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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거래 앱에서 산 5만 원짜리 웨딩드레스, 그 후폭풍

웨딩드레스 알아보다 마주한 마음의 이면... 중요한 건 결혼식을 치르는 것

등록 2026.02.24 15:17수정 2026.02.2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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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날 입으려고 중고거래 앱에서 5만 원짜리 웨딩드레스를 구입했다. 하루 몇 시간만 입는 옷을 위해 큰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예비 신랑도 동의해주었다.

복고풍으로 봉긋하게 동그란 어깨 소매와 부드러운 감촉의 하얀 드레스가 택배 봉투에 담겨 도착했다. 발랄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전 주인이 치마 끝단을 잘라 바닥에 끌리진 않았지만, 어릴 때 입던 공주 원피스처럼 치맛단은 풍성했다.


결혼식을 상징하는 옷으론 충분해 보였다. 야심차게 입어보고 친정어머니께 보여드렸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다. 옷 대여비를 지원해 줄 테니 '제대로 된 드레스'를 골라야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시댁은 예비 신랑이 설득한다고 했는데 우리 엄마는 내가 설득할 수 없었다. 하긴, 양가 부모님 마음의 평화를 위해 결혼식을 치르는데(우리 커플은 식 없이 함께 산 지 5년 째가 되었다) 내 주장을 고집해서 시작도 전에 깽판을 칠 순 없었다.

제대로 된 드레스 고르기

결혼식의 한 부분, 웨딩 드레스에 대한 고찰 결혼식의 한 부분, 웨딩 드레스에 대한 고찰(Ai제작)
▲결혼식의 한 부분, 웨딩 드레스에 대한 고찰 결혼식의 한 부분, 웨딩 드레스에 대한 고찰(Ai제작) 곽승희

어머니 의사를 존중하여 다음 액션을 취했다. 결혼 정보업체가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 글을 탐독했다. 누구나 한 눈에 봐도 '웨딩드레스구나' 싶은 제대로 된 옷은 대체 어떤 디자인 혹은 재질인지를 찾는 게 핵심이었다.

이밖에 웨딩 플래너 연계 없이도 옷을 입어볼 수 있는 드레스 대여 업체를 찾았다(우리는 플래너 고용 없이 식을 준비했으며, 이 당시에는 웨딩홀 예약만 끝난 상태였다). 드레스의 예산도 15만 원으로 늘렸다. 대여 업체의 홈페이지를 보니 셀프 웨딩드레스의 경우 초가성비 10만~15만 원으로 대여가 가능해보였다.


그러던 중 온라인 카페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바로 웨딩홀의 조명도에 따라 어울리는 웨딩드레스가 다르다는 것. 신부들은 플래너가 소개한 드레스 업체를 방문하여 3~4벌의 다양한 옷을 입어본다.

이중 본식에 입을 1벌을 골라야 하는데, 하나 같이 다 아름다운지라 고민이 된다. 그럼 카페에 글을 올려 조언을 부탁한다. 그런데 선택의 기준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바로 웨딩홀의 조명에 관한 것이었다.


신부들이 입어본 드레스의 재질은 크게 실크와 비즈로 나뉜다. 이 구분에 따라 웨딩홀 조명이 자연광처럼 밝은 곳은 실크를, 어두운 홀에는 비즈가 잘 어울린다는 조언이 공식처럼 관찰되고 있었다. 아하!

이제 다음 단계의 할 일은 이 공식에 따라 가성비 드레스 대여 업체의 사이트들을 뒤지는 것. 그런데 보면 볼수록 다시 사막을 헤매는 것 같았다. 15만 원 대여가로 비즈가 달린 드레스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 5만 원짜리 웨딩드레스를 구매했던 중고거래 앱도 뒤지기 시작했다. 나오는 것은 없었다. 고민이 길어지던 때, 한 달여 전쯤 메시지를 보냈던 사용자에게 답이 왔다. 웨딩드레스 대여업을 정리하느라 드레스가 많다는 글을 올린 사람이었다.

개인 사정으로 메시지 확인이 늦었다며 혹시 아직 드레스 구매를 안 했는지 물었다. 대화를 재개하여 비즈 디자인이 더 있는지 문의했는데, 이럴 수가! 비즈 장식의 다양한 드레스 대여섯 벌 사진을 전달받았다. 가격도 5만~20만 원으로 다양했다. 운명이다!

논리적인 예비 신랑의 말

일단 거래를 약속하고 만남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어떤 드레스를 고를지는 직접 보고 정하기로 했다. 잠시 후 예비 신랑에게도 이 좋은 소식을 전했다.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운이 좋게도 괜찮은 드레스를 찾았다고.

그런데 이런, 그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이미 한 번 중고거래에 실패했으니, 비싸더라도 피팅이 가능한 업체를 선택하자고 주장했다.

답답했다. 비즈 드레스 대여가는 예산 15만 원을 훌쩍 넘는다. 그렇다고 비즈를 포기할 순 없다, 왜냐면 우리가 선택한 웨딩홀은 조명도가 낮다고 하니까! 내가 고군분투(?)하며 카페에서 얻은 이 정보들의 조합을, 그 가치를 모르다니.

그런데 그의 다음 한 마디에 답답함이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었다. 그가 말했다. 아무리 웨딩홀이 어둡다고 해도 신부가 안 보일 만큼 어두우면 그게 말이 되겠냐고, 신부가 서 있는 곳의 조명을 조정해서라도 보일 텐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어라?...

그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았다. 극장도 아니고, 아무리 어둡다고 해서 사람이 안 보일 정도가 되면 그게 실내 공간이겠는가. 왜 난 이런 상식적인 생각을 못하게 된 거지?

나는 다음 두 가지 이분법적 생각에 꽂혔던 것 같다.

몇 시간 짧게 입고 말 옷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vs .
웨딩드레스는 결혼식을 상징하는 핵심 의상이다. 제대로 된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뒷말이 없다.

처음에는 전자에 꽂혀서 5만 원짜리 중고 드레스를 구입했다. 하지만 가족들 반응에서 이 선택은 실패로 결론 났다. 그 다음에는 후자에 꽂혔다. 그런데 예식을 상징하는 의상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이야기를 따르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 대다수의 이야기는, 플래너를 고용한 신부들이 가입한 온라인 카페의 게시글에서 찾아낸 것이다. 플래너가 누구인가. 결혼식의 전문가이다. 그렇다면 내가 고르는 것보다 이 정보를 활용하는 게 실패 가능성을 낮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실패 없는 결혼식을 치르기' 위한 정답 혹은 공식 '어두운 홀에선 꼭 비즈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정답인가? 아니 이런 일에 정답이 있는가?

근본적으로 이 정보들은 웨딩플래너라는 직업인들이 결혼식이라는 특수한 상품(재구매 건수가 적기에 이용자의 합리적인 평가도 적은)을 파는 시장에서 형성된 개념들이다. 물론 이런 정보들에는 미적 근거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 시장의 논리 혹은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급자의 의도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정보 혹은 개념들이 지금의 내 상황, 플래너 없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커플에게도 정답이 될 수 있을까?

모두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혼식을 치르는 그 자체다. (Ai제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혼식을 치르는 그 자체다. (Ai제작) 곽승희

정보는 무수히 많지만 정답은 없다. 하지만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욕심이 되면 정답을 찾고 싶어진다. 성공 확률을 높이고 싶어진다. 그래서 정답을 찾거나 정답의 근사치가 되어 줄 전문가의 의견을 맹신한다. 내 판단과 상식의 영역이 줄어든다. 상식적으로 질문하는 대신 산업계가 만든 허상의 공식을 믿게 된다. 그래서 예비 신랑의 상식적인 질문이 나에게선 나올 수 없었으리라.

비즈드레스의 허상을 깨달았지만 중고 거래 약속을 갑자기 깰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날 거래 장소로 찾아갔다. 그런데 바람을 맞았다. 처음 계좌이체를 유도했던 낌새가 이상했는데 사기였던 걸까. 어찌됐든 다행이다. 자칫하면 안 입는 옷만 늘릴 뻔했다.

이 일을 드레스 선택의 에피소드로만 남겨두기엔 찝찝했다. 왜냐면 이런 태도가 이번 한 번만이 아니었을 것 같아서. 인생의 많은 일들에 대해 정답을 찾고 성공을 기대하며 처리해온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실패도 손해도 없는 정답을 찾는 욕심이 있던 게 아닐까.

기대한 만큼 만족스럽지 않으면 정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언제나 만족스러울 수 없는 게 인생인데, 그걸 정답을 못 찾아서 혹은 성공 방정식을 못 찾아서 그런 것이라고 오해해왔다. 그러니 자책과 실망은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다. 다음엔 더 완벽하게 준비하겠노라는 다짐은 항상 미래로 도망가게 한다. 내가 지금 있는 이 현실을 피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가성비 넘치는 스몰 웨딩을 준비하고, 가족들에게 인정도 받고, 예식 당일도 성공적으로 보내려는, 이런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웨딩홀 조명 아래에서 드레스가 어울리지 않을 수도, 내가 빛나지 않을 수도, 헤어 메이크업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괜찮다.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순간을 맞이하면서 평소처럼 자연스럽길, 모든 게 다 잘 어울리길 바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혼식을 치르는 그 자체다. 그 행위에만 집중하되 일이 끝난 후 평가에 대해선 마음을 내지 않기로 했다.

가성비 웨딩드레스 대여 업체를 방문하기로 예약을 잡았다. 예산도 35만-45만 원으로 늘렸다. 어머니와 친구 한 명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이번엔 정답을 갖고 가지 않기로 했다. 정답이 없으니 그 이후에 얻길 기대하는 마음도 갖지 않을 수 있다.

허상의 공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대신 내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 행위하는 그 자체로 마음을 끝내고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 어쩌면 가장 효율적이며 상식적인,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마음일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셀프웨딩 #스몰웨딩 #신랑신부 #결혼스토리 #웨딩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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