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공백과 학교 기반 예방 교육: 서울시 공청회 발언. 2025년 서울특별시의회 공청회에서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아동·청소년 섭식장애 지원체계 구축과 함께 학교 기반 예방 교육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치료 인프라가 사실상 부재한 상황에서, 위기 이후의 개입이 아니라 위기 이전의 조건을 다루는 교육적 접근이 왜 공공의 책임으로 논의되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는 단순한 인식 개선을 넘어, 학교·가정·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장기적 구조 설계를 요청하는 제안이었다.
서울시의회
그러나 대한민국이 직면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발병 연령이 낮아졌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아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적절히 대응할 전문적 시스템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데 있다. 한국에는 애초에 섭식장애 치료·지원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체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섭식장애는 다학제적 전문가가 협력해 장기간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 질환이다. 그러나 의료 서비스의 구성 자체가 사적 비즈니스 모델에 의해 좌우되고, 지식 생산의 불균형과 인식적 부정의가 정부 기관의 철학과 운영 구조에 깊이 자리한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러한 공백이 어쩌면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구조적 결과에 가깝다.
치료 공백 속에서, 학교라는 공간
의료 서비스의 본격적인 재구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차선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다른 지점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의 섭식장애 예방 교육은 영국과 호주에서는 총체적인 케어 시스템의 한 구성 요소로 개발·연구·적용되어 왔지만, 한국의 경우 이는 필요한 시점에 아이와 가족의 고통이 방치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최소한의 '응급 도구상자'라도 제공하려는 시도가 된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가 지난해 서울시에 아동·청소년 섭식장애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조례 제정을 제안하며 그 핵심을 학교와 이를 중심으로 한 연계 시스템에 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이 역시 대대적인 변화가 쉽게 동원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사안의 시급함에 공명하고, 자기방어 없이 케어를 제공한 이후 그 결과에 대한 책무성까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축은 비의료 영역에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강점 기반 예방 교육의 원칙
소위 '학교 기반(school-based)' 섭식장애 예방 교육은 몇 가지 핵심 사항을 전제로 해야 한다. 첫째, 그것은 '섭식장애' 자체에 대한 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달리 말해, 학교 수업으로 제공되는 예방 교육은 '진단명'에 집착하지 않는, '비병리적(non-pathological)'이고 '강점 중심적(strength-based)'인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즉, "다이어트를 하면 섭식장애에 걸릴 수 있고, 그럼 넌 죽을 수도 있어"도 아니고, "이런 생각이나 행동을 한 적이 있다면 너는 거식증이고 정신과 환자야"도 아니며, "어떤 사람들은 이런 방법으로 살을 뺀대"도 아니고, "네 몸을 사랑해야 해"도 아니다. 무엇보다, 잘 지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갑작스레 정서적 고통을 주입하거나 전염시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지난해 사회공헌 파트너스데이 사업에 참여하며 참가 단체들을 멘토링해준 한국사회가치평가(KSVA) 김기룡 대표에게 이 지점을 설명했을 때, 그는 "자살 예방 교육에서 '자살'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군요"라고 즉각 이해했다.
'강점 중심'이라는 원칙이 함의하듯, 예방 교육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데 놓여야 한다.
(1) 아이들이 본래 지닌 건강하고 고유한 힘, 각자의 장점과 특질에 — '병'이나 '진단'이 아니라 — 초점을 맞추고, 그 힘을 인정하고 격려하여,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자원이 되도록 돕는 일.
(2) 사람의 인격을 쉽게 무너뜨리는 신자유주의적 사회 구조와, 우리 삶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빅테크 플랫폼의 무책임한 알고리즘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과도하게 상처 입지 않도록, 그리고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회복될 수 있도록 돕는 분석력과 판단력을 기르는 일.
(3) 자신의 몸과 정체성, 서로 다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더욱 화려하고 혼란스러워진 식문화 속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소화하는 방식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
무엇보다 (4) 아이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절망'이라는 감정 앞에서 얼어붙지 않고 가까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은 환경을 만드는 일. 동시에 교사나 가족과 같은 그 '가까운 누군가'가 이 모든 어려움을 홀로 떠안고 개인의 역량 안에서 해결하려 애쓰는, 어딘가 아이러니한 상황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일.
즉, 섭식장애 예방 교육은 '섭식장애'를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이미 노출되어 있는 환경을 스스로 읽고 해석할 수 있게 하는 '문해력 교육'이어야 한다. 의도치 않게 아이들에게 자기 몸에 대한 과도한 자의식을 심는 교육이 아니라, 몸이 일상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규범으로 작동하는지를 다루는 교육이어야 한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또한 위태로운 아이를 발견하는 일이 수치심과 낙인의 파이프라인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교실에서 '누가 문제인가'를 가려내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장기적 변화의 이니셔티브로 설계하는 데 무게를 두어야 한다.

▲영국 'Dove Confident Me' 프로그램 연구팀의 발표 자료. 영국 UWE 브리스톨 외모연구센터(Centre for Appearance Research) 연구진은 EDAW2026에서 ‘Dove Confident Me’ 프로그램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번 발표에서는 11?14세를 대상으로 한 학교 기반 신체상 교육의 연구 배경과 실제 적용 사례를 공유하고, 미디어 문해력과 외모 규범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예방 모델의 의미를 논의한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
Dove Confident Me: 미디어·외모 규범에 대한 비판적 문해력을 기르는 학교 기반 교육
이 지점에서 영국 UWE 브리스톨(University of the West of England, Bristol) 외모연구센터(Centre for Appearance Research) 팀과, 이들이 확산해 온 'Dove Confident Me' 프로그램은 중요한 참고점이 된다. 글로벌 브랜드 '도브'와 십여 년째 협력해 온 이 학교 기반 교육 프로그램은 크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사회가 규정하는 이상적 외모는 무엇인지, 이를 무비판적으로 좇을 때 감수해야 하는 대가는 무엇인지, 소셜미디어에서 전파되는 이미지와 메시지를 어떻게 분석적으로 읽을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서로의 외모를 '비교'하는 말과 행동이 어떤 파괴적 결과를 낳는지, 이른바 '바디 토크(body talk)'라 불리는 외모 평가적 대화를 피하는 방법, 더 나아가 건강한 신체상(body image)과 존중의 문화를 지역사회로 확산하는 청소년 액티비즘까지 포함한다.
나는 이번 섭식장애 인식주간에 이 'Dove Confident Me' 팀 연구진을 발표자로 초청했다. 이들은 2월 25일 수요일 저녁 Zoom 세션에 참여할 예정이며,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교육자, 그리고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에 관심 있는 모든 시민이 신청할 수 있다.

▲호주 버터플라이 파운데이션의 CEO 짐 헝거포드 박사. 호주의 비영리 재단 버터플라이 파운데이션이 운영하는 ‘Body Bright’는 초등학교 전 학년을 대상으로 한 전교적(Whole-of-School) 신체상 교육 프로그램이다. 교실 수업에 그치지 않고 교사 연수, 학교 문화 가이드라인, 가족 교육 자료까지 포함해 학교 환경 전체를 변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개인의 심리 요인만이 아니라 제도와 문화의 조건을 함께 다루는 생태학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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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y Bright: 학교 환경 전체를 바꾸는 '전교적(Whole-of-School)' 신체상 교육 모델
내가 깊은 관심을 갖고 관계자와 논의해 온 또 하나의 섭식장애 예방 교육 프로그램은 호주의 대표적 비영리 재단 버터플라이 파운데이션(Butterfly Foundation)의 'Body Bright'다. 지난해 초 나는 재단의 CEO 짐 헝거포드(Jim Hungerford) 박사와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잠수함토끼콜렉티브가 아동·청소년 섭식장애 치료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국가 청원을 시작했을 때 그는 지지 영상을 보내주기도 했다.
'Body Bright'는 호주 최초의 초등학교 전 학년 통합 신체상 교육 프로그램으로, 'Dove Confident Me'를 비롯한 다수의 예방 교육이 개인의 심리적 요인에 초점을 두는 것과 달리 학교 환경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생태학적 접근을 취한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급진적이다.
'Body Bright'는 아이들의 역할 모델인 교사를 대상으로 한 연수 교육에서 출발한다. 교사 자신의 신체상 문제를 성찰하고, 교실이나 교무실에서 오갈 수 있는 '바디 토크'나 다이어트 관련 발언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토론을 이끈다.
이어 강조되는 것은 '전교적(Whole-of-School)' 문화 가이드라인이다. 몇 차례의 교실 수업만으로는 아이들의 삶의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 아래, 예컨대 학교에서 BMI 검사나 학생 체중 측정을 지양하도록 권고하는 등의 제도적 방안을 마련한다.
아이들의 가족 역시 프로그램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학교와 가정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가족용 교육 자료와 웨비나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부모가 일관되고 해롭지 않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질적 교육 프로그램이 '강점 기반' 프레임워크로 설계·운영된다는 점은 'Dove Confident Me'와 다르지 않다. 'Body Bright' 역시 섭식장애라는 임상적 위험 요인을 전면에 두기보다,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역량 강화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Brave(용기): 자신과 타인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
Resilient(회복탄력성): 미디어 메시지에 대한 비판적 사고 기르기
Inclusive(포용성): 다양한 외모를 존중하고 기념하기
Grateful(감사): 자신의 신체에 대해 감사하는 태도 실천하기
Happy(행복): 신체의 '모습'이 아니라 '기능'에 초점 두기
Thoughtful(배려): 친절함을 촉진하고 외모 기반 놀림 줄이기

▲홍콩 Body Banter의 설립자 겸 대표 스테파니 응. 홍콩에서 출발한 ‘Body Banter’는 청소년이 자신의 언어로 신체 이미지와 정신건강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인식 개선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워크숍과 학교 기반 활동을 통해 청소년의 호기심과 용기를 촉진하고, 또래 리더를 중심으로 대화를 확장해 나간다. 전문가가 정답을 제시하는 구조가 아니라, 청소년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토론을 이끌어가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
Body Banter: 또래 리더를 통해 확산되는 청소년 주도형 교육 모델
마지막으로, 내가 일찌감치 인터뷰 질문지를 전달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홍콩의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출신 활동가 스테파니 응(Stephanie Ng)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Body Banter'의 교육과 인식 개선·권익 옹호 활동 프로그램이 있다.
'Body Banter'는 여기서 소개한 세 개의 예방 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대상 연령대가 가장 높으며, 주로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고유한 강점은, 교육을 의뢰한 학교 커뮤니티에 이른바 'Body Banter 또래 리더(ambassador)'를 임명하고, 이들이 스스로 토론과 다양한 관련 활동을 기획·운영하도록 지원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스테파니와 Zoom으로 대화를 나눴을 때, 그는 'Body Banter' 또래 리더의 지위는 공식적으로 부여되는 역할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설계·운영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 활동을 곁에서 밀착 지원할 담당 교사가 배정되지 않으면 그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나는 그의 인터뷰 답변이 도착하는 대로 이를 글로 풀어내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 시리즈의 한 꼭지로 발행할 예정이다.

▲EDAW2026 섭식장애 예방교육 세션. 2월 25일 저녁 7시 'Dove Confident Me' 연구팀의 베스 대니얼스 교수와 커스티 가빗 박사가 화상회의 형태로 한국의 청중과 만난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
여기서 자주 제기되는 질문이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이런 교육을 학교에서 해야 하나." 이 질문은 틀리지 않다. 그래서 답 또한 정확해야 한다. 이 교육은 '문제 있는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문제 있는 아이'로 규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존재한다. 모두가 아픈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같은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것은 병리나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조건을 다루는 시민 교육의 영역에 가깝다.
바로 이 질문을 함께 다루기 위해, 곧 시작될 올해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6)에 'Dove Confident Me' 팀을 초청했다. 치료 체계가 부재한 나라에서, 학교와 가족과 지역사회, 그리고 우리 당사자 단체를 비롯해 아이들을 염려하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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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로 구성된 비영리임의단체로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s Awareness Week)'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라는 이름은 '(섭식장애) 환자는 결핍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위기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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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공백의 나라에서 '예방 교육'을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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