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2.16 19:12수정 2026.02.1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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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목욕탕 입간판
정무훈
날씨도 흐리고 온몸이 찌뿌듯하다. 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운 날에는 어디 가기도 귀찮고 자꾸 침대에서 뒹굴고 싶어진다. 이럴 때는 몸을 움직일 명분이 필요하다. 후회하지 않을 주말을 보내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 그래! 지금이 바로 목욕이 필요한 시간이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 욕조도 목욕탕도 없었다. 겨울이면 뜨거운 물도 데워서 가족들이 씻던 시절이라 집에서 목욕은 흔치 않았다. 그래서 일요일이 되면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네 목욕탕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뿌연 수증기 속에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목욕하고 온탕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릴 때는 뜨거운 온탕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몸을 불려야 때가 잘 밀리기 때문에 억지로 몸을 담그고 있어야 했다.

▲목욕탕 목욕탕 입구
정무훈
온탕에서 어느 정도 몸을 불리면 때를 밀어야 한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 몸의 때를 밀어주고 나는 아버지의 넓은 등을 밀어드렸다. 그렇게 한바탕 목욕이 끝나면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목욕탕을 나서고 동네 슈퍼에 들러 단지 바나나 우유를 마셨다. 달콤한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이태리타월의 따가움을 잊고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에게 목욕탕은 온전한 휴식의 시간이다. 휴대폰과 TV의 방해를 받지 않고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목욕탕에 가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온탕에 들어가면 몸의 긴장감이 스르르 풀린다. 목욕탕에서 잘 해야 하는 일은 없다. 그저 마음도 몸도 느슨하게 쉬면서 휴식을 하면 된다.
목욕탕의 시간은 일상과 다르다. 사람들의 동작도 평소보다 느리고 여유롭다. 온탕에서 충분히 긴장을 풀고 냉탕에 몸을 담그면 정신이 확 든다. 차가운 물의 청량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가며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일은 복잡한 머릿속을 말끔하게 해 준다.
다음은 건식 사우나에 들어갈 시간이다. 모래시계를 돌려놓고 편백에 걸터앉아 뜨거운 열기를 느낀다. 다른 생각이 들어온 틈도 없이 온몸이 뜨겁게 반응한다. 마치 새로운 열정이 몸에서 샘솟는 것처럼 온몸의 땀구멍이 열린다.
최대한 오래 버티다가 건식 사우나 문을 열고 나오며 숨을 크게 쉰다. 다시 냉탕에 들어가 천장에 달린 강한 수압의 물을 틀면 머리 위로 떨어지면 강렬한 물줄기에 폭포 밑에서 수양하는 사람처럼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아!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한 곳이 목욕탕이다. 쏟아지는 정보와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과 다르게 목욕탕에서는 초침이 한 칸씩 천천히 움직인다. 누구와 비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바로 목욕탕이다.
그래서 소박하고 오래된 동네 목욕탕은 나의 숨겨진 안식처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목욕탕을 좋아한다. 가끔 어린 시절 목욕탕의 정겨운 풍경을 떠올리는 것은 목욕탕이 주는 작은 즐거움이다.
이번 명절에는 아버지 모시고 오랜만에 목욕탕에 가 봐야겠다. 뜨끈한 탕에 몸도 같이 담그고 등도 시원하게 밀어드려야겠다. 목욕이 끝나면 뜨끈하고 진한 육수의 설렁탕도 사드려야겠다. 그리고 동네 슈퍼에서 바나나 우유도 하나 사서 어린 시절 살던 동네 마실을 가야겠다. 오랜만에 천천히 동네를 거닐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 시민기자가 취향과 고민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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