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거마을 초입, 어촌 벽화마을을 알리는 담장의 글귀 <1904, 흐르는 섬 가덕도>
이은주
정거마을 어귀에 서서 보니 기다란 골목을 두고 집들이 마주 보며 물 흐르듯 이어져 있었다. 첫 집 담장에 '1904, 흐르는 섬 가덕도'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1904년은 가덕도 외양포에 일본군 포진지가 만들어진 해이다. 가덕도가 역사적 상처를 품고 사는 섬이라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 전하려는 듯했다. 집 담장마다 어촌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가리비 껍데기에 구멍을 뚫어 줄 잇는 작업을 하는 아낙들의 모습, 통발 손질 작업을 하는 어부의 모습을 보며 오랫동안 바다가 선물한 양식으로 삶을 이어온 이들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었다. 바람과 파도와 함께 정직한 노동으로 선하게 살아온 섬사람들, 신선한 해산물로 차린 밥상의 힘으로 살아온 뭍사람들, 바다로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연대의 감각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 모두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가리비 껍데기를 활용한 벽화 작품, 상괭이가 헤엄쳐 가는 모습, 아이들이 물가에서 물놀이하는 모습, 바다 위 어선들. 어촌마을의 삶이 생생하게 채색되어 있어 마치 거리미술관을 거니는 듯했다. 벽화를 감상하며 골목 끝에 다다르니 확 트인 바다가 반겨주었다. 가슴에 바닷바람이 확 안겨 저절로 어깨를 쫙 펴게 했다. 멀리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모래섬이 보였다. 신비로운 모래섬 진우도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하늘과 바다, 온통 푸른 빛이었다. 물아일체라는 게 이런 느낌일까. 짙은 푸른 물빛이 바람을 타고 내 몸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순간, 이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도 좋겠구나, 황홀경에 가슴이 벅찼다.

▲ 정거마을 담장의 벽화들
이은주

▲ 정거마을 담장의 벽화들
이은주
가덕도도 아직 늦지 않았다
마을의 끝 집까지 둘러본 뒤 천천히 걸어 돌아 나오며 영화 <수라>를 떠올렸다. <수라>는 새만금에 남아 있는 마지막 갯벌 '수라(비단에 놓은 수)'의 시간, 생명, 사람들을 7년 동안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황윤 감독이 카메라에 담은 수라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영화를 보는 내내 오히려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났다. 국책사업으로 밀어붙인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져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민생태조사단장 동필 씨는 새만금 간척사업 저지 운동부터 시작해 20년 넘게 갯벌 수라를 지키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본 것도 죄인가?"
수라를 바라보며 한 동필씨의 이 말이 아직도 내 가슴에 묵직하게 남아 있다. 수라의 아름다움을 본 죄, 새들의 아름다움을 본 죄, 생명의 아름다움을 본 죄로 동필씨는 수라를 떠날 수가 없었다.
지난 9월에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소속 시민들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한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계획 취소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조류 충돌로 인한 사고의 위험과 생태계 훼손이 우려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나는 긴 시간, 힘겨운 투쟁에서 이긴 이들의 눈물을 보며 희망을 보았다.

▲ 골목을 지나 정거마을회관(경로당) 앞에서 바라본 모래섬, 진우도 풍경
이은주
가덕도도 아직 늦지 않았다. 가덕도 신공항 사업도 현재 환경단체가 취소소송을 제기해 재판 중이다. 오늘 아침
한겨레 신문을 보니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가 "가덕도신공항 부지는 조류 충돌 위험도가 무안공항의 수백 배에 달한다. 높은 조류 충돌 위험은 제거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지난여름부터 가덕도 신공항 관련 뉴스를 챙겨보며 내가 본 가덕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주위 지인들에게 전하고 있다. 갈맷길이 있는 가덕도 걷기 여행도 권하고 있다. 수라 지킴이 동필 씨의 말처럼 그곳에 가서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알게 된다. 왜 가덕도 신공항 건설계획을 재검토해야 하는지, 왜 항공기 사고가 예견된다고 하는지, 그곳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깃들어 살아가고 있는지, 섬사람들의 삶터를 빼앗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이미 가덕도는 부산신항만 건설로 장항과 율리 마을이 일부 매립돼 마을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제 섬 남단 허리 부분을 뭉개버리겠다고 한다. 섬 북동쪽 눌차만을 매립해 공항 배후지 에코시티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섬 여기저기를 성한 곳 없이 훼손하겠다는 계획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가덕도, 그 섬에 가 닿아 보면 알게 된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마음이 흘러가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필자 소개] 이은주: 2000년 <다층>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긴 손가락의 자립>, <초록, 눈부신 소란>. 현재 시전문계간지 <신생> 편집위원, '무크지시움' 대표, 느티나무 글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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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본 죄, 알게 되면 지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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