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후 아이가 간 어린이집, 이게 달랐습니다

[미국 이민 적응기] 낯선 땅에서의 적응은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쉽지 않다

등록 2026.02.09 13:31수정 2026.02.0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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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에 미국에 도착해서 집을 구하기 전까지 처형네 집에서 생활했다. 3개월 가량이었다. 그곳에서 첫째는 엄마와 같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같이 운영하는 유치원이었다. 당시 두 살이 아직 안된 둘째는 어린이집에 보냈다. 미국답게 거리가 엄청 멀어서 정말 꼭두새벽에 나갔다가 밤이 돼서야 돌아왔다.

그러다 지금 사는 집을 구했고, 지난해 겨울, 2월부터 현재의 어린이집 생활이 시작됐다.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낯가림이 덜해서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생각보다 빨리 적응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자연스레 이 곳에 뿌리를 내리는구나 싶었다.


이곳 어린이집은 한국과 정말 많이 다르다. 점심은 부모가 직접 싸야 한다. 도시락통에는 아이 이름과 날짜를 적은 스티커를 붙이고, 남은 음식은 그날 다 돌려받거나 버린다. 뜨거운 음식을 데우다 생길 수 있는 화상, 보관 온도가 잘못됐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 등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곳의 규칙은 '아이에게 먹이는 사람'을 부모로 정해두고, 어린이집은 그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만 손을 대는 쪽을 택하고 있다.

아이가 열이 나도 선생님은 약을 주지 않는다. 한 번 더 체온을 재 보고, 열이 내리지 않으면 "데리러 와 달라"고 연락이 온다. 감기약이나 알레르기 약은 부모가 직접 먹이는 것이지, 선생님이 쉽게 건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약 한 번 잘못 줬다가 생길지 모를 책임을 피하기 위해, 제도와 문화는 선생님보다 부모 쪽으로 무게를 옮겨 놓았다. 코로나 이후로 더 까다로워진 분위기 속에서, 어린이집은 더 보수적인 길을 선택한 것 같다.

 최소한의 돌봄.
최소한의 돌봄. nhuenerfuerst on Unsplash

선생님들의 태도도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한국의 어린이집 선생님을 떠올리면, 아이 눈높이에 맞춰 밝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이곳은 조금 결이 다르다. 아이들에게 어른처럼 말하는 건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조금 높은 톤으로 이야기하되 선을 넘지 않는 거리감이 있다. 학부모와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선생님과 학부모'라기보다는 '어른과 어른'의 대화에 가깝다. 서로 예의를 지키지만, 불필요한 감정 교류는 하지 않는다. 덤덤하고, 건조하다.

하원 시간 풍경도 다른데, 한국처럼 교실 문 앞에 서 있으면 선생님이 아이를 챙겨 데리고 나오는 구조가 아니다. 부모가 직접 교실 안으로 들어가서 아이의 가방과 이불, 도시락 통 등을 챙겨야 한다. 낮잠 시간에 데리러 가면 자는 아이를 깨우는 일도 부모의 몫이다. 이곳에서는 그것을 '선생님의 업무'라기보다 '부모의 개인적인 영역'으로 여기는 것 같다. 권한과 책임, 그리고 감정의 영역을 나누려는 미국식 보육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고 느꼈다.

또 한 달에 한 번 'Teachers Work Day(교직원 근무의 날)'가 있다. 그날은 학교는 오전까지만 하고, 어린이집은 아예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들이 서류를 정리하고 연수를 받는 날이라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갑자기 하루를 비워야 해서 난감하지만, 선생님들도 자기 일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이런 날들이 쌓이다 보니, 아이들의 빠른 하원과 잦은 휴원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렸다.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주 5일 종일로 보내는 것은 매우 부담이다. 한국처럼 교육과 돌봄을 두루 제공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아이를 대신 봐주는 곳'이라는 인상이 강할 때가 많다. 물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고 영어를 자연스럽게 익히지만, 부모의 마음 한편에는 늘 "이 돈을 내면서 이 정도 보살핌이 충분한 걸까"라는 물음이 남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재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듯하다. 노스캐롤라이나는 코로나 이후 연방 정부가 풀어준 보육 안정화 예산에 기대 간신히 버텨왔지만, 그 돈이 끊기면서 어린이집 예산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우리가 다니는 어린이집도 결국 2세 이하 영아는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 딸은 그 직전에 등록해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비용이 많이 들고 손이 많이 가는 가장 어린 아이들부터 문이 닫히는 현실이 조금 씁쓸하다.


이곳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월급은 많지 않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들의 처지도 비슷하다. 보육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크지 않다. 맞벌이를 해야 겨우 생활이 유지되는 시대다. 한 사람이 벌어서 가족이 살기에는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가 너무 무겁다. 그러니 부모는 아이를 품에 오래 안고 있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아이를 맡겨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미국의 출산율이 서서히 내려가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저출산 대응 방식은 한국과도, 유럽과도 다르다. 출산 장려금을 대대적으로 내걸기보다는, 세금 공제나 보육비 일부 지원 같은 간접적인 정책으로 부모의 부담을 조금 덜어 주려는 쪽에 가깝다. 그마저도 정치적 갈등 속에서 쉽게 흔들린다. 한편에서는 이민자와 그 2세의 시민권 문제, 추방과 단속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부모 입장에서 보면, 통계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내 아이가 오늘 하루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낯선 땅에서 조금은 편안한 얼굴로 돌아왔는지 하는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몇 년이 지나면 학교에 진학하고, 언젠가는 친구와 세상을 더 가까이 두고 부모와는 조금 멀어질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가 경험하는 공간이 어떤 곳이기를 바라는지, 부모는 매일 선택하고 희망한다.

낯선 땅에서의 적응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쉽지 않다. 그래도 아이가 어린이집 문을 열고 들어가며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이곳에서도 언젠가는 우리의 일상이 단단하게 자라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의 개인 경험입니다. 미국의 법과, 아동, 아동돌봄, 교육에대한 법률과 규칙은 주마다 다르고 도시마다 다르기도 합니다.
#미국이민적응기 #미국생활 #미국어린이집 #어린이집 #미국아동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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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그림쟁이 개인전 8회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할 독립운동가 100인> 출판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매일 역사를 그려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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