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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기업이 안전망 비용 내라"... 무리한 요구 아니다

'유연 안정성' 타협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이다

등록 2026.02.12 10:06수정 2026.02.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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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2.10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2.10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또다시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10일 국무회의에서 '노동자가 고용 유연성을 양보하는 대신, 기업은 사회 안전망 확충 비용을 부담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타협이 이뤄져야 한다'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관련 기사 : 이 대통령 "노동자는 고용유연성 양보, 기업은 안전망 확충 부담").

또다시 노동자보고 양보하란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흔히 하는 "기업이 잘 되면 낙수 효과로 노동자에게도 좋다"라는 말 대신, 이 대통령은 '안정망 강화'를 고용 유연성 논의의 전제로 못 박았다. 한국 사회에서 유연성은 흔히 해고로 해석되고, 노동자는 해고를 '죽음'으로 이해한다. 대통령은 이 현실을 직시한다. 유연성 문제의 핵심은 안전망의 사회적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하느냐'라는 것도 알고 있다. 대통령의 인식에는 긍정적 측면이 분명 있다.

사회적 타협의 핵심은 '누가 안전망의 비용을 부담하는가'

하지만 이것은 출발점일 뿐이다. 기업에 기울어진 언론들은 일제히 "대통령이 고용 유연성을 강조"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을 그저 듣기 좋은 선언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유연화는 노동자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격렬한 사회적 갈등이 불 보듯 뻔하다.

흔히 노동 유연성의 모범 사례로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을 든다. 이 모델의 성공 비결은 단순히 해고를 쉽게 해준 데 있지 않다. 유연한 노동시장, 실업 시에도 소득을 보장하는 관대한 복지, 적극적인 재취업 지원 정책이라는 세 축이 '황금 삼각형'을 이루며 균형을 잡았기 때문이다. 반면, 역사적으로 한국의 대기업들은 유연성이라는 과실만 원하고 그에 상응하는 비용은 회피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정부가 유연성을 말하면 기업 편에 서겠다는 신호로 여겨 불신부터 한다. 따라서 대통령은 노동자가 정부를 믿을 수 있도록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자보다 기업이 먼저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끌어내야 한다.

안전망의 비용을 기업이 더 내라는 것이 일방적이고 무리한 부담을 주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AI와 로봇에 의한 생산 자동화, 노동 유연화는 기업에게 큰 이익을 안긴다. 그런데 기업이 이익을 얻는 동안, 실업, 직업 전환, 가계와 지역 경제의 위축이라는 비용은 노동자와 사회에 전가된다. 이익은 기업이 독점하고 비용은 사회화하는 일은 공정하지 않다. 정부는 'AI 전환 기금'을 만들어 자동화 기술을 도입한 기업들이 이익의 일정 몫을 출연하게 하거나, AI 초과이익세 같은 방식으로 전환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가 역량을 투입해 특정 산업을 성장시키면, 그 성과물도 공평하게 가지도록 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AI와 로봇이 만드는 이익의 공유화는 시혜가 아니다. 정의 차원의 문제이다.

어떤 안전망이어야 하는가? 현재의 사회 안전망은 노동의 이동을 받쳐주는 매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부조제도는 자격 심사가 까다로운 데다 최저 소득의 일부만 잔여적으로 메워줄 뿐이다. 사회보험제도는 정규직 노동자에 맞춰져 있어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 다수를 배제한다. 이런 현실에서는 해고는 죽음까진 아니어도 절벽에서 추락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전환기의 사회 안전망은 단지 보장 수준을 높이는 정도론 안 된다. 체계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일자리 유무, 고용 형태에 상관없이 삶을 지탱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최적인 제도는 보편적 기본소득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전환기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

기본소득 같은 매트가 바닥에 깔려 있으면 노동자는 이직, 재교육, 창업 같은 도전에 용기를 낼 수 있다. 추락한 후에 자신의 상태를 증명해야 사다리를 내려주는 공공부조, 엄격하게 한시적으로만 지원하는 실업급여는 전환기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역부족이다. 게다가, 로봇이 점점 노동을 대체하는 세상에서 시민이 돈이 있어야 로봇이 만든 재화를 소비할 수 있다. 그래야 기업도 수익이 난다. 그런 점에서도 기본소득 같은 '사회적 월급'은 미래 사회에 필수다. 불가피한 제도라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낫다.


기본소득은 단지 고용 불안에 대한 안전망으로 그치지 않는다. 민간연구소 Lab2050이 제안한 것처럼, 기본소득은 '자유안정성' 시대를 여는 열쇠다. 개인의 삶과 소득의 안정을 위해 특정 직장에 고용되어야만 하는 사회는 충분히 자유롭지 않다. 진정한 자유는 어떤 상황이든 경제적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생계의 위협에서 자유로운 시민만이 유연하게 사고하고 대담하게 도전할 수 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과 자기 주도성도 이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대통령의 발언은 좋은 출발점이다. 이제 진짜 '사회적 타협'을 만들 때다. '어떻게 재원을 조달하여 전 국민의 기본적 삶을 책임질 것인지' 정부가 먼저 청사진을 제시하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실히 끌어내고 이를 근거로 노동자들과도 대화하라. 다만, 전환기의 안전망은 일자리 있는 사람만을 위한 대책이어선 안 된다. 일자리가 있든 없든, 모든 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보편적 안전망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말하는 기본사회가 그 안전망이 될 수 있다. 그 안전망의 핵심에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있어야 한다.

유연성은 사회에 따라 갈등의 화두도, 자유의 화두도 된다. 삶의 기본 안전을 제도화한 사회만이 유연성을 자유의 화두로 다룰 수 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이며, '정치 쫌 아는 10대''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군다'를 썼습니다.
#이재명 #기본소득 #고용유연성 #사회안전망 #AI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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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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