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예산 광시면에 있는 박헌영 생가의 모습. 생가 옆으로 비닐하우스 몇 채가 세워져 있을 뿐 황량하다.
서부원
박헌영의 생가는 충남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의 길가에 버려져 있다. 송요찬의 생가와는 달리 몇몇 내비게이션에서 '박헌영 생가'로도 검색이 되지만, 막상 가보면 이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폭격이라도 맞은 듯 폐허 상태다. 마당엔 집기가 널브러져 있고, 창문은 죄다 깨져 있다.
갈림길의 외딴집으로, 과거엔 정류장이나 식당이 있을 법한 위치다.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농부도 이곳이 그의 생가라는 걸 아는 눈치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다가와서 한때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요즘엔 썰렁해졌다는 말을 건네곤 다시 종종걸음으로 되돌아갔다.
전하기로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듬해 산 너머 신양면 소재지로 이사했다고 한다. 그나마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건, 그의 혼외자로 출생해 모진 고초를 겪으며 평생을 선친의 명예 회복을 위해 헌신한 원경 스님 덕분이다. 지난 2021년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후세의 몫으로 남았다.
공산주의 독립운동사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임에도, 남과 북에서 박헌영을 거론하는 건 철저히 금기시됐다. 그의 이름과 행적이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고, 이따금 시험에도 출제될 만큼 '빨갱이'의 굴레는 시나브로 벗고 있지만, 교문 밖에서의 '복권'은 요원한 상태다.
그를 위인으로 추앙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를 모르고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의 반쪽이 텅 빌 수밖에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다만 교과서의 서술로만 접하다 보니, 아이들 중엔 그가 북에서 태어난 인물로 아는 경우가 많다. 기성세대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도 없다.

▲ 박헌영 생가의 내부 모습. 오랫동안 버려진 까닭에 유리창은 죄다 깨져 있고 곳곳에 집기류가 널브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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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화됐을지언정 송요찬은 후손과 지역 주민의 선양하자는 요구라도 있지만, 박헌영의 경우엔 섣불리 입 밖에 낼 수조차 없다. 하물며 정부가 나섰다가는 집단적인 이념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분단의 모순이 극복되지 않고서는 역사의 형해화는 피할 길이 없다.
정면교사든 반면교사든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송요찬과 박헌영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성찰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자랑스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고, 치욕스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다. 맹목적인 추앙이나 비난은, 말 그대로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지역 주민들은 복원하든 철거하든 흉물스러운 그들의 생가를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애물단지가 된 그곳을 정부가 매입해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공부하는 현장으로 남기면 어떨까. 거창할 것 없이, 빈터에 그들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 팻말 하나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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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의 버려진 생가,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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