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이재명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 얼마나 억울하고 참담하셨을지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종합지원대책을 세워 피해를 온전히 배상하겠습니다."
이 말은 지난해 12월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사회적 참사'로 규정하고, 국가 주도의 배상 체계로 전환하기로 한 그날 올린 글이다.
같은 날, 국무총리 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이 확정되었고, 기존의 시혜적 구제 지원을 국가가 명백한 책임을 지는 '배상'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가습기살균제를 명백한 사회적 참사로 국가 책임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실제 대통령과 총리의 기조만큼이나 부처와 실무기관이 움직이고 있을까.
지난해 7월 고 이의영 님의 유족 이장수 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자녀의 재심사를 환경산업기술원에 요구했다. 그런데 유족 이장수 씨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박민서 변호사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인 2025년 7월 고 이의영 님의 피해자 재심사를 환경산업기술원에 청구했지만, 법정 처리 기한인 90일을 훌쩍 넘긴 2026년 1월에도 결과는 통지되지 않았다. 현재 진행 상황을 질의한 박 변호사에게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다.
환경산업기술원 상담센터는 전산상으로 '법무법인 원곡이 정당한 대리인임이 확인'되나 정보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박 변호사는 자신이 법률대리인임을 다시 한번 밝혔으나, 기술원 상담사는 '이장수 씨에게 전화해 변호사에게 문의 내용을 알려줘도 되는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해괴한 답변을 했다. 이에 박 변호사는 대리인의 위임장을 받은 법률대리인임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위임장도 다시 한번 보내겠다고 했는데도, 기술원은 '어떤 경우에도 전화 확인 없이는 안된다'며 이해할 수 없는 답변만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이에 박 변호사는 '법률대리인에게 알려줄 수 없다는 근거'를 묻자 상담사는 '공식 지침은 없지만, 변호사에게 알려줘도 되는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막가파식 태도만을 고수했다.
민감 정보라는 방패 뒤에 숨은 권한 남용
이러한 환경기술원의 답변은 정보공개법과 변호사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다. 대한민국 변호사법상 법률대리인은 당사자를 대신해 모든 법률행위를 대리할 권한을 갖는다. 이장수 씨의 경우 이미 법률대리인 위임을 마친 상태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말할 것도 없이 검찰 콜센터를 비롯한 다른 공공기관은 위임 관계 확인 시 즉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정보공개법 제3조에 따른 것으로, 법에 의하면 '공공기관이 보유, 관리하는 정보는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원칙'임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호사법과 정보공개법에 의한 위임 사무 법적 근거가 명확함에도 환경산업기술원은 '내부지침' 조차도 없는 '근거 없는' 이유로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권한 남용이자 행정 편의주의의 극치다.
"우리는 피의자가 아니다"
이장수 씨가 분통을 터뜨리는 지점은 또 있다. '국가가 배상하겠다고 해서 믿고 기다리는 피해자에게 정작 실무기관은 우리를 감시 대항이나 피의자 다루듯 한다'는 것이다.
또한 환경기술원은 국민신문고 답변을 통해 '의학적 판단 소요 기간'은 법정 처리 기한(90일)에 산입되지 않는다는 법의 맹점을 이용해 반년 넘게 방치된 '진행지연'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환경산업기술원의 태도로 인해 2025년 7월에 접수된 사건은 2026년 3월에야 위원회가 열린다는 '막연'한 통보만 받은 채 반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환경산업기술원은 대리인을 제쳐두고 이장수 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기다려달려'는 식의 회유성 안내를 하는 등 대리인 체계를 무력화하려 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기조는 어디로 갔는가
국무총리가 천명한 '국가책임 강화' 기조는 현재 환경산업기술원이라는 문턱에서 멈춰서 있다. 상급 기관인 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 사이의 소통 부재인지 아니면 실무진의 만성화된 '피해자 기피증'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정부의 거시적인 정책 방향이 말단 집행 기관의 세부지침(SOP)까지는 내려가지 않고 있으며, 기관 내부에서도 관성적인 기존 방식과 태도로 피해자들을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정부의 약속을 믿고, 언제 끝날지 모를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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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배상한다 했는데... 여전히 높은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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