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머리를 감기며 즐거워 하는 스롱 피아비 선수
박정연
전교생을 합쳐도 50명, 교사는 단 두 명뿐인 작은 시골 초등학교. 그러나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피아비는 수년째 알고 지내는 젊은 교장과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을 하나씩 품에 안았다.
수년 전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새로 지은 두 동짜리 교실 벽면에는 한국 LPBA 무대를 누비는 그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TV조차 보기 힘든 이 오지에서 피아비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였다.
이날 학교 운동장 한편에는 특별한 '야외 미용실'이 차려졌다. 이날 자원봉사를 위해 피아비와 동행한 현지 전문 미용사들이 가위를 움직이며 아이들의 머리를 정성껏 다듬었다. 오랫동안 손질하지 못해 삐죽삐죽했던 머리카락이 단정해질 때마다 아이들의 표정도 환해졌다.
머리를 깎은 아이들은 곧장 피아비 앞으로 향했다. 그녀는 깨끗한 물이 담긴 대야 앞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머리를 한 명씩 직접 감겨주었다. 이곳 아이들에게 샴푸는 평생 몇 번 써보지 못한 사치품이다.
"이곳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부분 형편이 너무 어려워요. 샴푸가 비싸서 살 엄두를 못 내죠. 그래서 주방 세제로 머리를 감고 목욕까지 해요. 저도 그랬거든요."
독한 세제 냄새 대신 향긋한 꽃향기가 운동장을 채우자, 아이들의 얼굴에도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피아비는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아이들의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정성을 다했고, 아이들은 시원한 물줄기와 부드러운 손길에 몸을 맡긴 채 환하게 웃었다.

▲ 스롱 피아비 선수의 지인이 운영하는 미용실 소속 미용사들이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
박정연
학교 곳곳에 스며든 진심
피아비의 발걸음은 운동장 옆 작은 양철 지붕 건물로 이어졌다. 그곳에는 그녀가 기증한 컴퓨터 교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지 마을 아이들이 정보의 바다를 접하고 더 큰 세상을 꿈꾸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공간이다. 교실 한쪽에는 각 가정에 전달할 쌀가마니와 생수 박스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맞은편에는 교사들을 위한 숙소도 있었다. 주거 환경이 열악해 고생하던 교사들을 위해 지난해 피아비가 사비를 들여 지은 공간이다. 교육은 교사가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속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결실이다.
운동장 다른 한편에서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퍼졌다. 마을 아이들이 평생 맛보기 힘든 프라이드치킨 파티가 열린 것이다. 20km 떨어진 읍내까지 나갈 차비가 없어 평생 마을 밖을 나가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노란 튀김옷의 치킨은 '환상의 맛' 그 자체였다.
이어진 시간, 피아비는 준비해 온 선물을 꺼냈다. 아이들의 손에는 배드민턴 라켓과 축구공이 하나씩 쥐어졌다. 공을 받은 아이들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렸고, 라켓을 쥔 아이들은 서툰 스윙을 반복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낡은 흙바닥 운동장은 순식간에 작은 체육대회장으로 변했다. 그녀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박수를 보냈다.

▲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스롱 피아비 선수
박정연
9승 기록보다 값진 희망의 씨앗
해 질 무렵, 캄보디아 하늘이 선홍빛으로 물들며 작별의 시간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떠나는 차를 향해 붉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끝까지 맨발로 따라오며 손을 흔드는 아이들. 그 작은 눈망울에는 오늘의 아쉬움과 다시 만날 그리움이 노을빛처럼 겹겹이 스며 있었다.
'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 선수는 한국 프로당구협회(PBA)가 주관하는 여자 LPBA 투어 2025-26시즌 2차 투어 '하나카드 PBA-LPBA 챔피언십'과 3차 투어 '올바른 생활카드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개인 통산 LPBA 우승 횟수를 9회로 늘리며, 여자부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저도 이 아이들처럼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시작했어요. 제가 한국에서 기회를 얻었듯, 이 아이들도 부모가 가난해도 꿈을 갖고 공부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먼지 자욱한 시골길을 되돌아 나오는 길, 휴대전화 화면에는 여전히 '서비스 없음'이 떠 있었다. 하지만 끄로바이 초등학교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그 어떤 무선 신호보다 선명한 희망의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그 울림은 카사바밭을 지나 캄보디아의 미래를 향해 조용히 번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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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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