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부산노동권익센터
"이 돈 잡아 먹는 X아! 남의 집에 일 하러 와서 화장실 변기를 우째? 다신 우리 집 화장실은 쓰지 말 거라!"
작은 방에 있던 대상자의 아들이 놀라 안방으로 기어왔다. 혼비백산 한 나를 보면서 예전 요양사에게도 그랬으니 별일 아니라며 달랬다. 하지만 어르신의 혼이 멈추질 않았으니, 옆집 사람들이 나와 '대체 무슨 일이 난 거냐'고 묻는 통에 그야말로 집에 난리가 난 것이다.
온갖 욕지거리가 화살처럼 쏟아졌다. 예전에 근무하던 요양사들의 미운 짓도 다 꺼내어 퍼 부으시는 어르신 앞에서 나는 죄인처럼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파서 그런 것이니 내가 참아야 하는 것이다.
그날 한바탕 쏟아낸 어르신은 기력이 없으셨던지 한숨 주무시고 난 후 밥을 맛있게 드셨다. 내 아들도 못 먹인 보리굴비 하나를 뚝딱 잡수시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데 눈물이 났다. 이건... 이 굴비는... 요새 어르신이 통 입맛이 없고 기력이 없으셔서 내 돈 주고 시장에 가서 팔천 원이나 주고 산 거였다. 이런 날은 자주 왔다. 서럽기만 했던 날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어르신 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했다. 어르신이 무섭게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걸어서 관리사무소 공용 화장실을 써야만 했다. 추운 겨울 날엔 그 길을 오가며 급한 일을 본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토요일 관리사무실 문을 열지 않는 날이면 맨발에 발만 동동 굴리다가 결국 설움이 폭발해 운 적도 많았다. 어르신 댁 이웃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한 적도 있다.
이 서럽고 억울한 상황은 어르신의 치매가 심해질수록 더할 것을 알기에 그저 답답했다. 센터장님에게 상담을 해서 속상한 맘을 표시한 적도 있다. 이미 센터장님은 이 어르신에 대해 휜히 알고 계셨고 흔히 말하는 블랙리스트셨다. 요양보호사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기특하게 오래 잘 참아내며 일하고 있다고 다독이셨다. 뽀족한 방법은 찾지 못한 채로 시간을 흘렀고, 어르신이 요양병원 입원하던 시기에 나는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모르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사용하는 신용카드 상담원이 다른 상품을 소개한다는 전화였다. 옛날 같았으면 내용도 안 듣고 통화를 끊었을 나였다. 이번에는 나끝까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지금 있는 카드로도 충분하니 발급은 필요없다'고, '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 상담원은 잠시 말을 않고 의아해 했다. 마치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사람처럼.
나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 거다. 전화를 끊을 때 즈음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했더니 "감사...해요" 하신다.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전화기 너머로 방긋 하고 웃어줬다. 우리 둘은 전화를 같이 끊었다. 누구나 언제든 상담원도 될 수가 있고, 요양보호사가 될 수 있고, 그 반대 입장이 되기도 한다. 바로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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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화장실 쓰지 마!" 요양사 일하며 들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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