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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본 죄, 알게 되면 지키고 싶어진다

[섬을 지키는 문장] 가덕도 신공항 건설계획을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

등록 2026.02.12 15:52수정 2026.02.1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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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는 지금 개발과 보존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신공항 건설 논의 속에서 섬의 역사와 생태,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삶이 지워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 연재는 시인, 소설가, 평론가, 연구자가 함께 가덕도를 다녀온 후 기획되었습니다. 매회 필진이 릴레이 형식으로 원고를 이어받아, 섬의 다양한 풍경과 장소성을 문학적 언어로 기록합니다. 이 연재가 성장 중심의 논리에 가려진 가치들을 되묻는 연대의 목소리가 되길 바랍니다.[기자말]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한 번도 부산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부산 찐토박이다. 한때는 부산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 살고 싶다는, 열망에 가까운 바람을 가진 적도 있다. 오래 살았던 곳이어서 어디를 가나 편안해서 좋았지만 늘 새로운 장소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러다 부산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한 것은 산책을 즐기면서부터다. 동네 산책로를 걷다가 가까운 산으로, 그리고 부산 갈맷길을 걸으며 부산에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으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이 궁금해졌다.

관심을 가지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모두가 함께 즐겨야 할 자연을 소수의 사람이 점유하기 위해 높은 건물을 세우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풍광이 좋은 곳마다 호시탐탐 자본의 손길이 뻗쳤고 그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힘을 가진 자들의 치밀한 욕망은, 지키려는 자들의 마음을 쉽게 부수어 버리는 것을 보았다. 개발과 성장을 앞세운 자본의 논리 앞에 아름다운 것은 손쉽게 훼손되었다.


지난여름 한국작가회의 기후생태위원회에서 신공항이 들어설 가덕도로 탐방을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산작가회의 작가들도 함께하자는 내용이었다. 부끄럽고 반가웠다. 부산의 최남단에 있는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한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불편했던 마음이 떠올랐다. 소중한 생태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바라는 마음, 이 두 마음이 미묘하게 얽혔다. 가덕도의 생명을 함께 지켜나가자는 연대의 손 내밂은 내가 어디에 서야 할지, 곰곰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했다.

우리 모두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작은 존재

 눌차도 항월마을 해안로에서 바라본 풍경
눌차도 항월마을 해안로에서 바라본 풍경 이은주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여름, 서울에서 승합차로 일곱 시간을 달려온 그들과 아미산 전망대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가덕도 지킴이 김현욱 활동가도 함께였다. 아미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하구와 가덕도. 햇살을 받으며 눈부시게 빛나는 모래톱, 그곳에 내려앉아 평화롭게 쉬고 있는 철새들, 푸른 바다에 나지막하게 솟아 있는 가덕도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부산에 살면서도 이 아름다움을 몰랐구나, 내내 마음에 푸른 물빛이 일렁였다. 우리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계획에 대해 김현욱 활동가의 설명을 들었다. 가덕도 국수봉과 남산 일대 봉우리를 발파하고 절취한 뒤 그 흙으로 바다를 매립해 활주로를 만든다고 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외면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특히 낙동강 하구는 철새 도래지여서 공항이 들어서면 항공기와 새 충돌 사고의 우려도 크다. 가덕도 앞바다를 삶터로 살아가는 토종고래 상괭이들은 비행 굉음에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혼자서 눌차도 정거마을에 다녀왔다. 가덕도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눌차도. 초행길이라 지도에서 섬을 찾아 한참을 들여다보니 바다를 향해 웃으며 헤엄쳐 나가는 상괭이의 모습처럼 보였다. 가덕도 선창마을에서 천가교를 건너니 눌차도에 닿을 수 있었다. 눌차도에는 네 개의 마을이 있다. 천가교를 건너 왼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항월과 정거마을이,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외눌, 내눌마을이 나온다.


 굴 채묘장
굴 채묘장 이은주
 가리비 더미
가리비 더미 이은주

정거마을로 가려고 항월마을 쪽으로 해안로를 따라가니 바다에 진풍경이 펼쳐졌다. 짙푸른 바다에 펼쳐진 굴 채묘장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굴을 기르기 위한 종패(씨를 받기 위해 기르는 조개) 양식장이다. 가리비 껍데기에 구멍을 내 줄로 연결한 뒤, 바다에 줄지어 세워둔 상사리(나무 구조물)에 걸어서 바닷물에 담가두면 굴 포자가 붙는다고 한다. 굴 포자를 키워서 통영, 거제 등 굴 양식장으로 보낸다. 내눌과 외눌마을 쪽의 눌차만에도 굴 채묘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해안로 곳곳에 가리비 껍데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전국의 굴 양식 종패의 40퍼센트가 여기 가덕도에서 나온다니 놀라웠다.

 정거마을이 시작되는 해안로에 서 있는 표지석
정거마을이 시작되는 해안로에 서 있는 표지석 이은주

항월마을을 지나니 벽화마을로 알려진 정거마을 표지석이 보였다. 정거마을의 옛 이름은 '닻거리'이다. 고기잡이하러 나가기 위해 파도가 잔잔해지길 기다리며 닻을 매어 기다린다는 뜻으로 '닻거리'로 부르다가 지금은 停(머물러 정), 巨(클 거), 里(마을 리) 한자를 써서 '정거리', 정거마을이라 부른다. 정거마을은 2013년 부산광역시 뉴딜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벽화문화거리를 조성했고, 환경부 지정 습지생태체험마을이 되었다.


 정거마을 초입, 어촌 벽화마을을 알리는 담장의 글귀 <1904, 흐르는 섬 가덕도>
정거마을 초입, 어촌 벽화마을을 알리는 담장의 글귀 <1904, 흐르는 섬 가덕도> 이은주

정거마을 어귀에 서서 보니 기다란 골목을 두고 집들이 마주 보며 물 흐르듯 이어져 있었다. 첫 집 담장에 '1904, 흐르는 섬 가덕도'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1904년은 가덕도 외양포에 일본군 포진지가 만들어진 해이다. 가덕도가 역사적 상처를 품고 사는 섬이라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 전하려는 듯했다. 집 담장마다 어촌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가리비 껍데기에 구멍을 뚫어 줄 잇는 작업을 하는 아낙들의 모습, 통발 손질 작업을 하는 어부의 모습을 보며 오랫동안 바다가 선물한 양식으로 삶을 이어온 이들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었다. 바람과 파도와 함께 정직한 노동으로 선하게 살아온 섬사람들, 신선한 해산물로 차린 밥상의 힘으로 살아온 뭍사람들, 바다로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연대의 감각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 모두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가리비 껍데기를 활용한 벽화 작품, 상괭이가 헤엄쳐 가는 모습, 아이들이 물가에서 물놀이하는 모습, 바다 위 어선들. 어촌마을의 삶이 생생하게 채색되어 있어 마치 거리미술관을 거니는 듯했다. 벽화를 감상하며 골목 끝에 다다르니 확 트인 바다가 반겨주었다. 가슴에 바닷바람이 확 안겨 저절로 어깨를 쫙 펴게 했다. 멀리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모래섬이 보였다. 신비로운 모래섬 진우도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하늘과 바다, 온통 푸른 빛이었다. 물아일체라는 게 이런 느낌일까. 짙은 푸른 물빛이 바람을 타고 내 몸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순간, 이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도 좋겠구나, 황홀경에 가슴이 벅찼다.

 정거마을 담장의 벽화들
정거마을 담장의 벽화들 이은주

 정거마을 담장의 벽화들
정거마을 담장의 벽화들 이은주

가덕도도 아직 늦지 않았다

마을의 끝 집까지 둘러본 뒤 천천히 걸어 돌아 나오며 영화 <수라>를 떠올렸다. <수라>는 새만금에 남아 있는 마지막 갯벌 '수라(비단에 놓은 수)'의 시간, 생명, 사람들을 7년 동안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황윤 감독이 카메라에 담은 수라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영화를 보는 내내 오히려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났다. 국책사업으로 밀어붙인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져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민생태조사단장 동필 씨는 새만금 간척사업 저지 운동부터 시작해 20년 넘게 갯벌 수라를 지키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본 것도 죄인가?"

수라를 바라보며 한 동필씨의 이 말이 아직도 내 가슴에 묵직하게 남아 있다. 수라의 아름다움을 본 죄, 새들의 아름다움을 본 죄, 생명의 아름다움을 본 죄로 동필씨는 수라를 떠날 수가 없었다.

지난 9월에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소속 시민들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한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계획 취소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조류 충돌로 인한 사고의 위험과 생태계 훼손이 우려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나는 긴 시간, 힘겨운 투쟁에서 이긴 이들의 눈물을 보며 희망을 보았다.

 골목을 지나 정거마을회관(경로당) 앞에서 바라본 모래섬, 진우도 풍경
골목을 지나 정거마을회관(경로당) 앞에서 바라본 모래섬, 진우도 풍경 이은주

가덕도도 아직 늦지 않았다. 가덕도 신공항 사업도 현재 환경단체가 취소소송을 제기해 재판 중이다. 오늘 아침 한겨레 신문을 보니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가 "가덕도신공항 부지는 조류 충돌 위험도가 무안공항의 수백 배에 달한다. 높은 조류 충돌 위험은 제거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지난여름부터 가덕도 신공항 관련 뉴스를 챙겨보며 내가 본 가덕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주위 지인들에게 전하고 있다. 갈맷길이 있는 가덕도 걷기 여행도 권하고 있다. 수라 지킴이 동필 씨의 말처럼 그곳에 가서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알게 된다. 왜 가덕도 신공항 건설계획을 재검토해야 하는지, 왜 항공기 사고가 예견된다고 하는지, 그곳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깃들어 살아가고 있는지, 섬사람들의 삶터를 빼앗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이미 가덕도는 부산신항만 건설로 장항과 율리 마을이 일부 매립돼 마을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제 섬 남단 허리 부분을 뭉개버리겠다고 한다. 섬 북동쪽 눌차만을 매립해 공항 배후지 에코시티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섬 여기저기를 성한 곳 없이 훼손하겠다는 계획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가덕도, 그 섬에 가 닿아 보면 알게 된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마음이 흘러가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필자 소개] 이은주: 2000년 <다층>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긴 손가락의 자립>, <초록, 눈부신 소란>. 현재 시전문계간지 <신생> 편집위원, '무크지시움' 대표, 느티나무 글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가덕도 #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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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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