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2.19 09:51수정 2026.02.1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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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한가운데, 차례와 세배로 이어진 명절이 끝나자 집안엔 묘한 정적이 흘렀다. 거실 소파에는 명절 음식 장만으로 지친 아내와 장모님이 기대어 앉아 있었고,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이는 각자의 방에서 스마트폰 세상에 빠져 있었다. 이대로 연휴의 귀한 하루를 무기력하게 흘려보낼 순 없었다. 가장인 내가 슬며시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장모님, 여보. 우리 다 같이 바람 좀 쐬고 올까요?"
나의 가벼운 제안에 여섯 식구가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입었다. 장모님과 우리 부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듬직한 큰아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예민해진 둘째 딸, 그리고 우리 가족의 '시간표'를 쥐고 있는 발달 장애가 있는 초등학교 3학년 막내딸까지. 우리 대식구가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를 다 함께 찾은 것은 무려 6년 만의 일이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 두물머리 나루터 표지석 곁에 세워진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안내판.
박상준
차에서 내려 맵찬 겨울바람을 뚫고 두물머리 나루터 입구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가족의 발길을 멈춰 세운 것은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안내판이었다. 하늘에 오르기 위해 한강을 거슬러 올랐으나 끝내 물이 끊겨 용이 되지 못했다는 서해 이무기의 애틋한 전설.
"이무기, 진짜 억울했겠다. 그치 아빠?"
둘째가 툭 던진 말에, 안내판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시던 장모님이 빙그레 웃으며 답하셨다.
"아니지. 완벽한 용이 되진 못했어도, 저 거센 강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거슬러 올라간 그 힘이 대단한 거지."
장모님의 그 한 마디에 내 마음속에 묘한 위로가 밀려왔다. 목적지에 단번에 닿지 못하더라도 쉼 없이 나아갔던 이무기의 여정은, 남들보다 조금 느린 보폭으로 세상을 향해 걷고 있는 우리 막내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 느린 걸음에 기꺼이 발을 맞추며 살아가는 우리 부부의 치열한 일상에 대한 다정한 응원 같기도 했다.

▲ 꽁꽁 얼어붙은 빙판과 찰랑이는 물결이 선명한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겨울 두물머리 강변.
박상준
둔치로 나서자 시린 겨울 남한강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에 강물 가장자리는 하얗게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강 한가운데는 햇살을 받아 잔잔한 물결을 반짝이며 생기 있게 흐르고 있었다. 얼음과 물이 팽팽하게 맞선 선명한 경계는 마치 웅크렸던 겨울과 다가올 봄이 밀당을 하는 듯했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선 큰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탁 트인 강물 위로 쏟아졌다.
3대가 걷기 좋은 '평등한 길'

▲'두물머리 소원 들어주는 나무' 앞. 턱이 없는 평탄한 흙길은 3대 가족 누구나 걷기 좋은 '무장애 산책로'다.
박상준
아빠의 시선에서 볼 때, 여행지로서 두물머리가 가진 가장 위대한 매력은 빼어난 풍경보다 '길'에 있다. 휠체어나 유아차는 물론, 관절이 불편하신 어르신과 걷는 것이 서툰 발달장애 아이도 아무런 장애물 없이 걸을 수 있는 턱 없는 흙길.
커다란 고목 아래 '두물머리 소원 들어주는 나무' 주변을 지나며, 우리 가족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막내의 느릿한 보폭에 맞춰졌다. 평소라면 훌쩍 앞서 걸었을 사춘기 큰아들이 동생이 넘어질까 앞서가며 돌부리를 살폈고, 아내는 막내의 손을 꼭 쥐고 걸었다. 나는 맨 뒤에서 그 따뜻한 뒷모습들을 카메라와 눈에 번갈아 담았다.
"빨리빨리"를 외치던 도심의 속도를 버리고 막내의 템포에 온전히 맞춰 걷자, 비로소 강바람의 상쾌함과 흙을 밟는 폭신한 감촉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아내의 얼굴에도 명절의 피로 대신 맑은 미소가 번졌다.

▲두물머리의 상징인 'DUMULMEORI' 영문 포토존. 6년 전과 비교해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성장을 체감하게 해준다.
박상준
두물머리의 명물인 'DUMULMEORI' 영문 조형물 앞은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포토존이다. 6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내가 번쩍 안아 올려야 했던 꼬마들이었는데, 이제는 아빠의 어깨를 넘어설 만큼 훌쩍 자랐다.
듬직해진 큰아들이 먼저 나서서 할머니와 동생들의 구도를 잡아주고, 막내딸은 언니 오빠 사이에서 까르르 웃으며 '브이(V)' 자를 그렸다. 6년이라는 세월의 나이테가 가족사진이라는 프레임 안에 뭉클하게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두 강물이 만나 하나가 되듯, 우리도 하나가 되었다

▲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강물의 만남을 노래한 황명걸 시인의 '두물머리에서' 시비.
박상준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너른 돌 위에 새겨진 황명걸 시인의 시비(詩碑) '두물머리에서'가 눈길을 끈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에서 시작된 남한강. 전혀 다른 곳에서 출발해 수백 리 서로 다른 풍경을 품고 흘러온 두 물줄기는 마침내 이곳 두물머리에서 만나 비로소 거대한 '한강'이 된다. 다친 데 없이 매끄럽게 흐른 물도, 바위에 부딪히며 상처 입고 굽이친 물도 이곳에서는 그저 서로를 껴안는 하나의 물줄기일 뿐이다.

▲해 질 녘 황금빛 윤슬이 비치는 강변 앞 '두물경' 표지석. "남한강 북한강 하나된 두물머리"라는 글귀가 묵직한 울림을 준다.
박상준
어느덧 해가 서쪽 산 너머로 기울며 차가운 겨울 강물 위로 눈부신 황금빛 윤슬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진짜 지점, '두물경' 표지석 앞에 여섯 식구가 나란히 섰다.
장모님의 지나온 긴 세월, 우리 부부의 쉴 틈 없는 일상, 학업의 무게를 짊어진 사춘기 남매, 그리고 자신만의 맑은 세상 속에서 느리지만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는 막내. 서로 다른 삶의 무게와 속도를 가진 우리 가족도, 각기 다른 속도로 흘러온 저 두물머리 강물처럼 이 순간만큼은 완벽하게 섞여 하나의 온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보, 우리 막내 중학생 될 때 또 올까?"
노을을 바라보며 슬며시 건넨 나의 물음에, 아내가 막내의 언 손을 다정하게 감싸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모님도 흐뭇한 미소로 손주들을 바라보셨다. 칼바람 속에서도 맞잡은 가족의 손은 세상 어떤 핫팩보다 따뜻했다. 꽁꽁 언 강물이 녹아 그 자리에 다시 연꽃을 피워내듯, 우리 가족의 올 한 해도 서로의 체온으로 세상의 추위를 녹이며 느리지만 힘차게 흘러갈 것이다. 두 강물이 만나 더 깊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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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현장, 발빠른 소식 - 고양e뉴스 | 에디터 박상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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