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매와 연대자는 11월 재판이 열매가 지향하는 정의와 치유의 가치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길 원했다. 따라서 10월 <치유회복 프로그램>에서는 이를 형상화할 수 있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에 대해 논의하고 피켓 디자인과 소품 등을 구상했다.
열매
이 퍼포먼스는 재판 한 달 전, 트라우마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열매의 '치유회복 프로그램'에서 구상했던 아이디어가 현실화된 결과였다. 이전까지, 이 프로그램은 열매와 치유 전문가 외에 외부인의 참관은 취재나 기록에 한해 한정적으로 허용해 왔다. 그러나 10월에는 '연대자'의 이름으로 예술가와 기록자 등이 열매의 동심원에 함께 자리했다. 그리고 첫 재판의 기자회견과 퍼포먼스의 방식을 함께 고민했다. 국가배상 소송이 정의 회복을 위해 중요하지만 원고로서 느낄 감정적 부담감을 줄이는 노력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열매에 정의를 위한 투쟁 못지않게 중요한 지향점은 투쟁의 과정이 구성원에게 치유여야 한다는 점이다. 열매 간사와 상담자가 진상위 조사 때부터 지켜온 원칙이기도 하다. 조사 과정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유발할 위험이 크듯 조직은 대의를 위해 구성원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조직의 목표가 옳고 추진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구성원이 동의하지 못하거나 감정적인 부대낌을 느껴도 밀어붙이곤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조직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열매는 모두가 합의하고 공감하는 숙의의 과정을 중시한다. 개인이 느끼는 불편함, 거부감 등은 열매를 위해 억압해야 하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열매의 활동을 재설계하는 데 필요한 모두의 문제로 간주된다. 구성원을 하나로 동질화하지 않고 서로 간의 차이를 조율하는 민주적이고 상호돌봄적인 의사결정 과정은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조직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열매의 활동은 정의와 치유가 하나의 짝패라는 점을 보여준다. 치유적이지 않은 정의도, 정의롭지 않은 치유도 불완전하다. 이전까지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했던 것은 제대로 된 방법론을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열매가 추구하는 연대의 방식
대내외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열매는 간사와 상담자, 둘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한시적인 연대가 아닌 지속적인 연대의 관계가 필요했다. 열매의 대외 활동 전면에 나섰던 윤경회 간사는 이 씨앗을 뿌려왔다.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진상규명 결과를 알리고, 열매의 소송, 입법 활동에 지지를 구하는 홍보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던 것이다. 그중 열매가 지향하는 가치에 공감하고 결이 맞을 것 같은 얼굴을 떠올렸다. 그렇게 연결된 13명이 2025년 9월 북한산 밑자락 모임 공간에 '연대자 집담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됐다.
모인 이들의 내력은 다양했다. 사회 주변부의 권리 운동에 몸담아 온 활동가나 피해자 정의를 주장해 왔던 연구자, 잊히기 쉬운 존재들의 목소리를 길어 올렸던 기록자, 인간의 고통을 어루만지거나 투쟁에 동참했던 예술가 등이 연대자의 이름으로 둘러앉았다. 이때까지도 연대의 구체적인 상을 가지고 있던 이는 없었다. 아직 열매의 미래도 명확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열매와 함께하겠다는 공통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 김신윤주, One Heart Project <공명 Resonance> 부제: N개의 공명블럭. 통영국제트리엔날레. 2022
김신윤주
2개월 후 마련된 2차 연대자 집담회에는 예술가의 참여가 더 늘었다. 천조각을 이어 붙인 김신윤주 작가의 공공예술작품 원 하트 프로젝트(One Heart Project)를 보고 윤경회 간사가 치유적 예술활동을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프로젝트 참여자는 각자 사랑과 평화에 대한 이미지를 천에 자유롭게 표현한다. 이렇게 모인 천 조각들은 바느질을 통해 하나의 조각보가 되고 치유가 필요한 공간에 설치된다. 조각보가 역사적 고통이 서린 공간을 감싸 안고 따뜻한 색감의 빛으로 그 안을 새롭게 채우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참여자의 고유한 하나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연결된 하나를 상징한다.
이는 조직으로서 열매가 가진 원칙이자 꿈꾸던 연대의 상이 구현된 예술이었다. 김신윤주 작가가 흔쾌히 예술 연대자를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오랫동안 운동과 치유로서의 예술 프로젝트를 해온 예술가 다수가 열매 바깥의 동심원으로 모이게 되었다.
20여 명이 모인 이날 집담회는 '치유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쉽게 합의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던 기대를 처음부터 다시 묻는 자리였다. 피해자와 예술가가 맺게 될 관계의 깊이와 안전, 동의의 방식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유를 전제로 한 예술을 말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됐다. 열매의 연대자이기를 자청한 예술가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폭력과 불평등의 문제에 개입하는 비판적 작업을 해 온 실천가들이었다. 그렇기에 익숙한 치유예술의 형식이 피해자를 대상화하거나 피해자의 속도와 어긋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예민하게 짚어냈다.
일반적인 치유 프로그램은 치유받는 자와 치유하는 자가 고정되지만 예술은 그렇게 당연시된 경계를 허물며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작업이다. 예술가는 열매와의 연대를 '치유 성과'에 집중하기보다 아름답고 건강한 상호의존적인 관계성을 만드는 과정으로 여겼다. 이로써 열매는 치유예술이란 이름을 잠시 유보했다. 전형적인 치유 예술의 프로토콜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점, 그리고 열매와 함께하는 예술은 미리 정해진 형식이나 일정이 아니라 열매의 시간과 서사, 관계의 리듬에 기반해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었다.

▲ 열매의 연대자이기도 한 김화순 작가의 작업실에서 진행했던 2차 집담회 장면. 모두가 열매를 소중하게 안아 올린 동작을 취하고 있다.
열매
집담회는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다짐과 약속은 맺어졌다. 열매와 연대자의 관계가 차이에 기반하되 그것이 어떠한 권력이나 위계를 내포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 또한 각자가 가진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형태로 연대한다는 점이었다. 연대자 또한 열매로부터 변화하고 치유받는 존재로 자신을 열어두는 자세도 중요했다. 정의와 치유는 일방향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적이고 상호적인 것이라는 점을 유의하는 것이 열매 연대의 핵심이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5.18 성폭력 치유와 회복을 위한 단체 '열매'의 연구 활동가입니다. 국가폭력과 젠더폭력이 겹쳐진 곳에서 들려지지 못한 여성 증언을 청취하고 당사자의 곁에서 지연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공부하고 행동합니다.
공유하기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가 개인의 감정을 보살피는 법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