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국민학교 졸업사진 1951년 경남 고성 대성국민학교 졸업사진(맨 왼쪽이 어머니 김상익)
강성호
시대적 편견과 아버지 완강함에 부딪혀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배워서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축복 속에 태어났으나, 정작 본인 배움은 거기서 가로막혔다. 생애 첫 번째 좌절이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 일본어 노래를 부르다 어느 날 갑자기 무궁화 노래를 배웠다. 해방이 찾아온 것이다. 5학년이 되던 해엔 6.25 전쟁이 터졌다. 마을로 들어온 군인에게서 처음으로 건빵을 받아먹었고 그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웃 죽음을 눈으로 목격했다.
배움을 향한 꿈도, 평화로운 일상도, 역사 소용돌이 속에 속절없이 휩쓸렸다. 한국 현대사 격랑은 상익 소녀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가로질러 흘렀다.
진주 중앙시장, 30년 손수레
스무 살에 올린 첫 결혼은 남편이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갇히면서 1년 만에 끝났다. 상익은 가족과 함께 진주로 내려왔고 스물세 살에 새 가정을 꾸렸다. 봉곡동 제재소 한쪽 작은 방 두 칸이 새 출발점이었다. 과자 가게를 열었고, 우동집을 접었다. 스물다섯에 낳은 쌍둥이 남매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숨을 쉬지 않았다. 영양실조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아이들을 붙들고, 어머니는 초인적인 힘으로 버텼다. 그리고 손수레를 끌었다.
진주 중앙시장 앞 길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30년을 과자 노점상으로 살았다. 겨울엔 손이 텄고, 여름엔 땡볕 아래 쭈그려 앉았다. 자신은 배우지 못했지만 다섯 남매는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그 이름 뜻을 자식들 삶으로 피워낸 것이다.

▲어머니 손수레 가게 30년동안 지켜온 어머니 노점(경남 진주시 중앙시장 입구에서 )
강성호
평범한 노점상 어머니가 투사가 된 날
아이들이 자랐다. 큰아들이 교사가 되었다. 이제 좀 쉬어도 되겠다 싶었을 때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1989년 5월, 큰아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빨갱이'라는 낙인은 그 시절 사회적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다. 무죄 증거와 무관하게 가족 전체가 빨갱이 집안으로 내몰렸다. 어머니는 손수레를 멈추고 아들이 갇힌 경찰서를 오갔다. 서울 정당 당사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다 경찰에 끌려갔다. 법정에서 아들 제자들에게 폭행을 당해 피를 흘리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싸움은 가족을 앗아갔다. 아버지가 쓰러졌다. 구명운동을 돕던 둘째 아들은 극심한 우울증 끝에 스물다섯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이념이라는 거대한 폭력이 평범한 한 가정을 짓밟았다.

▲강성호 교사 석방촉구 대회에 참석하신 부모님 1989년 6월 2일 충북 제천 의림동성당에서
강성호
그래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1999년 9월, 해직된 지 10년 만에 큰아들은 교단에 다시 섰다. 그리고 32년이 흐른 2021년 9월, 재심 법정에서 마침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어머니가 평생을 바쳐 외쳤던 그 말, "내 아들은 죄가 없다"가 법정 기록으로 남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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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교육청에서 제출한 부모님 탄원서 1999년 3월, 강성호 교사 복직 호소문
강성호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
2026년 11월, 아들이 녹음기를 들고 물었다.
"어머니, 자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짧게 대답하셨다.
"하는 일 잘 되고 건강하기를 빈다."
전쟁을 겪었고, 가난을 견뎠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냈고, 국가 폭력에 온몸으로 맞섰던 89년 삶. 그 마지막 말이 그것이었다. 자식들 안녕. 그것이 전부였다.
2026년 설 명절, 어머니는 병실에서 생애 마지막 숨을 이어가고 계신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어머니 손을 가만히 잡는다. 손수레를 30년 끌었던 그 손을, 아들 무죄를 외치며 법정 앞에서 피를 흘렸던 그 손을.
'배워서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배움 기회는 끝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고귀한 뜻을 자식들 삶에 심기 위해 스스로 거름이 되었다. 손수레를 끌던 그 거친 손이 지켜낸 것은 자식 사랑이였고, 인간 존엄이었다.

▲다섯 형제를 키워주신 어머니 손 2026년 2월 18일, 진주 반도병원 병실에서
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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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주 상당고 교사. 1989년 5월, 교직생활 2개월여만에 '북침설교육'혐의로 구속, 8개월 복역후 10년4개월간 해직. 199년 9월 복직, 2019년 11월 국가보안법 재심 개시 결정, 2021년 9월 2일 청주지법 형사2부 무죄 선고, 2023년 2월, 33년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조기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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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손수레 위에 피운 꽃, 내 어머니의 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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