. 대만 정치작전학교 정규반 수료. 월남파병(1965년 맹호부대 소총중대).육군정훈감(준장),평화재향군인회 창설, 상임대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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