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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박스 간판에서 시작된 꿈, 전업이 되다

[인터뷰] 캐리커처로 마음을 나누는 진주 청년예술가 김성주 작가

등록 2026.02.11 09:35수정 2026.02.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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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예술가 김성주 작가(29)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진주 곳곳을 누비며 사람들의 얼굴을 캐리커처로 그린다. 그는 늘 먼저 사람들에게 이렇게 운을 떼며 인사를 건넨다.

"저 혹시… 캐리커처 그리는 사람인데요. 그림 하나 그려드려도 될까요?"


사람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면, 그 자리는 곧 세상에 하나 뿐인 작가의 작업실이 된다. 그는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그 사람만의 특징과 분위기를 섬세하게 포착해 그림으로 옮긴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일이 쉽지 않을 법도 하지만, 능숙한 손놀림으로 금세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한다. "짜잔"하고 그림을 내밀면 사람들 얼굴에는 금세 환한 웃음이 번진다.

이미지와 사진이 넘쳐 나는 시대에, 굳이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허락을 구하고 천천히 얼굴을 바라보며 손으로 그리는 일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난 4일 오후, 진주 칠암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림 그리며 살고 싶다'는 마음 그대로, 캐리커처를 시작하다

"길거리 캐리커처" 활동 이어가는 김성주 작가 캐리커처는 그리는 모습
▲"길거리 캐리커처" 활동 이어가는 김성주 작가 캐리커처는 그리는 모습 박보현

- 캐리커처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2024년, 창원에서 친구를 만나 피자를 먹으며 '앞으로 뭐 할까, 난 어떻게 살고 싶지' 하고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어요. 그때 친구가 '성주야, 너는 그림 잘 그리잖아. 그리고 좋아하고'라고 말했죠. 그 말에 정말 즉흥적으로 일을 저질렀어요. 근처 지하상가로 내려가 피자 박스 뒷면에 '캐리커처 그려 드려요'라고 적어 작은 간판을 만들고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거기가 특별한 관광지도, 행사장도 아닌 평범한 공간이라 더 낯설고 엉뚱해 보였을 거예요.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다 지나치기도 했고, 호기심에 다가와 '뭔데요?' 하며 그려달라는 분도 계셨죠. 그날 처음으로 엽서에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날 만난 한 분이 "이건 공짜로 받을 수 없다"며 그림값을 주셨어요. 그 돈은 지금도 제 책상 유리 밑에 넣어두고 있어요. 처음 캐리커처 그렸던 그날 그 마음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요."

-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나요?


"아버지가 직장 문제로 가족과 떨어져 계셨는데, 보내주신 엽서와 편지마다 항상 만화가 그려져 있었어요. 저도 그림으로 답장을 했고, 그 편지들이 아직도 집에 잔뜩 남아 있어요. 학교 다닐 때 친구들 얼굴을 그려주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워 계속 그리게 됐죠.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이 쉽지 않잖아요. 부모님 권유로 미술교육과에 진학했지만 임용 시험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고, 졸업 후 디자인 회사와 기간제 교사를 거치면서도 '그림 그리며 살고 싶다'는 마음은 늘 남아 있었어요."

- 진주 남강 유등축제에서도 캐리커처 작업을 하셨다고요?

"2024년 가을, 무기력하게 지내던 중 창원에서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냥 나가서 그려보자' 의자 두 개와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면 무료로 캐리커처를 그려주겠다고 제안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죠. 그날 밤 '순삭 캐리커처' 계정을 만들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 김성주 작가만의 캐리커처 특징은 무엇인가요?

"단순히 닮게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아요. 사람들과 나눈 대화와 그 순간의 감정까지 함께 담으려고 합니다. 초상화를 그리면 상대 얼굴을 보고 그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제 감정과 제 시선, 그리고 그 사람과 나눈 대화가 모두 들어가요. 그래서 결과물은 그 사람을 닮았지만 동시에 저를 닮은 그림이기도 하죠. 세상은 하나의 거울 같아요.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결국 나를 보여주는 거니까요. 사람을 대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대하려 합니다."

순삭 캐리커처 작품 길거리 캐리커쳐 버스킹 활동 김순삭 작가 ⓒ순삭 캐리커처 SNS갈무리
▲순삭 캐리커처 작품 길거리 캐리커쳐 버스킹 활동 김순삭 작가 ⓒ순삭 캐리커처 SNS갈무리 김순삭

- 사람들은 '순삭 캐리커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얼마 전 거북이휴게소에서 큰들 단원들을 그린 영상은 일주일 만에 조회수 60만 회를 넘기기도 했는데요. 처음에는 그림을 잘 그려야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그림보다 제가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더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지난해에는 수능을 마친 고3들에게 캐리커처를 선물하고 싶어서 포춘 쿠키를 들고 무작정 진주여고 앞에 가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습니다."

-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동안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주말마다 무료 캐리커처 활동을 이어갔어요. 결국 2024년 9월,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내년이면 서른이라 결혼과 출산을 생각하면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제 결정을 가장 지지해준 사람은 남자친구였어요. 최근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도 '하고 싶은 걸 해보라'며 늘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 거리 작업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거리로 나선 건 사람들과 관계를 여는 연습이었어요. 그림은 사람들의 경계심을 낮추는 힘이 있어요. 거절당할 때면 마음이 쓰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그림을 잘 그려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연스럽게 다가가 서로 교감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 거리에서 활동하다 보면 거절 당하는 경험도 많을 것 같은데요.

"많죠. 사실 쓰라려요. (웃음) 사람들이 '나중에 돈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하고 의심하기도 하고요. 요즘 워낙 사건 사고가 많으니까 처음부터 경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너무 재미있어요. 진짜로요. 사람들 얼굴 그려주고, 그 사람들이 웃는 순간이 너무 좋아서요. 지난해 유등축제 때는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혼자 나왔는데, 아무도 안 오면 어쩌지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사람들이 찾아오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어요."

- 청년 네트워크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어요. 지인이 '진주시에 이런 게 있다'고 알려줬거든요. 나는 청년이네? 그럼 안 들어갈 이유가 없지 했죠. 청년 네트워크에서는 매년 '청년의 날' 행사를 직접 기획하는데, 회의하다가 제가 '그림 그릴 수 있는데요'라고 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당시엔 브랜드도 없었고 '캐리커처 작가'라는 정체성도 분명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마음 뿐이었죠. 행사 이후 '진주에 캐리커처 그리는 사람이 있다더라'는 이야기가 퍼졌고, 한 달 뒤 유등축제에서 거리 캐리커처를 시작하게 됐어요(웃음)."

- 그렇게 먼저 연락하고 제안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나요?

"결국 일도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전화했어요.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고, 활동하고 싶습니다'라고요. 제가 좋은 의도로 말하면 상대도 좋게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어요. 대단한 용기라기보다,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냥 말로 꺼내본 거죠. 행사 주최 측은 캐리커처라는 콘텐츠가 생기니까 좋고, 저는 무대를 얻으니까 좋고요. 자연스럽게 일이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 앞으로의 계획은요?

"그림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갑니다(웃음). 5월에 논개제가 열리잖아요. 그때는 사람들을 조선 시대 한복 차림으로 캐리커처로 그려드리고 싶어요. 장소와 시기에 맞게 작업에도 조금씩 변화를 주며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얼마 전 남성당한약방이 남성당교육관으로 새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조만간 찾아가 방문객들에게 순삭 캐리커처를 선물하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김장하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꼭 한 번 그려보고 싶습니다(웃음)."

지금도 그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어쩌면 그가 담고 싶은 것은 얼굴 그 자체보다, 그 속에 깃든 이웃들의 생생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순삭'이라는 단어처럼 짧은 만남일지라도, 그가 건네는 온기는 누군가의 일상에 오래 남는 여운이 되어 오늘도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단디뉴스에도 실립니다.
#순삭캐리커쳐 #김순삭 #순삭예술가 #진주청년예술가 #김성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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