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카와고 선거 벽보 유네스코 세계유산 시라카와고 마을에 나붙은 선거 벽보 앞으로 관광객이 지나고 있다.
임병식
문제는 저조한 투표율은 민의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극단적인 세력이 투표장으로 향한 결과가 보수 자민당 압승으로 나타났다. 핵심은 이들이 보편적인 정서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칫 우경화 흐름을 가속화하는 압박 기제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다카이치 총리가 국회를 해산한 건 1월 23일이다. 취임 3개월 만에 국회 해산은 역대 최단이었다. 그는 "과반을 못 얻으면 사임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결국 단독 과반(316석)에 성공했다. 일본유신회를 포함하면 352석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국정 운영에서 주도권을 쥐게 됐다.
다카이치는 '보통 국가'와 헌법 9조 개정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부터 개정할 태세다. 자위대는 사실상 군대지만 제9조로 인해 법적 위상은 애매한 상황이다. 헌법에 명기할 경우 군대 보유를 인정하고, 교전권도 헌법상 권리로 해석될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된다. 다카이치는 선거 유세에서 "자위대원들의 자긍심을 지키고 유능한 조직으로 인정하기 위해 개헌을 허락해 달라"고 호소했다. 안보와 국방 분야에서도 가속 페달을 밟을 태세다. 결국 자민당에 표를 몰아준 건 '강한 일본'을 지지한다는 의미다.
우경화 흐름은 한일 관계에 복합적인 신호를 보낸다. 단기적으로는 큰 틀에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실리 중심 협력에 어느 정도 합의를 본 상태다. 이 대통령은 과거는 직시하되 미래지향적 협력은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다. 미중 갈등과 북핵 위협 등 안보 지형이 요동치는 상항에서 '투트랙' 전략으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중국과 대립 등을 고려할 때, 한국과 협력 기조를 이어갈 것이다. 공급망 재편, 반도체 협력, 북핵 대응 등 양국은 이해가 일치하는 분야가 많다.
그렇다고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 역사 문제와 독도, 야스쿠니 같은 민감한 이슈는 언제든 국내 정치용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지지율이 흔들릴 때마다 민족주의는 가장 손쉬운 동원 수단이다. 협력이 갈등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시끄럽게 싸우는 가운데 정책 방향을 결정하지만, 일본은 조용히 합의하며 천천히 움직인다. 개헌선을 넘는 의석을 확보한 이번 총선 결과는 그런 공식마저 흔들 여지를 안고 있다. 반대 없는 개헌, 토론 없는 군비 확장, 제동 없는 권력 집중은 '조용한 선거'가 불러올 그늘이다.
일본은 역사 속에서 힘이 없을 때는 타협했지만 반대의 경우 군국주의로 내달았다. 압승이 자칫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주변국과 불화하는 분기점이 되지 않을지 우려한다. 세키가하라 내전이 에도 막부를 탄생한 분수령이었다면, 이번 총선 역시 또 다른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함성도 격돌도 없는 '조용한 선거'였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일본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경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그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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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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