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악마의 편집 후 한 말, "제 직업입니다"

세번째 목소리 윤석열 공안탄압 피해자 신동훈, 윤석열 내란 1심 선고 앞두고 열려

등록 2026.02.19 10:44수정 2026.02.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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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 세번째 이야기 <윤석열 공안탄압 피해자 신동훈 제주세월호기억관 운영위원장>이 국회에서 진행되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 세번째 이야기 <윤석열 공안탄압 피해자 신동훈 제주세월호기억관 운영위원장>이 국회에서 진행되었다 김태중

2023년 1월 '제주 세월호 간첩'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헤드라인을 도배했다. 평화롭던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제주 평화쉼터와 제주 세월호 기억관에 국정원 직원들이 들이닥쳤고, 압수수색 대상이자 두 기관의 대표인 신동훈씨는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낙인이 찍혔다. 2017년 1월 평화로운 숲해설 일상이 사전모의로, 같은 해 9월 여행 겸 사업차 간 해외여행이 회합과 지령수수로 조작되었다. 극우 유튜버들이 찾아오고 세월호 입간판이 부서지기도 했다. 윤석열의 12.3 계엄에 A급 수거명단에 올라 하루하루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레드콤플렉스가 여전히 남아 있는 제주, 2년 9개월 동안 26번의 재판을 받으면서도 진실을 위해 버티고 2025년 9월 끝내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기쁘지 않았다. 가족들은 마음의 병을 얻었고 공범으로 몰린 사람들은 유죄를 받았기에. 그래서 공안당국에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투쟁을 시작한 신동훈 제주 평화쉼터 대표의 이야기.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손솔 진보당 의원,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사)양심수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민족통일애국청년회(아래 민애청)가 주관하는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 세 번째 목소리가 지난 9일 월요일 오후 2시 국회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윤석열 정권 공안 탄압 피해자 신동훈 씨는 이날, 30여 명의 참가자 앞에서 자신의 사건은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검찰이 공모해 만든 '악마의 편집'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도는 세월호 아이들이 향했던 곳이잖아요"

신동훈 대표의 직함은 시민활동가들의 쉼터인 제주 평화쉼터의 대표이자 세월호 기억관 운영위원장이다. 그러나 신동훈씨가 사회 활동을 시작한 건 훨씬 전이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30여 년 된 것 같아요. 민주노총에서도 활동을 했지만 저는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기륭전자와 같은 장기 투쟁 사업장들을 보며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장투 지원단 뚝딱이'를 만들어 어렵게 운동하는 분들한테 지원을 하기도 했고. 또 장기 투쟁을 하면 쉼이 필요하잖아요. 몇몇이 모여 아파트를 팔고 전세금을 빼서 제주도에 땅을 사고 평화 쉼터라는 활동가 쉼터를 운영하게 되었죠."

쉼터를 준비할 무렵인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신동훈씨의 인생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제주도는 세월호 아이들이 향했던 곳이잖아요." 신동훈씨는 장기 투쟁 지원단을 운영하면서 트라우마를 겪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직간접적으로 알게 되었고, 세월호 가족협의회와 협약을 맺고 쉼터 옆에 세월호 기억관도 함께 운영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이주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이주노동희망센터와 함께 해외에 학교를 짓는 일에도 관여하기도 하며 해외에 자주 나가기도 했다. 이런 선한 마음이 오히려 국정원의 눈에 띄게 됐는지도 모른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 세번째 이야기 <윤석열 공안탄압 피해자 신동훈 제주세월호기억관 운영위원장>이 국회에서 진행되었다. 손솔, 한창민 국회의원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 세번째 이야기 <윤석열 공안탄압 피해자 신동훈 제주세월호기억관 운영위원장>이 국회에서 진행되었다. 손솔, 한창민 국회의원 김태중

신동훈씨가 관련된 소위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은 2017년 9월에 신동훈씨가 캄보디아에 방문해 북한 공작원을 만났다는 혐의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국정원이 신동훈씨를 감시했던 것은 2017년 1월 제주에서부터였다. 물론 확인된 것이 그때부터였을 뿐 그 전부터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재판에 나가 보니 2017년 1월 달 영상이 있어요. 그때는 평화 쉼터 공사가 시작될 무렵이라 정신없이 바빴죠. 그 와중에 이주노동희망센터 회원분들이 제주도로 워크숍을 오게 되어 제가 또 숲 해설도 하거든요. 오소록한 곶자왈 숲을 해설해 주었어요. 그리고 서울 사람들은 지방에서 서울 온다고 마중 안 나오잖아요? 제주 사람들은 육지에서 사람이 오면 공항으로 마중을 가는 문화가 있어요. 그런 제 평범한 일상이 감시당하고 사전 모의를 위한 '부부 회합'으로 국정원에 의해 조작되었던 거죠."


국정원은 이 만남을 캄보디아 방문을 위한 사전 모의 '부부 회합'이라고 주장했으나 근거는 없었다. 신동훈씨의 캄보디아 방문은 그해 여름에야 정해졌으며 신동훈씨와 함께 모임에 참여한 여성은 신동훈씨 아내도 아니었다. 이 터무니없는 주장은 판사에 의해 탄핵되었지만, 신동훈씨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도 감시와 조작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시기는 박근혜 국정농단에 의해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광장의 시민들은 사회 대개혁을 바라던 때였는데, 국정원은 공안 탄압을 위한 감시와 조작을 일삼고 있었다는 게 참가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정적 증거라던 '눈빛 교환', 악마의 편집에 판사조차도 웃더군요"

신동훈씨는 해외여행을 100번 넘게 간 여행광이다. 동남아시아는 휴가 시즌이 지난 9월이 저렴하고 유럽은 크리스마스 시즌 직전인 11월이 가장 저렴하다는 것도 줄줄 이야기할 정도. 그가 여행 겸 장투 지원단 사업차 캄보디아에 9월에 방문한 것도 그때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제가 야밤에 도착했다는 것도 의심하더라고요? 캄보디아 여행 상품은 대부분 저녁에 현지 도착입니다. 또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로밍 요금이 비쌌어요. 그래서 현지 폰을 개통했는데 이런 것도 다 의심의 대상이 되는 거죠. 제 여행 루틴이 호텔에서 현지 가이드 지도를 챙겨 택시 타고 여행지로 나가는 건데 국정원은 그 지도를 접선을 위한 비표라며 누구에게 받았냐고 추궁하더군요. 국정원 촬영 카메라 화질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현지 가이드북인 걸 알 수 있었어요. 간첩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사람을 보고 하나의 문제만 떼어내어 바라보면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해서요."

신동훈씨는 장투 지원단 사업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이 날도 여행 겸 사업에 도움이 될 사람이 있다고 해 왓보툼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만남이 성사되지는 못하고 지나치게 되었다. 소개받을 사람의 얼굴을 몰랐기에 지나는 사람마다 눈빛을 보내는 자연스러운 상황을 검찰은 '접선 신호를 위한 눈빛 교환' 시도라고 주장했다. 후에 재판장이 '누가 접선을 그렇게 어수룩하게 하냐'며 검찰 주장을 일축하기도 했다.

그러다 호텔에서 만남이 성사됐고 몇 시간 동안 장투 지원단 관련 사업 논의를 하다 성과 없이 만남이 종료된 것이 이 사건의 전부이다. 건너편 방을 미리 잡고 24시간 감시하고 호텔 복도 등에 감시카메라를 다 설치해 놓은 국정원이 도청 장치만 설치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국정원 측은 실제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만났다'는 사실 그리고 사전 모의를 위해 '눈빛 교환'을 했다는 비본질적인 이야기로 신동훈 씨를 간첩으로 몰아갔다.

"여러분은 6년 전 있었던 일들을 세세하게 다 기억하나요? 제가 제일 어려웠던 게 기억을 떠올리는 거였습니다. 국정원과 검사는 질문을 많이 던져 제게서 조금이라도 사실관계가 틀린 점을 집요하게 찾으려 시도했습니다. 그들의 수사 기법 같았어요. 또 묻더군요. 만났던 사람들이 북한 사람이었냐고. 솔직한 제 심정은 당시에 '이상한 점을 전혀 못 느꼈다'는 거였고 그대로 답했습니다. 오히려 국정원 영상에서 '북한 공작원'이 한국말을 쓰는 음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신동훈씨가 공항에 들어선 순간부터 캄보디아를 떠날 때까지 국정원은 모든 장면을 촬영했다. 자신이 캄보디아에 가는 걸 어떻게 알았냐는 신동훈 질문에 국정원은 북한 공작원이 캄보디아에 간다고 해서 준비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럼 북한 공작원이 캄보디아에 갈 것은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에는 기밀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북한 공작원'을 특정한 근거는 국정원 산하 단체 연구원의 셀프 증언이었다. 또 다른 탈북자는 20년 전 초소 근무 당시 '북한 공작원'이 지나가는 걸 봤다는 매우 신빙성 없는 증언이었다. 이들은 간첩 사건 때마다 불려 다니는 국정원의 '간첩 제조기'였다. 그러나 재판정에서는 이들의 증언이 받아들여지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증언대회 목소리들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김태중 민애청 사무국장
증언대회 목소리들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김태중 민애청 사무국장 김태중

"국정원은 압수수색을 통해 제 기록 33만 건을 다 뒤져 1600건으로 선별하더군요. 그중에는 희생된 단원고 학생 250명의 명단도 있었어요. 공범으로 지목된 사람 중 김씨가 제 페이스북 친구에도 있다며 공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죠. 그런데 그 사람 동명이인이었어요. 이런 식으로 4~5년간 기간에 제 모든 SNS 기록을 뒤지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도 단 한 개의 증거물도 나오지 않았어요. 백번 양보해서 그때 멈췄어야죠."

증거가 없자 국정원은 사소한 트집을 잡기 위한 질문을 쏟아냈고 신동훈씨는 이에 묵비권으로 맞섰다. 그러다 '만난 사람이 북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신동훈 씨의) '동공이 좌우로 흔들리고'라는 매우 주관적인 의견을 적어 놓은 것을 발견했다. 1시간여 간의 실랑이 끝에 국정원 측은 의견을 지웠으나 신동훈씨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그 의견은 다시 적시돼 있었다.

"제가 김명중 수사관에게 물었어요. 정말 제가 간첩이라고 생각하냐고요. 제 모든 질문에 친절히 답변하던 국정원 직원은 그 질문에만은 대답하지 않더군요. 그러더니 마지막 수사를 마치고 저를 따로 불러 말했습니다. '이건 제 직업입니다.' 그 답을 듣자마자 게워냈습니다."

"압수수색과 피의사실 공표에 가족들은 힘들어했지만 저는 더 묻지도 못했습니다"

"제 전자기기 포렌식을 한 후 국정원이 묻더라고요. 파일명 '도깨비'라는 게 10개 정도 있고 파일을 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만 뭔지 대답해 달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안 나는 겁니다. 밤새 고민하니 제 둘째 아들이 어둠의 경로로 드라마를 다운받아 준 거였어요. 아들이 그것 때문에 제가 구속이 된 줄 알고 제게 '아빠 미안해. 나 때문에 아빠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더군요. 군대 신체검사에서 우울증이 판정돼 재검사를 받기도 했어요. 제 딸은 고등학교 때 대통령 모의 선거를 주도해 청와대도 방문할 정도로 당찬 아이인데, 주변 시선 때문인지 회사도 그만두게 되고, 차마 저는 더 묻지도 못했습니다."

신동훈 씨가 1심 무죄를 받은건 2024년 11월. 그로부터 한 달 뒤 윤석열은 12.3 내란을 벌였다. 그리고 A급 수거명단에 있던 '간첩 재판 받는 자'였던 신 대표는 2차 계엄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지 않을까 십수일을 악몽에 시달렸다. 윤석열이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최후 진술에서 간첩만 25번을 외치며 자신의 사건으로 내란을 정당화하려고 했을때는 치를 떨었다.

신동훈 씨는 그러나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한다. 자신과 달리 유죄를 받은 2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와 달리 유죄를 받은 2명은 재판 과정에서도 묵비권을 행사했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의 사상의 자유입니다. 아마 국정원이 쳐놓은 조작의 덫을 거부하는 거였을 겁니다. 재판 과정을 겪은 저로서는 이해가 됩니다. 저는 운이 좋아 무죄를 받은 거지 국정원의 덫에 걸리면 평범한 누구나 국가보안법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걸 2년 9개월 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불법화하는 데에 문제의식이 필요합니다. 통일을 하고자 하면 북측과 협의해야죠. 만남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확인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 세번째 이야기 <윤석열 공안탄압 피해자 신동훈 제주세월호기억관 운영위원장>이 국회에서 진행되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 세번째 이야기 <윤석열 공안탄압 피해자 신동훈 제주세월호기억관 운영위원장>이 국회에서 진행되었다 김태중

"국정원과 경찰, 검찰에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죠"

"저에 대한 사과 그리고 극우 유튜버들에게 시달린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정원과 제주 경찰은 사과는 했으나 책임자 처벌이나 재발 방지책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국가보안법상 기소만 돼도 받았던 포상금을 토해내야죠. 그런데 토해낼 법적 장치도 없대요. 그들은 간첩 장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검찰은 현재 묵묵부답인데 어떻게든 사과를 받을 겁니다. 그래야 반복되지 않잖아요."

이 날 증언대회에 함께한 한 청년은 성폭력 피해자와 국가보안법 피해자가 비슷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사실 유무에 상관없이 낙인이 찍히고 끊임없이 가십거리에 오르내리며 사회에서 고립된다고. 주변에서조차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했어, 안 했어?"라는 질문을 들어야 하듯 국보법 피해자도 남북의 만남을 원천 봉쇄하는 국가보안법에 문제의식을 두는 게 아니라 "그래서 북한 공작원을 만났어, 안 만났어?"라는 비본질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들어야 하는 게 비슷하다는 것. 피해자에게는 내란 세력의 무기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뜨거운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 세번째 이야기 <윤석열 공안탄압 피해자 신동훈 제주세월호기억관 운영위원장>이 국회에서 진행되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 세번째 이야기 <윤석열 공안탄압 피해자 신동훈 제주세월호기억관 운영위원장>이 국회에서 진행되었다 김태중
#국가보안법 #윤석열 #신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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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바라는 청년입니다. 행동하는 청년회, 민족통일애국청년회 사무국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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