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훈장 참전용사 군복에 달기 원하는 훈장
이종범
훈장을 왼쪽 가슴에 달고 싶다는 바람까지 덧붙였다. 늦게 받은 '국가의 인정'을 마지막 인사에라도 달아 두고 싶은 마음으로 들렸다. 수의도 한 벌 준비해 두라 하셨다. "50만 원 넘지 않는 걸로."
국립이천호국원 이야기도 이어졌다. 답사 삼아 이미 두 번 다녀온 곳인데도, 그때가 오면 미루지 말고 어머니와 합장하라고 하신다. 마지막은 절차였다. "안장하려면 뭘 먼저 해야 하는지,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네가 맏이니까 미리 알아 둬라."
장례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뜻을 받드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당신이 스스로 준비의 순서를 정리해 주시니 자식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게 해주는 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마음은 가벼울 수가 없다. 홀홀단신 남하해 가족 하나로 버텨오신 분이, 이제는 당신의 끝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무겁다.
아버님은 가족 모임 때마다 두 가지를 반복해서 당부하신다. 건강, 그리고 형제간 우애다. 열일곱에 홀로 남하해 피붙이 한 명 없이 살아온 경험이 그 말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 6남매는 공식적으로 1년에 다섯 번은 모인다. 구정(설), 어머님 기일, 추석, 연말 아버님 생신은 우리 집이고, 봄철 전원주택 '불멍' 모임만 장소가 바뀐다. 우리 집이 큰집이라 자연스레 중심이 된다.
가족 모임이 끊기지 않고 계속 되었으면
이번 설을 보내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설·추석·기일은 달력에 박혀 있어도, 모임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몇 시쯤 올 거냐" 한 번 더 묻고, 누군가는 장을 보고, 누군가는 상을 펴고 치운다. 맏이라는 이유로 아내와 내가 먼저 챙겨야 할 일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도, 요즘 들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그 생각은 설날 오후 4시쯤, 가족 단톡방에 올라온 둘째 동생의 글로 더 확실해졌다. 둘째는 암 치료 중이다.
"내가 어제 밤에 심하게 설사하고 토하고 해서 상태가 별로에요. 오늘은 집에서 쉬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고 담에 봅시다. 함께 하지 못해 아쉽네요..."
명절은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건강이 흔들리면 약속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그래서 더 겁이 났다. 아버님이 떠난 뒤에도, 우리 가족 모임이 달력처럼 당연히 이어질 거라고 장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꼭 이렇게 큰 상을 차려야만 모일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형식은 조금 바뀌어도 좋다. 밥 한 끼를 간단히 먹어도 되고, 커피 한 잔만 마셔도 된다. 안부 전화 한 번 더 걸더라도, 우리 집 모임이 끊기지 않았으면 한다.
가족을 다시 모이게 하는 건 결국 누군가의 한 마디다. "이번 주말에 잠깐 볼래?" 그 말을, 이제는 우리가 먼저 꺼내야 한다. 가족모임을 이어주는 건 상차림이 아니라, 서로를 챙기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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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다시 살아볼까’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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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는 50만 원 넘지 않는 걸로" 참전용사 아버지의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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