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옥에서 ‘코스피 5000p(종가 기준) 돌파’를 축하하며 직원들이 축하행사를 하고 있다.
권우성
2년 전 필자는 국채를 샀다. 30년 장기 국채다. 주식보다 더 많은 비중, 계좌 자산의 약 36%를 국채에 담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안전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식은 오르내림이 심하지만 국채는 국가가 보증하는 자산이고 원금 손실 위험이 거의 없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변동성을 줄이고 싶은 개인 투자자에게 국채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내 국채 수익률은 마이너스 20%를 넘고 있다. 숫자만 보면 공격적인 주식 투자에서나 나올 법한 손실이다. 더 혼란스러운 점은 이 손실이 투기적 판단이나 무리한 레버리지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가장 안전하다'라고 믿었던 선택의 결과라는 점에서 충격은 더 컸다.
한편 주식 시장은 전혀 다른 풍경이다. 코스피 5000 시대가 되었고, 인공지능과 반도체, 2차 전지 같은 성장 산업이 증시를 이끌고 있다. 한때 '박스피'라 불리던 한국 증시는 구조적 재평가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식 투자자들은 환호하고 많은 자금이 계속해서 위험자산군인 주식으로 이동한다.
이런 경제 흐름 속에서 질문이 생긴다. 주식은 날아가는데 왜 국채는 무너지고 있는 걸까. 안전자산이라는 국채에서 어떻게 마이너스 20%라는 평가가 가능한가. '지금 내 채권은 안전한지' 증권사 직원에게 문의를 하자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국채는 최근 금리가 올라서 하락한 채권 가격만큼 마이너스로 잡혀 있는 것이고. 국채는 만기까지 국가 부도가 없으면 돌려줍니다." 즉 만기까지 가면 원금 손실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지금 표면적인 마이너스에 답하려면 국채의 수익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국채 수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이자, 이른바 표면금리 수익이다. 나 역시 6개월마다 이자 수익을 받는다. 다른 하나는 지금처럼 채권 가격 변동에서 발생하는 변동 (평가) 손익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국채를 '이자를 받는 상품'으로만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주식처럼 시장 가격이 매일 변한다.
핵심 원리는 단순하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가 내리면 채권 가격은 오른다. 예를 들어 연 2%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금리가 4%로 올라간다면 기존 국채는 매력이 떨어진다. 그 결과 시장에서 기존 국채가 할인된 가격에 거래된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바로 평가손실이다.
여기서 '금리가 올랐다'라는 말은 국채의 표면금리가 바뀐 것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요구하는 금리 수준이 높아진 것을 뜻한다. 때문에 내가 만기까지 보유하지 않은 경우, 평가손실로 인해 현시점에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장기 국채는 금리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이 민감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바로 듀레이션이다. 즉, 채권이 금리 변화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수치인데, 예를 들어 듀레이션이 10인 장기 국채는 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가격이 약 10% 하락한다. 숫자가 클수록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이 크다는 뜻이다.
내가 보유한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 20%를 기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기가 남아 있는 국채를 현 시점에서 평가하면, 금리 급등으로 가격이 크게 하락해 있기 때문이다. 필자 처럼 만기가 긴 장기 국채일수록 금리 변화에 더 민감한, 이른바 듀레이션이 길수록 가격 변동 폭도 커진다. 그렇기에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은 장기 국채 투자자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채는 원금이 보장된다'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정확히 따지면 절반은 맞다. 국채는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액면가와 이자를 돌려받는다. 즉, 국가가 부도나지 않는 한 만기 보유 시 원금 손실은 없다. 그러나 만기 전에 매도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는 시장 가격으로 팔아야 하고, 금리가 오른 상황이라면 손실이 확정된다.
문제는 이런 위험이 개인 투자자의 판단으로만 치부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채권은 안전하다'는 인식은 금융 교육과 자산 배분 전략에서 오랫동안 반복돼 왔다. 은퇴자에게, 보수적 투자자에게, 주식 비중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국채는 늘 권장되는 자산이었다. 나 역시 그 조언을 따랐을 뿐이다.
현재, 자금의 흐름은 주식으로 몰리고 있다. 채권에서 손실을 경험한 개인 투자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주식 상승을 뒤늦게 따라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는 또 다른 과열과 위험을 키울 수 있다. 채권 시장의 붕괴는 단순한 투자 손실을 넘어 공공기관 및 금융기관의 재무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본시장의 한 축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주식 5000피 시대는 분명 환호받아 마땅하지만 채권이 무너진 상태에서 주식 시장의 질주를 온전히 즐길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자본시장이 한쪽의 붕괴를 외면한 채 다른 한쪽의 상승만 바라보는 것은 위험한 낙관일 수 있다.
개인 투자자로서 필자가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국채는 안전자산이지만, 금리 급변기에는 가장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자산이라는 점이다. 동시에 이런 위험을 개인에게만 전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든다. 금융 상품에 대한 설명, 자산 배분에 대한 교육, 그리고 정책 신호는 더 정교해야 한다.
주식 5000피의 환호 뒤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국채 손실을 견디고 있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이 경험이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자본시장에 보내는 경고로 읽히길 바란다. 균형을 잃은 시장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대가를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균형이 회복되어야 경제가 보다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균형 없이는 경제도 안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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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5000피 시대, 국채 투자자가 마주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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