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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2.14 18:45수정 2026.02.1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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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손자 로리가 밥을 먹다가 불쑥 말했다.
"할머니, 캠핑 가고 싶어요."
지난해 겨울 캠핑 뒤 감기로 고생했던 아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엔 캠핑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다시 캠핑을 말한다. 이상하게도 그 한 마디가 오래 남았다.
그날 나는 알 것 같았다. 이건 단순히 어디 놀러 가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 많은 곳의 이벤트가 아니라, 자연 속으로 들어가 몸으로 계절을 느끼고 싶다는 뜻. 그리고 문득 확신이 들었다. 그래, 이번 설은 그렇게 시작하면 되겠구나.
손자 한 마디로 시작된 설 계획

▲ 겨울 캠핑
신혜솔
우리 집은 명절이면 주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연휴가 길기도 하고, 제사를 엄격히 치르는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이동으로 인사를 드린다. 어딘가로 떠나 조용히 기도하거나 묵상하며 조상님들께 마음을 올린다. 최근엔 주로 캠핑이었다. 간단히 준비해 간 명절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잘 차린 차례상 대신 기도로 다짐을 올렸다.
"올해도 잘 살아보겠습니다."
이번 설에도 아들 내외에게 며느리 친정부터 다녀오도록 했다. 친정 부모님께 세배하고 하룻밤 자고 오라고 했다. 명절이 우리 집만의 의무가 되는 순간, 관계는 쉽게 굳는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누군가의 부담을 덜어내는 쪽을 선택한다. 세배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인사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가장 편안히 놓일 곳부터 다녀오면 된다.
명절에 해외여행을 간 적도 있다. 하지만 명절 연휴의 공항과 관광지는 늘 붐비는 걸 경험했다.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특히, 새해의 숨결을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여행을 떠나더라도 조용히 즐기고 싶은 편이다. 북적임 속에 섞여야 하는 여행은 조금 버겁다.
그래서 이번에는 해외 대신 가까운 자연을 택했다. 새해를 먼 곳이 아닌, 땅에서 직접 맞이하고 땅의 기운을 받고 싶었다. 아들과 며느리도 무척 좋아했다. 아이가 있으니 근처 눈썰매장을 찾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설을 원하지는 않는다.
입장권을 끊지 않아도 되는 눈, 우리가 머무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눈을 밟고 미끄러지고 넘어졌다가 웃는 시간. 놀이기구가 아니라, 땅이 아이를 받아주는 방식으로 놀기를 바란다. 눈 위에서 미끄러지는 일조차 획일적인 놀이가 아니라 몸이 계절에 대답하는 순간이기를 바란다.
이번 설 여행지는 무주다. 내가 살던 충북의 영동군과 아주 가까운 곳이다. 나는 지인 한 명 없던 그곳에서 5년을 살았다. 수풀을 누비고 땅을 파고 고추와 채소를 심었다. 손으로 흙을 만져야만 알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땅이 내 손을 받아주던 감각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늘 시골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땅을 밟고 싶다는 욕구가 이런 설날을 계획하게도 하니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나는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이 조용해지고, 그 조용함 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 또렷해진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무주다. 조용히 머물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살던 산골 마을에 들러 이웃들께 인사를 건넬 생각이다. 그곳을 떠난 지 10년, 그 사이 나는 할머니가 되었고, 손자를 데리고 다시 찾는다. 인사를 하러 들르면 얼마나 좋아들 하실까. 그 시간이 벌써 따뜻하게 느껴진다.
설날의 자연은 각별하다. 발밑에는 새하얀 침묵이 깔리고, 그 침묵 속에서 작은 소리들이 들린다. 얼음장 밑으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 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 사람이 말을 줄일수록 또렷해지는 소리들이다. 우리는 그 소리들을 들으러 간다. 새해를 다짐만이 아닌, 감각으로 시작하려고.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 로리에게 할머니가 살았던 산골 마을을 꼭 보여주고 함께 걷고 싶다.
서로를 존중하며 한 해를 시작하기

▲ AI생성 이미지
오마이뉴스
우리 집은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 대신 성당에서 조상님을 위한 미사를 드리고 묵상한다. 잘 살겠다고, 서로를 해치지 않고 지켜내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조상님께 드리는 인사는 결국 살아 있는 사람에게 돌아온다. 내가 누군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 삶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다.
생각해 보면 이번 설 계획도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캠핑 가고 싶다는, 밥상 앞에서 로리가 던진 한 마디 때문이다. 그 말이 우리 가족을 숲으로, 눈 속으로, 조용한 새해로 이끈다. 오래된 이웃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마을 공소에서 조상님께 기도를 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명절은 누군가에겐 여전히 부담이고, 누군가에겐 피하고 싶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꼭 한 가지 방식만이 정답이어야 할까. 차례상을 지키는 집도, 여행을 떠나는 집도,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다면그것이 명절의 본 뜻에 더 가까운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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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가고 싶어요" 다섯 살 손자의 말, 할머니 번역기 돌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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