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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의 버려진 생가,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

충남 청양의 송요찬 생가와 충남 예산의 박헌영 생가를 다녀와서

등록 2026.02.10 10:34수정 2026.02.1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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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해방, 분단 정부의 수립과 6.25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두 인물의 생가를 다녀왔다. 현대사의 거물, 송요찬과 박헌영. 나고 자란 고향은 자동차로 20분이면 가닿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둘은 굴곡진 역사 속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눈 적의 관계였다.

우선, 둘의 생애를 간략히 소개한다. 송요찬은 1918년생으로 일본군 지원병으로 복무하다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이 모태로 삼는 국방경비대에 배속된다. 6.25 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특히 4.19 혁명 때 계엄사령관으로서 군의 정치적 중립을 이끈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듬해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났을 때는 앞장서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덕에 박정희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과, 요즘으로 치면 국무총리 격인 내각 수반까지 역임할 정도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제주 4.3 당시 민간인 학살로 귀결된 강경 진압을 주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비운의 혁명가' 박헌영의 삶은 우리나라 공산주의 운동사, 그 자체다. 1900년생인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했고, 해방 후 남로당의 총책으로서 단독 정부 수립 운동을 주도했다. 미군정에게는 눈엣가시였던 그는 도피하듯 월북하여 북한 정권 수립에 힘을 보탰다.

6.25 직후 그는 패전의 책임과 '미 제국주의의 첩자'라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전격 총살되었다. 김일성 독재 체제 구축을 위한 희생양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게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북에서는 '조국의 배신자'로, 남에서는 '빨갱이의 수괴'로 낙인찍혀 철저히 외면당하고 지워졌다.

둘의 생가는 '폐가'나 '흉가'라는 말로도 부족한 참담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곳이 생가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지만, 쳐다보기만 해도 연좌제에 걸려 치도곤당할 것처럼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같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갈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허물을 감춘 기록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송요찬 생가의 모습. 사유지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형국이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송요찬 생가의 모습. 사유지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형국이다. 서부원

송요찬의 생가는 충남 청양군 화성면 매산리에 있다. 매산1리 마을 회관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반쯤 허물어진 집이 그의 생가다. 지붕에까지 잡풀이 무성하고 나무 기둥이 죄다 뒤틀려 있어 선뜻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려진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위태하다.

10년 전인 2016년, 청양군은 지역을 빛낸 인물을 선양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그의 생가를 복원하고 동상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상급 기관인 충청남도와 국가보훈부도 예산 지원을 약속하며, 사업은 본격 궤도에 올랐다. 생가 주변이 작은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생겼다. 제주 4.3 유족회 등의 시민단체가 거세게 반발한 것이다. 대통령도 제주 4.3 때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당했다며 공식 사과한 마당에,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책임자를 국가 예산으로 선양한다는 건 용납될 수 없다는 거였다.

결국 이듬해인 2017년 충청남도와 국가보훈부가 예산 지원 계획을 철회하면서 선양 사업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애초 계획 자체가 수립되지 않았다면 나았을 것이다. 사업이 취소되면서 송요찬의 후손과 지역 주민들의 제주 4.3 유족회 등에 대한 반감이라는 앙금만 남았다.

 송요찬 생가의 안마당엔 잡풀만 무성하고, 내려앉을 듯 위태로운 지붕 아래에 흑염소 한마리가 묶여 있었다.
송요찬 생가의 안마당엔 잡풀만 무성하고, 내려앉을 듯 위태로운 지붕 아래에 흑염소 한마리가 묶여 있었다. 서부원

군청과 면 행정복지센터, 마을 주민들을 찾아가 물어도 딱히 대책이 없을뿐더러 사업이 재추진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들의 푸념 속엔 제주 4.3 유족들을 원망하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이 내심 제주 4.3 유족들을 탓하는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역지사지'라는 말까지 끌어올 것도 없다. 당시 송요찬의 강경 진압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반성하고 사죄할 일이지, 이해를 구할 일이 아니다. 두루뭉술 해방 후 극심한 이념 대립을 핑계 삼는 건 비루한 행태다.

애먼 제주 4.3 유족들을 탓하기 전에 송요찬의 선양 사업을 바라는 후손들과 지역 주민들의 역사 인식부터 바루어야 한다. 당장 그를 기리는 기념물에 그의 공과를 함께 기록하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민간인 학살이라는 그의 허물을 잠시 감출 순 있어도 영원히 지울 순 없다.

만약 제주 4.3 유족들이 면 행정복지센터 앞에 세워진 그의 공적비를 봤다면, 당장이라도 선양 사업을 막아섰을 것이다. 군인으로서 그의 화려한 전공과 정계 입문 후의 벼슬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지만, 제주 4.3에 관해선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은근슬쩍 치부를 감추려는 것이다.

 청양군 화성면 행정복지센터 입구에 수문장처럼 서 있는 송요찬 공적비. 뒷면에 그가 역임했던 직책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청양군 화성면 행정복지센터 입구에 수문장처럼 서 있는 송요찬 공적비. 뒷면에 그가 역임했던 직책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서부원
 청양군 화성면 행정복지센터 입구에 붙어있는 마을 안내판에 송요찬의 사진과 함께 소개 글이 적혀 있다. '5월 군사혁명'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거슬린다.
청양군 화성면 행정복지센터 입구에 붙어있는 마을 안내판에 송요찬의 사진과 함께 소개 글이 적혀 있다. '5월 군사혁명'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거슬린다. 서부원

공무원들 역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면 행정복지센터 입구에 새뜻하게 조성한 마을 소개판에 송요찬의 사진과 설명을 적어놓았는데, 당장 '1961년 5월 군사 혁명'이라는 글귀부터 눈에 띈다. '5.16 군사 정변'이라는 공식 명칭을 공공기관이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해놓고선, 선양 사업을 반대했다며 제주 4.3 유족들을 마냥 탓할 순 없는 노릇이다. 가해자의 반성과 사죄 없이 피해자의 화해와 용서를 요구할 순 없다. 여기저기 산재한 그의 기념물에 새겨진 왜곡되고 편향된 기록부터 바룬 뒤라야 비로소 선양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도 과도 역사... 그저 방치해선 안 돼

 충남 예산 광시면에 있는 박헌영 생가의 모습. 생가 옆으로 비닐하우스 몇 채가 세워져 있을 뿐 황량하다.
충남 예산 광시면에 있는 박헌영 생가의 모습. 생가 옆으로 비닐하우스 몇 채가 세워져 있을 뿐 황량하다. 서부원

박헌영의 생가는 충남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의 길가에 버려져 있다. 송요찬의 생가와는 달리 몇몇 내비게이션에서 '박헌영 생가'로도 검색이 되지만, 막상 가보면 이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폭격이라도 맞은 듯 폐허 상태다. 마당엔 집기가 널브러져 있고, 창문은 죄다 깨져 있다.

갈림길의 외딴집으로, 과거엔 정류장이나 식당이 있을 법한 위치다.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농부도 이곳이 그의 생가라는 걸 아는 눈치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다가와서 한때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요즘엔 썰렁해졌다는 말을 건네곤 다시 종종걸음으로 되돌아갔다.

전하기로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듬해 산 너머 신양면 소재지로 이사했다고 한다. 그나마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건, 그의 혼외자로 출생해 모진 고초를 겪으며 평생을 선친의 명예 회복을 위해 헌신한 원경 스님 덕분이다. 지난 2021년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후세의 몫으로 남았다.

공산주의 독립운동사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임에도, 남과 북에서 박헌영을 거론하는 건 철저히 금기시됐다. 그의 이름과 행적이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고, 이따금 시험에도 출제될 만큼 '빨갱이'의 굴레는 시나브로 벗고 있지만, 교문 밖에서의 '복권'은 요원한 상태다.

그를 위인으로 추앙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를 모르고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의 반쪽이 텅 빌 수밖에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다만 교과서의 서술로만 접하다 보니, 아이들 중엔 그가 북에서 태어난 인물로 아는 경우가 많다. 기성세대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도 없다.

 박헌영 생가의 내부 모습. 오랫동안 버려진 까닭에 유리창은 죄다 깨져 있고 곳곳에 집기류가 널브러져 있다.
박헌영 생가의 내부 모습. 오랫동안 버려진 까닭에 유리창은 죄다 깨져 있고 곳곳에 집기류가 널브러져 있다. 서부원

백지화됐을지언정 송요찬은 후손과 지역 주민의 선양하자는 요구라도 있지만, 박헌영의 경우엔 섣불리 입 밖에 낼 수조차 없다. 하물며 정부가 나섰다가는 집단적인 이념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분단의 모순이 극복되지 않고서는 역사의 형해화는 피할 길이 없다.

정면교사든 반면교사든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송요찬과 박헌영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성찰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자랑스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고, 치욕스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다. 맹목적인 추앙이나 비난은, 말 그대로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지역 주민들은 복원하든 철거하든 흉물스러운 그들의 생가를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애물단지가 된 그곳을 정부가 매입해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공부하는 현장으로 남기면 어떨까. 거창할 것 없이, 빈터에 그들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 팻말 하나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송요찬 #제주43 #박헌영 #공산주의독립운동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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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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