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설날이 행복한 것은 아내 덕이다

부모 모시는 입장을 배려한 설날 덕담들이 감사하다

등록 2026.02.15 13:31수정 2026.02.15 13:3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느리가 골라 사준 운동화를 아버지가 신고 있다.
며느리가 골라 사준 운동화를 아버지가 신고 있다. 이혁진

설날 연휴를 맞았다. 해가 갈수록 명절 분위기는 옛날 같지 않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설날 덕담만큼은 풍성하다. 설날이 '이중과세'라는 논란이 있지만 이날이야말로 서로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하기 좋은 시간이다.

여기서 필자는 다른 사람보다 한 번 더 인사를 받는다. 고령의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집 사정을 아는 지인들은 아버지 안부도 챙겨 묻는다. 설날 덕담을 아버지 덕분에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를 기억하고 건강을 기원해 주는 지인들의 따뜻한 성의가 감사하다.


얼마 전 필자와 아버지를 아는 한 지인이 설날을 앞두고 오랜만에 전화했다. 일찍이 아버지와 그분의 관계를 알기에 설날 인사가 자식으로서도 참으로 반가웠다. 그런데 통화가 끝나갈 무렵 그는 "아버님은 아직도..."라고 묻는데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질문에는 고령인 아버지의 생존 유무도 모르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차라리 아버지 안부를 묻지 않았으면 좋았지 싶었다. 이에 나는 "덕분에 잘 있습니다"라고 전화를 끊었지만 기분은 찜찜했다.

잠시 후 그 지인은 겸연쩍었던지 다시 전화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으로 착각했다며 자신의 실수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맞다. 우리 세대의 부모들은 대부분 작고하셨다. 이에 비하면 아버지는 장수하는 편이다. 오랜만에 전화를 한 분의 실수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 세대는 고령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자식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주변에서 아내와 나를 더 주목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설날 덕담을 많이 받는 것은 아내의 공이 크다. 우리 집이 순전히 화평한 것도 아내 덕이다.

그런데도 설날 덕담과 칭찬을 엉뚱한 내가 받고 있다. 말이 쉽지 연로한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 우리 집은 아내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설날이 행복한 것도 아내 덕이다.


이태 전 멀쩡한데도 백세 장모를 자식들이 서로 모시기 싫어 요양시설에 보내 안타깝다고 저간의 사정을 전한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홀로 된 아버지의 외로움을 덜어드린다는 이유로 함께 살다 보니 어느새 오랜 세월이 흘렀다.

여기서 아버지를 모시고 봉양하는 아내의 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보처럼 인생을 살았다'고 푸념하는 아내를 위로할 사람은 남편 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아내는 아버지를 둔 남편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명절마다 접하는 덕담 속에 아내가 소외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이들 다 키우고 결혼시키고 남편과 둘이 오붓한 시간을 갖고 싶은데 고령의 시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각과 행동이 전혀 다르다. 아버지가 장수하는 것은 아내의 연민과 희생 덕분이다.

시아버지를 평생 모시면서 아내의 삶의 궤적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의 운명적 삶을 누가 위로해 줄 것인가. 아내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다. 은퇴 후 빈둥거리는 남편도 밉상인데 연로한 시아버지까지 눈치를 봐야 하니 아내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 집은 아내가 원하면 무조건 그 뜻에 따르고 있다. 아버지는 역시 현명하시다. 엊그제 운동화를 사는데도 며느리에게 먼저 의향을 묻는다. 아버지는 내가 사드린 운동화보다 아내가 고르고 산 운동화를 신고 싶은 것이다. 그것으로 아버지는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 또한 아버지 앞에서는 아내 덕담을, 아내 앞에서는 아버지의 배려를 강조하기 바쁘다. 이게 우리 집이 행복하게 사는 법이다. 아내 칭찬을 '팔불출'이라 해도 좋다. 아버지도 며느리 자랑에 인색하지 않다. 특히 아내의 고민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이웃을 볼 때마다 고맙다.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도 설날 덕담으로 "우리 며느리, 잘하고 있다"며 격려하고 있었다. 참으로 자애로운 어머니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설날 #이중과세 #덕담 #운동화 #팔불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국 지천에 피는 벚나무, 이런 숨은 사연 있습니다 한국 지천에 피는 벚나무, 이런 숨은 사연 있습니다
  2. 2 "66세에 갈 곳 있어 행복,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 "66세에 갈 곳 있어 행복,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
  3. 3 10달러 지폐 모델이 누구길래... 2026년 미국을 강타하다 10달러 지폐 모델이 누구길래... 2026년 미국을 강타하다
  4. 4 헌재 "대법 확정 판결도 1심서 문제 발견되면 처음부터 심리" 헌재 "대법 확정 판결도 1심서 문제 발견되면 처음부터 심리"
  5. 5 조용하던 익산 시골 마을에 주차요원까지... 무슨 일이람? 조용하던 익산 시골 마을에 주차요원까지... 무슨 일이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