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7학년도 이후 의사인력 양성규모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서울 사는 동료 교사와의 대화가 갑자기 떠오른 건, 지난 10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표한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을 듣고서다. 2027학년도부터 2031학년도까지 5년간 총 3,342명을 단계적으로 증원한다는 내용이다. 첫 해 490명을 시작으로, 연평균 668명이 증원될 예정이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증원된 인원을 모두 '지역 의사 전형'으로 선발한다는 점이다. 곧, 서울 소재 의대의 정원에는 변동이 없다. 정부가 학비 등을 지원하되, 졸업 후 10년 동안 서울이 아닌 해당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한다는 조건을 명시했다.
만시지탄이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었다. 합리적 토론이나 과학적 근거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밀어붙였다가 분란만 일으킨 지난 정부의 잘못을 반면교사 삼은 것이다. 의료계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사실상 의료 공백 상태인 지방의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한 밑돌은 놓은 셈이다.
"과연 의료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될지는 두고 봐야죠. 그나저나 요즘 같은 때 주식을 왜 하지 않으세요? 지방은 몰라도, 서울 사는 교사 중에 주식을 하지 않는 경우는 아예 없을 거예요."
이번 의대 정원 증원 소식에 반색할 줄 알고 연락했더니, 그는 되레 엉뚱한 말을 꺼냈다. 그는 요즘 주식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고 했다. 최근 보유한 주식이 크게 올라 하루하루가 살맛이 난단다. 스마트폰을 켜서 수시로 주가를 확인하는 게 낙이라고 했다. 직업은 다 달라도 주변 지인들과 만나면 온통 주식 관련 이야기뿐이라며 말을 이었다.
그가 처음 주식에 손댄 건 생활비라도 벌어볼까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였단다. 교사의 봉급만으로는 서울살이가 녹록지 않았는데, 요즘만 같으면 살 만하다고 했다. 주식 덕분에 '삶의 질'에 대한 푸념도, 의료 격차로 인해 서울을 떠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대화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방의 의료 환경이 개선된다고 해서 그가 서울을 떠날 일은 없을 것 같다.
섣부르지만, 지역 의사의 양성은 지방 소멸을 늦추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 과밀화한 서울에 원심력으로 작동하길 기대하긴 어려울 듯하다. 지방 사람의 서울행을 잠시 고민하게 할 수는 있어도, 서울 사람의 지방행을 이끌진 못한다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서울 사람이라는 게 '벼슬'인 세상이 됐다.
서울 사람이라는 '기득권'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
"죽어도 서울 밖으론 안 가요."
올해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재수를 선택한 먼 친척 조카의 '선언'이다. 삼수, 사수를 불사하고, 심지어 2~3년제 전문대에 진학할지언정 결코 지방대에 가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서울을 벗어나 지방으로 내려가는 건 차라리 '유배형'이라고 했다.
그에게 취업률이나 지방대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리겠다는 정부의 대책 등은 관심사가 아니다. 당장 서울에서 밀려난다는 '열패감'을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서울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목청을 높였다. 지방 사람이 '인 서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연신 강조했다.
그는 한번 지방으로 밀려나면 더는 서울로 재입성하는 게 힘들어진다는 점을 두려워했다. 지금 어디에 사는가가 자기를 규정하는 정체성이라고도 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캠퍼스를 옮긴 대학마다 입시 결과가 휘청이고, 결국 지방대 중의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현실을 예로 들었다.
서울 사는 동료 교사가 '삶의 질'이 낮다고 토로하면서도 서울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진짜 이유가 어쩌면 재수생 친척 조카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방의 낙후한 의료 환경은 핑곗거리일 뿐, 서울 사람이라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지역 의사의 양성을 목표로 한 이번 의료 개혁안이 서울 사람이라는 게 '벼슬'인 세상에 작은 균열이라도 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람과 서비스의 '블랙홀'이 된 서울은 더 이상 단순한 수도가 아니다. 이른바 '서울 공화국'이라는 '국호'를 넘어 이젠 온 국민의 뇌리에 '메시아적 이상향'으로 각인됐다.
서울에서 태어나 지방에서 청춘을 보내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을 바란다. 지방에서 살며 서울로 휴가를 떠나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울 제국주의'와 '지방 식민지'로 확연히 갈라진 세상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서울이 죽어야 지방을 넘어 대한민국이 산다. 과연 이번 의료 개혁안이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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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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