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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야만의 증언, 이 기록이 지금 우리에게 하는 말

[서평] 김성수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등록 2026.02.12 14:11수정 2026.02.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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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35년 전 나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1970년대 캄보디아의 공산 혁명 과정에서 공산군 지도자 폴 포트 정권이 벌인 무자비한 자국민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당시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이런 잔인한 범죄는 애써 우리와는 관계가 없는 일로 간주하려고 노력했다. 영화 속 학살 장면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나를 고통 속에 몰아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훗날 나는 한국전쟁 전후로 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해 한국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알게 되었다. 킬링필드의 원조가 바로 이승만 정권이었다.


내가 읽고 들어서 배운 바에 의하면 당시 한국에서 있었던 학살의 잔인성은 캄보디아의 그것을 능가하는 듯했다. 더욱이 나의 외조부가 제헌 의원 시절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밀어붙인 대표적인 의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충격은 배가 됐고, 나의 가족이 그 학살의 일익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관련 기사 : 국가보안법 밀어붙인 사람이 내 외조부였다니...).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록한 현대사의 비극

 책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표지 사진.
책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표지 사진. 신은미

재영동포 김성수 박사의 신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2025, 12월 출간)는 저자가 언론에 기고한 글들을 엮은 모음집이다.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국제협력팀장과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저자는 제주 4.3항쟁부터 오늘날 간첩조작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자신이 인터뷰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현장감 있게 서술해 간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잔재와 조국의 분단이 자리잡고 있다.

해방 후 친일 청산은커녕 오히려 일본에 부역한 민족반역자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고, 그들의 후예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다. 비단 정치 권력 뿐만 아니라 학문, 예술, 경제, 법조, 종교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우리의 역사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반공'이란 말 한마디로 정당화 된다.

1980년대 미국 유학 중에 있었던 일이다. 한 일본인 유학생과 한일 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그가 한국의 반일 감정에 대한 말을 꺼냈다. 내가 "일제의 불법 강제병합에 고통받았던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좋은 감정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하자 그는 "그런데 왜 한국인은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느냐"고 물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그의 경력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나는, "그는 국민이 선출한 게 아니라 '분단'을 이용해 반공을 기치로 내건 불법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했다"는 말로 얼버무린 기억이 있다. 솔직히 말해 당시 그 일본인 유학생은 내게 지극히 타당한 질문을 한 것이며 나는 우리 현대사의 모순을 적당히 덮어버린 셈이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하던 교회들이 오늘날 한국의 일부 주류 교회로 자리매김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교회를 주축으로 한 서북청년단의 잔인하고 야만적인 패악질도 '분단'의 산물이다.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


사실 나 자신도 그러한 분단의 희생물이다. 한국에서 있었던 강연 중 '대동강맥주가 맛있었다', '북한의 강물이 깨끗했다', '북한에 휴대폰 가입자가 수백만이다'라는 발언으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경의 조사를 받고 5년간 한국 입국금지와 함께 강제 출국을 당한 경험이 있다(관련 기사 : "'대동강 맥주 맛있다'는 말로 추방... 입국금지 풀어야").

게다가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불행했던 우리 역사의 일부로만 여겨졌던 고문과 학살의 야만이 또 다시 재연될 뻔한 사건을 우리는 최근 경험했다. 윤석열 내란이 바로 그것이다. 이 내란에 가담한 전직 정보사령관의 메모에는 무시무시한 고문과 학살 계획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는 이러한 우리 현대사의 모순과 비극을 살아있는 증인들로부터 직접 듣는 우리의 역사 교과서다. 책에서 저자는 그러한 야만이 형태만 달리할 뿐 지금도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의 기록

김성수 (지은이),
오라티오콘텐츠, 2025


#고문과학살의현대사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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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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