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에 아이들을 초대했어요

일년에 한두 번은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게 해주고 싶은 마음

등록 2026.02.19 11:33수정 2026.02.1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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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물 남았으면 싸주세요."
"어머니 저도요."

딸과 며느리의 주문이다. 난 의외의 주문에 "어 그래. 얼마나 남았나 보자" 하곤 되는대로 싸주었다. 특히 호박 말린 나물과 가지 말린 나물이 인기였다. 싸주면서 이번 명절을 이렇게 보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네 식구가 먼저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하는 말 "엄마 나 지난 추석에 전이 먹고 싶어서 전도 인터넷에서 주문해서 둘이 먹었어요. 명절엔 뭐니 뭐니해도 전이잖아요" 한다. 그 말을 듣고 사위가 웃는다. 동태 전과 육전 등을 주문해서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할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이런저런 반응에 놀랍기만 했다.

떡국 설명절에 먹은 떡국
▲떡국 설명절에 먹은 떡국 정현순

설 명절 새벽부터 주방에서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들이 오전 10시에 온다고 했다.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상차림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주방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잠시 거실에서 바깥 풍경을 봤다.

다른 명절 분위기와 똑같았다. 하지만 지난해 추석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지난해 추석에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설 명절에는 쓸쓸하다기보다는 모두 명절 보내러 가서 아파트가 조용하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똑같은 풍경인데 생각이 바뀌니깐 보는 시각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아파트풍경 조용한 아파트풍경
▲아파트풍경 조용한 아파트풍경 정현순

지난 추석 명절에는 몸이 아파 외식으로 명절을 대신하고 명절에는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다. 아무도 오지 않으니 몸은 조금 편한 듯했다. 하지만 마음은 여러 생각으로 편치 않았다. 이번 명절은 아이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10일 정도 남겨놓고 가족 대화방에 "명절 전 주말에 외식하고 명절에는 엄마 집에 와서 간단히 떡국 먹는 거로 하자. 1년에 한두 번은 부모 집에서 엄마가 해준 집밥은 먹어봐야지"하곤 올렸다. 모두 좋다고 한다. 가족 모임 때에도 밖에서 먹으니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을 기회가 없는 것이다.


주말에 모두의 의견을 모아 외식을 하고 설 명절 오전 10시에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난 아무것도 안 하고 떡국에 김치라고 했다.

내가 명절에 아이들을 초대하는 마음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지난 추석 명절에 감기몸살이 심하게 와서 오랫동안 아팠다. 그 후로도 늙으려고 하는지 잊을 만하면 감기가 찾아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매일 감기를 달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내가 앞으로도 자주 아플 수도 있을 텐데 이러다가는 아이들하고 명절을 제대로 보내지도 못할 것 같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 몸도 내 마음대로 안 움직여줄 테니 말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집밥을 해줄 수 있을까? 해줄 수 있을 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사람 나이가 34세, 60세, 75세(어떤 기사에는 78세) 전후로 몸이 많이 변한다고 한다. 그 나이를 잘 넘기면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내 나이가 75세에 딱 걸리고 잦은 감기가 찾아오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설 명절 일주일 정도 남겨놓고 또 열이 39도까지 올라가 병원에서 열을 재던 간호사가 놀래기도 했다. 원장은 독감을 의심하기도 했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다. 원장은 영양주사 맞기를 권했다. 단골병원이기에 나의 병력에 대해 잘 알고 있기도 하고 명절을 앞두고 있어 영양주사를 맞았다. 아이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잠시라도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양주사를 맞은 효과가 나타났다. 거짓말처럼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아졌다.

무엇보다도 우리 세대가 끝나고 자식 세대 때에는 명절 문화가 어떻게 변할 줄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그들의 몫이라 생각했다. 현재 살아가는 내 세대에 할 수 있는 일, 모두가 부담 갖지 않고 보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아이들을 부모가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소소한 밥상 동애전, 새우전, 나물.김치, 갈비찜
▲소소한 밥상 동애전, 새우전, 나물.김치, 갈비찜 정현순

아이들을 초대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다지 힘도 들지 않았다. 천천히 쉬어가면서 한 가지씩 준비했다. 그래도 명절이니 동태전과 새우전을 부쳤다. 나물은 지난가을에 말려둔 가지와 호박, 그리고 표고버섯과 숙주나물을 조금씩 무쳤다. 솔직히 호박과 가지 말린 나물을 볶으면서 아이들이 이것들을 잘 먹으려나 조금 의심스럽기도 했다. 손자가 좋아하는 돼지 갈비찜도 준비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김치와 떡만둣국 그것이 전부였다.

상차림을 대충 마치고 나니 아이들이 도착했다. 아이들 손에는 공진단, 과일, 홍삼액기스, 두쫀쿠 등이 있었고 우리 집 강아지 선물도 있었다. 차림 상을 보더니 아이들이 놀란다. "엄마 김치에 떡국이면 되는데 많이 하셨네" 한다. 며느리도 활짝 웃는다. 아이들도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배고프다면서 오자마자 상앞에 앉는다.

후식 배, 사과. 포도, 귤, 곶감
▲후식 배, 사과. 포도, 귤, 곶감 정현순

떡국을 한 그릇 다 먹은 사위가 밥을 달란다. 나물하고 먹고 싶다면서. 난 떡국을 끓이는 설 명절에도 밥을 꼭 한다. 혹시 누군가는 밥을 먹고 싶을까 봐.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 시간이다. 딸과 며느리는 서로 자기들이 한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끝내는 며느리가 한다고 했다. 대신 딸아이는 사과, 배등 과일과 음료수로 후식을 준비한다.

세배가 끝나고도 오랜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로 수다의 꽃을 피웠다.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이들이 갈 준비를 한다. 나도 보낼 준비로 아이들이 싸달라는 김치, 나물 등을 싸주었다. 며느리는 호박 나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난"그럼 며칠 있다가 만들어서 연락할게" 하니 며느리는 "꼭이요~~ " 한다.

그동안 명절이면 여행, 호캉스, 홈파티, 외식 등 여러 방법으로 대체했었지만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는 아이들도 만족하는 것 같았고 나 역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수성찬이 아니고 화려한 밥상이 아니더라도 엄마가 해주는 평범한 집밥을 먹는 기회가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앞으로도 아이들 의견을 충분히 들어 모두 편하고 즐거운 명절의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본다.

2~3일 쉬었다가 동태전도 부치고 호박 나물을 볶아 아이들에게 갖다 주어야겠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오랜 시간 수다도 함께 나누고, 맘에 드는 음식을 싸달라고 한다. 내 몸은 조금 바빴던 명절이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명절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꽉 찬 느낌이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두 부부만 남았다. 그래도 허전하지 않았다. 집안에는 그들의 공기와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은퇴 전후의 6070 시니어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봅니다.
#설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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